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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 북천가(北遷歌)/김진형(金鎭형, 1801 - 1865)

지식창고지기 2009. 7. 12. 11:35

천가(北遷歌)


김진형

<북천가>는 김진형이 1853년 6월에 명천(明川)으로 귀양가서 그 행 10월에 풀려 나오기까지 기간 동안에 느낀 심정과 체험한 생활, 경험, 견문 등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울을 떠나 유배지로 갔다가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 체험의 특이성으로서, 또 당시 조선 사회의 정치적 현실의 반영과 그의 뛰어난 시적 형상 등으로 인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당시의 부패한 정계의 현실과 양반 사대부들의 호화방탕한 생활과 사대부들의 도덕적 위선 등을 잘 반영하여 노래하고 있다. 봉건관료로서 별로 고생을 하지 않고 편히 지내며 살아온 과정과 관련하여 당시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비판적 의식은 아주 약하게 드러나고 있으나 작자의 체험에 밑바탕을 둔 사실적 묘사와 서술은 조선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매우 잘 포착하여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상당히  원숙한 예술적 재능을 보여 주고 있으며, 적절한 형용어의 선택, 반복에 의한 강조 등은 작자의 내면 세계와 행동 및 자연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인간이 가지는 희비애락의 감정들을 진실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해 준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은 미약하나 작품의 형상화 면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북천가> 정리
* 작자 : 김진형
* 연대 : 철종 때
* 갈래 : 유배가사, 장편가사
* 주제 :
함경도 명천에 유배된 내력과 배소에 있는 기생들과의 풍류 등을 노래

● <북천가> 읽어보기

 

고참(古站-고역古驛) 역마 잡아 타고 / 배소(配所)로 들어가니
인민은 번성하고 / 성곽(城廓)은 웅장(雄壯)하다
여각(旅閣)에 들어 앉아 / 패문(牌文-편지)을 부친 후에
맹 동원의 집을 물어 / 본관더러 전하니
본관 전갈(傳喝-하인을 시켜 안부를 물음)하고 / 공형(工刑)이 나오면서
병풍 자리 주물상을 / 주인으로 대령하고
육각(六角) 소리 앞세우고 / 주인으로 나와 앉아
처소에 전갈하며 / 뫼셔 오라 전갈하네
슬프다 내 일이야 / 꿈에나 들었던가
이 곳이 어디메냐 / 주인의 집 찾아가니
높은 대문 넓은 사랑 / 삼천석군 집이로다
본관과 초면이라 / 새로 인사 대한 후에
본관이 하는 말이 / 김 교리(金校理) 이 번 정배(定配-유배)
죄 없이 오는 줄은 / 북관(北關-함경도) 수령(守令) 아는 배요
만이 울었나니 / 조금도 슬퍼 말고 나와 함께 노사이다
삼형(三營-삼영(三營)의 잘못인 듯) 기생 다 불러다 / 오늘부터 노자꾸나
호반의 규모런가 / 활협(闊俠)도 장하도다
그러나 내 일신이 / 귀적(歸謫)한 사람이라
화광빈객(華光賓客) 꽃자리에 / 기악(妓樂)이 무엇이냐
극구(極口)에 퇴송(退送)하고 / 혼자 앉아 소일하니
성내의 선비들이 / 문풍(聞風)하고 모여들어
하나 오고 두 셋 오니 / 육십 인이 되었구나
책 끼고 청학(請學)하며 / 글제 내고 고쳐지라
북관에 있는 수령 / 관장(關將)만 보았다가
문관의 풍성 듣고 / 한사하고 달려드니
내 일을 생각하면 / 남 가르칠 공부 없어
아무리 사양한들 / 모면(謀免)할 길 전혀 없네
주야로 끼고 있어 / 세월이 글이로다
한가하면 풍월(風月-음풍 농월,곧 시를 말함. ) 짓고 / 심심하면 글 외우니 절세의 고종이라
시주(詩酒)에 회포(懷抱) 붙여 / 불출 문외(不出門外) 하오면서

 

 

김진형(金鎭형, 1801 - 1865)


1850년 증광문과에 급제
1853년 홍문관 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의 비행을 탄핵하다 명천으로 유배
1864년 시정의 폐단을 상소하여, 조대비의 비위를 거슬려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
명천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방면되어 귀환하는 왕복의 기록을 담아 가사 <북천가>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