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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바닥에서 솟아난 용 - 오어사의 종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7:22

연못 바닥에서 솟아난 용 - 오어사의 종
 

   지난 11월 16일, 점심을 먹고 작업 차에 오른 이욱형(李旭炯) 기사(技士)는 눈길을 굴삭기(掘削機) 끝에 쏟으며 퇴적물(堆積物)을 긁어 짐차에 실었다. 계속하여 포클레인으로 검은 진흙을 걷어내는데, 못 바닥 밑에 비스듬하게 드러난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물체에 가까이 가 본 그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입에 구슬을 머금은 용이 진흙 바닥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살아 꿈틀거리며 등천(登天)할 것 같지 않은가!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레 용 몸뚱이에 붙은 흙을 닦아내 보니, 자주 다니던 절에 있는 범종(梵鍾)의 위 부분과 흡사하였다. 곧장 절집에 뛰어갔다.
   “스님, 못 바닥에서 용이…, 아니 용이 붙은 종이 나왔심더!”
   이리하여 모인 오어사(吾魚寺) 중들이 종 표면에 붙은 흙을 씻어 나가자 청동으로 만들어진 용뉴(龍紐)는 말할 것도 없고, 젖꼭지 모양의 종유(鍾紐)며, 하늘 옷[天衣] 자락을 살며시 날리며 합장한 비천(飛天) 모습의 보살상(菩薩像)이 돋을 새김 되어 있었다. 더욱이나 종 몸체[鍾身]에는 정우 4년(貞祐四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은가!
   제작 연대가 확실한 연호(年號) 정우 4년(貞祐四年)은 고려 고종 3년(1216)인데 금(金)나라 연호이다.
   이렇게 다시 세상에 환생하여 20세기 말의 밝은 햇빛을 듬뿍 받게 된 이 종은 13세기 초에 만들어져 오어사에서 티없이 맑은 소리로 티끌 묻은 세속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깨끗하게 해주었으리라. 그러다가 언젠가 외적(外敵)이 침입하였을 때, 종만큼은 뺏기지 않도록 스님들이 땅을 파고 몰래 묻었으리라.
   그 후 묻힌 자리는 못이 되었고, 못 밑에서 용은 물을 듬뿍 머금고 있다가, 때가 되어(?) 승천(昇天)하려고 나온 것이 아닐까?

   오어사는 신라 때, 그것도 이른 시기부터 있던 절이다.
   혜공(惠空)스님이 늙으막에 이 절에 살았는데, 원효가 여러 불경을 쉽게 풀이하여 중생들에게 풀어 먹이려고 주해(註解)를 다는 「찬제경소(撰諸經疏)」 과정에서 자주 오어사의 혜공스님께 와서 의심나는 것도 묻고, 가끔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받았다.
   하루는 두 분이 절 가까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고, 돌 자갈 위에 똥을 누었는데, 혜공이 똥을 가리키면서 원효더러
   “네 똥이 내 고기로다(汝尿吾魚)”
고 한데서 오어사(吾魚寺)라고 하였다.
   그전에는 절 이름이 항사사( 恒沙寺)였다. 종이 제작된 고려 때는 영일현(迎日縣) 항사동(恒沙洞)이었고, 지금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이다.
   경주에서 오어사에 가는데 차 타고 가면 포항으로 둘러서 가지만, 걸어가면 암곡 무장사를 거쳐 야트막한 재를 넘어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바로 닿는다.

   혜공은 어떤 스님인가? 어느 작은 절에 사는 그는 항상 미치광이처럼 술에 몹시 취하여, 망태기를 메고 길거리를 헤매며 노래하고 춤추며 다녔다. 사람들이 부궤화상(負궤和尙)이라 불렀는데 ‘망태 멘 중’이라는 한문 투의 호칭이다.
   거기에다 다른 별난 행동도 있었으니, 그가 살던 절에 우물이 있었는데, 절 이름은 부개사(夫蓋寺)였고, 우물은 부개 우물이었다.
   혜공이 자주 이 우물 안에 들어가 몇 달씩이나 나오지 않다가, 밖으로 나올 때는 신동(神童) 아이가 먼저 물에서 솟아나왔으므로, 절 중이 그걸 보고 기다리면, 혜공이 불쑥 우물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물 속에서 나오는데도 옷에는 물이 묻지 않고 말짱한 것이었다.
   혜공이 중이 되기 전의 일이다. 천진공(天眞公)의 집에 품팔이하는 할머니에게 아들이 따라 다녔는데 이름은 우조(憂助)였다.
   공의 몸에 종기가 나서 심하여 거의 죽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문병하러 와서 골목이 메일 지경이었다.
   일곱 살난 우조가 어머니에게
   “집안에 무슨 일로 손님이 이만치 많은기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가
   “주인 어른이 몹쓸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다 죽게 됐는데, 니는 우예 그것도 몰랐나!” 하더라. 우조가 하는 말이
   “내가 낫게 하겠심더.”
하였다. 그 어머니가 공에게 말씀 드렸더니 불러오라 하였는데, 우조가 와서 아무 말 없이 침상 아래 앉아 있는데, 잠시 뒤에 종기가 곪아터지고는 아픈 기가 가셨다. 공은 이것을 우연으로 생각할 뿐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조가 자라니 공은 그에게 매 기르는 일을 시켰는데 마음에 들게 길렀다.
   공의 아우 한 사람이 벼슬자리를 얻어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형이 선물로 좋은 매 한 마리를 주어 보냈는데,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동생에게 준 매가 그리워, 이튿날 아침에 우조를 시켜 찾아올 작정을 했다.
   그런데 새벽녘에 우조가 그 매를 가져와 바치는 것이 아닌가. 주인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공이 크게 놀라 깨우쳐, 그제야 예전에 종기 고쳤던 일이 도무지 풀지 못하던 수수께끼였음을 털어놓고
   “제가 대단한 성인(聖人)이 우리 집에 의탁(依托)하신 줄을 모르고 주책없는 말과 실없는 짓으로 대했으니 우예야 되겠능기요?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저를 지도하시는 스승이 되시어 바르게 이끌어 주소서.”
하고는 아래로 내려와 절을 올렸다.
   신령스러운 이적(異跡)이 이와 같이 나타나매, 드디어 집을 나서 중이 되어 이름을 혜공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