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 김만중이 어떤 주의나 체계가 없이 붓가는 대로 쓴 글
김만중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었던 김만중이 송강 정철의 가사 작품을 극찬한 비평문이다. 송강 가사에 대한 비평과 함께 국문 문학론의 당위성을 주장한 글로 조선조 비평 문학의 전형이 된 작품이다. 또한 이 글은 <서포만필> 중에서도 김만중의 문학관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김만중은 문학을 장단과 가락을 가진 것이라 정의하였다. 문학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말'을 거론한 것은, 문학이 철학적인 '뜻'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그 나라의 '말'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밝힌 것은 선구적이다. 이는 '뜻'으로만 한정된 한문학의 독점적 의의를 부정하고 국어로 표현된 문학이 참문학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의 주장은 국어 문학의 가치를 긍정하는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즉, 언어는 나름대로의 색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잘 살려 써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견해이며, 송강의 가사를 높이 평가한 것은 당연한 귀결문이다. 국문학에서 국어의 중요성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점은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될 만 하다.
|
|
● <서포만필> 읽어보기
이 부분은 송강(松江)의 가사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전후 사미인곡을 평한 부분이다. 송강의 가사를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이소(離騷)'라하여 우리나라 시가의 최고라 했으며, 이어서 '좌해 진문장'이라하여 우리나라의 참문장은 위에 열거한 세 편의 시가라 했다. 또한, 그중에서도 순수 국어로 표현된 후미인곡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했다. 서포는 송강의 가사를 평하면서, 시화(詩話)의 전통에 따라 시어의 희롱에 그치지 않고, 나라말의 묘미를 살린 것이면 어떤 나라 시라도 귀신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태도를 확실히 했다. 곧 언어는 제각기의 색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잘 살려야만 좋은 시가 된다는 것이다. |
송강(松江)의 관동별곡, 전후사미인가는 우리나라의 이소(離騷)이나, 그것은 문자(文字-한문)로써는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악인 (樂人-음악인)들이 구전(口傳)하여 서로 이어받아 전해지고 혹은 한글로 써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이 칠언시로써 관동별곡을 번역하였지만, 아름답게 될 수 없었다. 혹은 택당(澤堂-조선 인조 때의 학자 이식)이 소시(少時)에 작품이라고 하지만, 옳지 않다. 구마라습(중국 진나라의 승. 원래는 천축인 인데 중국에 건너와서 금강경, 법화경 등 많은 불서를 번역함)이 말하기를 "천축인(天竺人-인도사람)의 풍속은 가장 문채(文彩-아름다운 광채)를 숭상하여 그들의 찬불사(讚佛詞)는 극히 아름답다. 이제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지, 그 말씨는 알 수 없다." 하였다. 이치가 정녕 그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의 가락에 있는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 가락을 맞춘다면, 다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을 통할 수가 있는 것은 유독 중국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말을 버려 두고 다른 나라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다.( 아무 멋도 맛도 뜻도 모르고 그저 기계적으로 재간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뭇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 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 하여도( 일반 서민들이 서로 읊조리는 것이 비록 속되고 촌스럽다 하더라도) 그 진가(眞假)를 따진다면, 정녕 학사(學士) 대부(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논할 수는 없다. 하물며 이 삼별곡(三別曲)은 천기(天機-천부의 성질)의 자발(自發-외부로부터의 자극 없이 자연히 발동함)함이 있고, 이속(夷俗-오랑캐의 풍속)의 비리(鄙俚-속됨)함도 없으니, 자고로 좌해(左海-우리나라)의 진문장(眞文章)은 이 세 편 뿐이다. 그러나 세 편을 가지고 논한다면, 후미인곡이 가장높고 관동별곡과 전미인곡은 그래도 한자어를 빌려서 그 빛을 꾸몄을 뿐이다.
※ 이소(離騷) :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참소를 받은 슬픔에 읊은 사부(辭賦). 즉, 참소에 의하여 초나라 조정에서 쫓겨난 실의(失意)에 찬 나머지 멱라수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름을 적은 장시(長詩). 여기서 이(離)는 '만남·걸림', 소(騷)는 시름의 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