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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 사미인곡(思美人曲)

지식창고지기 2009. 7. 12. 11:36

사미인곡(思美人曲)

미인(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


/ <사미인곡>의 배경-'송강정' 구경하기 / <서포만필>의 내용 더 읽어보기 /

정철

이 작품은 작자 자신을 여자로 비유하여 임금을 임이라 설정하고 네 계절의 경물을 완상하는 가운데 생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 전체는 서사, 본사, 결사로 구성되고 본사는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
계절에 따른 자연과 생활의 변화를 그리면서 그 가운데서 솟아나오는 연군의 정을 구체적인 수사로 엮은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임이 나를 모르더라도 나는 임을 따르겠다는 결사는 한 여인의 절절한 애정의 표현이자 신하로서의
일편단심의 충정을 함축하고 있다.
정철의 가사는 우리말의 표현력을 능숙하게 구사하여 빼어난 경지를 이룩한
가사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시인 굴원의 '이소'에는 9편의 '사미인(思美人)'이라는 편명이 나오며, 그 내용 역시 충군(忠君)을 담고 있어, 정철의 사미인곡은 이러한 중국 문학의 영향 아래에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철의 <사미인곡>은 보다 치밀한 구조와 세련된 언어 표현력을 바탕으로 절실한 정서를 환기해 냄으로써 독창적인 문학을 창조해냈다.

 <서사) 임과의 인연과 세월의 무상함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緣연分분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平평生생애 願원하요데 한데 녜자 하얏더니, 늙거야 므삼 일로 외오 두고 글이난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 더대 엇디하야 下하界계예 나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삼年년이라. 연脂지粉분 잇내마난 눌 위하야 고이 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疊첩疊첩이 싸혀 이셔,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믈이라.
人인生생은 有유限한한대 시람도 그지업다. 無무心심한 歲셰月월은 믈흐라닷 하난고야. 炎염凉냥이 때랄 아라 가난 닷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좇아서 태어나니, 이것은 한평생을 함께 살 인연이며, 어찌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오직 임만을 위하여 젊어 있고, 임은 오로지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견줄 곳이 다시 없다.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멀리 두고 보고 싶어 하는가.
엊그제는 임을 모시고 달나라의 궁궐에 있었더니, 그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왔는가.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러진 지 삼 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까.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무정한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구나. 더워졌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순환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고 보고 하는 가운데 느낄 일도 많기도 하구나.

<본사 1> 춘원(春怨) - 봄을 맞아 느끼는 임에 대한 사모의 정

東동風풍이 건듯 부러 積적雪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매花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갓득 冷냉淡담한데 暗암香향은 므사 일고. 黃황昏혼의 달이 조차 벼마태 빗최니, 늣기난 닷 반기난 닷,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매花화 것거내여 님 겨신데 보내오져. 님이 너랄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녹여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남몰래 풍겨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가 (마치 외로우나 높은 기상을 지닌 나의 충정을 방불케 하는구나)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 머리에 비치어, 흐느껴 우는 듯도 하고 반가워 하는 듯도 하니 이 달이 바로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구나.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까? (과연 매화 꽃같이 곱고 높은 나의 충정을 알아 주실런지)

<본사 2> 하원(夏怨) - 여름을 맞아 느끼는 임에 대한 사모의 정

꼿 디고 새닙 나니 綠녹陰음이 깔렷난대, 나위 寂적寞막하고 繡슈幕막이 뷔여 잇다. 莩부蓉용을 거더 노코 孔공雀쟉을 둘러 두니, 갓득 시람 한대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원鴦앙錦금 버혀 노코 五오色색線션 플텨내여 금자해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내니 手슈品품은카니와 制졔度도도 가잘시고. 珊산瑚호樹슈 지게 우해 白백玉옥函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데 바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쳔里리 萬만里리 길흘 뉘라셔 차자 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꽃이 떨어지고 새 잎이 나니, 푸른 잎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임이 없어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 속도 임이 없어 비어 있다. 부용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 병풍을 둘러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또한 지루하게 그리도 길던가. 원앙새 무늬의 비단을 베어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어져 있구나. 산호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옷을 담아 얹어 놓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 갈까. 가거든 이 함을 열어놓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 하실까.

<본사 3> 추원(秋怨) - 가을을 맞아 느끼는 임에 대한 사모의 정

하라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녈 제, 危위樓루에 혼자 올나 水슈晶졍簾념 거든말이, 東동山산의 달이 나고 北븍極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청光광을 쥐여내여 鳳봉凰황樓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헤 거러 두고 八팔荒황의 다 비최여 深심山산 窮궁谷곡 졈낫가티 맹그쇼셔.

