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분가(萬憤歌)
만가지 분함을 노래하다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이다. |
● <만분가> 이해하기
<만분가>는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자인 조위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하여 귀양간 유배지인 순천에서 지은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작자가 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비분 강개한 심정을 임금인 성종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초나라 굴원이 죄없이 쫒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듯이 자신도 죄없이 귀양와 있다는 것이다. <만분가>는 조선 전기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희생된 문신(文臣)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유배가사의 효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임금이 계신 곳을 도가의 천상 세계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유배되어 귀양가 있는 작자는 천상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인물로 설정된 점 등이 모두 <만분가>의 설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조 유배가사의 중심적인 흐름을 이루면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분가>의 유배가사의 전개에 끼친 영향과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만분가> 정리
* 저자 : 조위(曺偉)
* 장르 : 유배가사
* 주제 :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
* 의의 : 유배가사의 최초
* 발표 : 1498년(연산군4)
● <만분가> 현대역 읽기
천상 백옥경 / 십이루 어디멘고 / 오색운 깊은 곳에 / 자청전이 가렸으니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말동 / 차라리 죽어져서 / 억만 번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의 넋이 되어 / 이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 동리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 바람에 흘리 날아/ 자미궁에 날아올라
옥황 향안 전에/ 지척에 나가 앉아 / 흥중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 황하수 맑다마는/ 초객의 후신인가
상심도 가이없고/ 가태부의 넋이런가 /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은 고향이라
십 년을 유락하니/ 백구와 벗이 되어 /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르는 듯 괴는 듯
남 없는 님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의 꿈조차 향기롭다
옥색실 이음 짧아/ 님의 옷을 못하 여도 / 바다 같은 님의 은혜/ 추호나 갚으리라
백옥 같은 이내 마음/ 님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 치니
일모수죽에/ 취수도 냉박하구나 / 유란을 꺾어 쥐고/ 님 계신 데 바라보니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이 험하구나 /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초췌한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리 되었구나 / 천층랑 한가운데/ 백 척간에 올랐더니
무단한 양각풍이/ 환해 중에 내리나니 / 억만장 못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겠도다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 진인이 취한 잔에/ 월인이 웃은 탓인가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 뜰 앞에 심은 난이/ 반이나 이울었구나
오동 저문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청련시 고쳐 읊고/ 팔도한을 스쳐 보니 /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 산전에/ 석양이 거의 로다 / 기다리고 바라다가/ 안력이 다했던가
낙화 말이 없고/ 벽창이 어두우니 / 입 노란 새끼새들/ 어미도 그리는구나
팔월 추풍이/ 띠집을 거두니 / 빈 깃에 싸인 알이/ 수화를 못 면하도다
생리사별을/ 한 몸에 흔자 맡아 / 삼천장 백발이/ 일야에 길기도 길구나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 강천 지는 해에/ 주즙이나 무양한가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 만 리 붕정을/ 머얼리 견주더니
바람에 다 부치어/ 흑룡 강에 떨어진 듯 / 천지 가이없고/ 어안이 무정하니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를 바라보니
옥량명월을/ 옛 보던 낯빛인 듯 / 양춘을 언제 볼까 / 눈비를 혼자 맞아
벽해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 시는고
태상 칠위 분이/ 옥진군자 명이시니 / 천상 남루에/ 생적을 울리시며
지하 북풍의 / 사명을 벗기실까 / 죽기도 명이요/ 살기도 하나리니
진채지액을/ 성인도 못 면하며 / 누설비죄를/ 군자인들 어이하리
오월 비상이/ 눈물로 어리는 듯 / 삼 년 대한도/ 원기로 되었도다
초수남관이 / 고금에 한둘이며 / 백발황상에/ 서러운 일도 하고 많다
건곤이 병이 들어/ 흔돈이 죽은 후에 / 하늘이 침음할 듯/ 관색성이 비취는 듯
고정의국에/ 원분만 쌓였으니 / 차라리 할마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창창막막하야/ 못 믿을쏜 조화로다 /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도 성히 놀고/ 백이도 아사하니 / 동릉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남화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 남가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고국 송추를/ 꿈에 가 만져 보고 / 선인 구묘를/ 깬 후에 생각하니
구회간장이 /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 장해음운에/ 백주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역의 연수런지 / 이매망량이/ 실컷 젖은 가에
백옥은 무슨 일로/ 청승의 깃이 되고 /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 우는 뜻을
하늘 같은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 목란추국에 / 향기로운 탓이런가
첩여 소군이/ 박명한 몸이런가 / 군은이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옥안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같이/ 임자 없이 굴러 다니다가 /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이 되어 있어
바람 비 뿌린 소리/ 님의 귀에 들리기나 / 윤회 만겁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님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 님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설중에 흔자 피어/ 참변에 이우는 듯 / 윌중소영이/ 님의 옷에 비취거든
어여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 동풍이 유정하여/ 암향을 불어 올려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에나 부치고저 /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흔자 띄워
백구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에 달려 있어
내 묻은 누역 속에/ 님 향한 꿈을 깨어 / 일편장안을/ 일하에 바라보고
외로 머뭇거리며 옳이 머뭇거리며/ 이 몸의 탓이런가
이 몸이 전혀 몰라 / 천도막막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섬긴 뜻올 / 주공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저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아아 이내 가슴/ 산이 되고 돌이 되어 /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 아무나 이내 뜻/ 알 이 곧 있으면
백세교유 만세상감하리라.
조위(1454-1503)
호 매계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檢閱)이 되고 76년부터 사가독서한 뒤 79년 영안도경차관(永安道敬差官)이 됨
성종 때(1481) 유윤겸과 함께 초간본 <두시언해> 간행에 참여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실록> 편찬할 때 함께 일한 김일손이 그들의 스승인 김종직의 <弔義帝文(조의제문)> 을 수록, 결국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순천에서 죽음
98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오는 도중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나 의주에서 피체되어 투옥되었으나 이극균(李克均)의 극간으로 의주에 장류(杖流)되어 순천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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