하룻밤 사이에 서리 내린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날아갈 때에 높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쪽 하늘 끝에 별이 보여 임이신가 하고 반가워 하니 눈물이 절로난다. 저 맑은 달빛를 쥐어내어 봉황루(임 계신 곳)에 부쳐 보내고 싶구나. 그러면, 임께서는 그것을 누각 위에 걸어두고 온 세상을 다 비추어, 깊은 두메 산골짜기까지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임금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본사 4> 동원(冬怨) - 겨울을 맞아 느끼는 임에 대한 사모의 정

乾건坤곤이 閉폐塞색하야 백셜이 한 빗친 제 사람은카니와 날새도 긋쳐 잇다. 瀟쇼湘샹 南남畔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옥樓누高고處쳐야 더옥 닐너 므삼 하리. 陽양春츈을 부쳐내여 님 겨신 데 쏘이고져. 茅모畯첨 비쵠 해랄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紅홍裳샹을 니믜차고 翠취袖슈랄 半반만 거더 日일暮모脩슈竹죽의 헴가림도 하도 할샤. 댜란 해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청燈등 거른 겻테 전공후 노하두고 꿈의나 님을 보려 턱밧고 비겨시니 鴦앙衾금도 차도 찰샤. 이 밤은 언제 샐고.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히고,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다님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과 같이 따뜻한 이 곳 호남의 창평도 추움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 기운을 활활 부치어 일으켜 내어 임 계신 곳에 쬐게 하고 싶어라.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대궐에 올려 부치고 싶어라.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 서니 이것 저것 생각이 많기도 하구나. 짧은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 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꾸민 공후를 놓고, 꿈에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하구나. 아, 홀로 지내는 이 외로운 밤은 언제나 샐 것인가.

<결사> 변함 없는 충성심

하라도 열두 때, 한 달도 셜흔 날, 져근덧 생각 마라. 이 시람 닛쟈 하니 마암의 매쳐 이셔 骨골髓슈의 깨텨시니, 扁편鵲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하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찰하리 싀어디여 범나비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데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라셔도 내 님 조차려 하노라.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고 이 시름을 잊으려고 하여도 마음 속에 맺혀 있어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호랑나비가 되리라. 그리하여 꽃나무 가지마다에 가는 곳마다 앉아 있다가 향기를 묻힌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그 호랑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끝내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사미인곡> 정리
* 출전 : 송강가사 성주본
* 연대 : 선조 21년 (1588), 작자 53세 때
* 형식 : 3.4조 4음보의 연속체
* 갈래 : 양반가사, 서정가사
* 주제 :
연군의 정(충신연주지사)
* 구성 :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 본사는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구성됨
* 의의 1) 우리말 구사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
          2)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
          3) 고려가요 '정과정'의 전통을 이어받은 여성적 어조의 작품

● <사미인곡> 이해하기
이 작품은 송강이 50세 되던 때에 사간원과 사헌부의 논척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전라도 창평에서 4년 간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한 여인이 남편과 생이별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형식을 빌려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노래했다. 연군지사(戀君之詞)인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고,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여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를 완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전편을 여인의 독백으로 처리하고 있다.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사미인곡의 문학적 영향 문제는 일반적으로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사미인'이라는 제명도 '이소'의 제 9장에 있는 '사미인(思美人)'이라는 편명과 같으며, 이소의 충군적 내용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언어, 형식, 표현 기법,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송강다운 문학적 개성이나 독창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전체 구성은 서사 - 본사 - 결사로 이루어져 있고, 본사는 다시 춘원(春怨), 하원(夏怨), 추원(秋怨), 동원(冬怨)의 사계절로 나누어져 있다. 계절에 따른 자연과 생활의 변화를 그리면서 그 가운데서 솟아나오는 연군의 정을 구체적인 수사로 엮은 솜씨가 특히 뛰어나다.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낙향한 것을, 광한전에서 하계로 내려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사>의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이를 임금께 보내고 싶은 심정을, <하원>에서는 비단으로 임의 옷을 지어 화려한 규방에서 기다리는 심정을, <추원>에서는 가을날의 맑고 서늘한 기운을 임에게 보내어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는 심정을, <동원>에서는 홀로 자는 차가운 침상에서 임을 생각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는 임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서라도 임에게 옮기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 부분에는 신하의 임금에 대한 일편 단심의 충정이 담겨 있다.

● 송강 작품에 나오는 '임'
송강은 미인(美人)을 한글로 '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대개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 군주, 재덕(才德)이 뛰어난 사람, 여관(女官)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런데 <속미인곡>에서 작중 화자는 분명 임을 이별한 여인이므로 여기서 미인, 곧 임은 남성이거나 군주일 수밖에 없다. 송강에게 임은 군주일 수 있으나 작품의 문맥으로 보면 꼭 군주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여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남녀의 인간적인 정감의 교류를 군신(君臣) 관계에 끌어들인 셈이다.

 

● 후대 사람의 평들
1) 홍만종
<순오지>
    思美人曲 亦松江所製, 祖述詩經美人二字, 以寓憂時戀君之意, 亦?中之白雪
   <사미인곡>도 역시 송강이 지은 것이다. 이것은 시경에 있는 미인이라는 두 글자를 따가지고 세상을 걱정하고 임금을 사모하는 뜻을 붙였으니, 이것은 옛날 초나라에 있었던 '백설곡'만이나 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속미인곡>은 제갈 공명의 <출사표>와 맞먹는다.

2) 김만중의 <서포만필>
   
松江 關東別曲 前後美人歌 乃我東之離騷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미인곡>은
우리나라의 '이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