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賞春曲)
'봄 경치를 구경하며 즐기는 노래'
정극인
이 작품은 산림(山林), 즉 자연에 묻혀서 그것을 즐기는 풍류를 노래한 후 안빈낙도하겠다는 결심을 노래한 것으로, 소재는 '춘경(春景)', 즉 봄 풍경이다. |
<서사> 풍월주인
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생애) 엇더한고. 녯 사람 風流(풍류)랄 미찰가 맛 미찰가. 天地間(천지간) 男子(남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난, 山林(산림)에 뭇쳐 이셔 至樂(지락)을 모랄 것가. 數間茅屋(수간 모옥)을 碧溪水(벽계수) 앒픠 두고, 松竹(송죽) 鬱鬱裏(울울리)예 風月主人(풍월 주인) 되어셔라.
속세에 묻혀 사는 분네들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옛 사람의 멋진 취향을 따를는지 못따를런지? 세상에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나와 같이 풍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마는 그들은 어찌하여 나처럼 산림에 묻혀 지극한 낙을 누릴 줄 모르는 것일까? 두어 간 되는 초가집을 푸른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송죽이 울창하게 우거진 속에서 대자연의 주인이 되었도다.
<본사 1> 춘경에의 몰입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桃花杏花(도화 행화)난 夕陽裏(석양리)예 퓌여 잇고, 綠楊芳草(녹양 방초)난 細雨中(세우중)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造化神功(조화 신공)이 物物(물물)마다 헌사랍다. 수풀에 우난 새난 춘기(春氣)랄 맛내 계워 소래마다 嬌態(교태)로다. 物我一體(물아 일체)어니, 興(흥)이애 다랄소냐. 柴扉(시비)예 거러 보고, 亭子(정자) 안자 보니, 逍遙吟詠(소요 음영)하야, 山日(산일)이 寂寂(적적)한대, 閒中眞味(한중 진미)랄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엊그제 겨울이 지나가고 새 봄이 돌아오니, 오얏꽃과 살구꽃은 저녁놀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드나무와 꽃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구나. 이 봄 경치는 칼로 말아 내었는가, 아니면 붓으로 그려낸 것인가? (조각품과도 같이 그림과도 같이 아름답다) 조물주의 신비로운 솜씨가 삼라만상에 야단스럽게 드러났다. 수풀 속에 우는 새는 춘흥을 못내 이겨 소리마다 아양을 부리는 듯하구나. 자연에 몰입되어 자연과 내가 한 몸이니 저 새들의 흥과 나의 흥이 다르겠는가? 사립문 쪽으로 걸어 보고 정자에 앉아도 보고, 천천히 거닐며 시를 읊어, 산 속의 나날이 고요한 데, 한가한 생활 속의 참된 재미를 아는 사람 없이 나 혼자 즐기는구나.
<본사 2> 춘경의 완상
이바 니웃드라, 山水(산수) 구경 가쟈스라. 踏靑(답청)으란 오날 하고, 浴沂(욕기)란 來日(내일) 하새. 아참에 採山(채산)하고, 나조해 조수(조수)하새. 갓 괴여 닉은 술을 葛巾(갈건)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和風(화풍)이 건듯 부러 綠水(녹수)랄 건너오니, 淸香(청향)은 잔에 지고, 落紅(낙홍)은 옷새 진다.
樽中(준중)이 뷔엿거단 날다려 알외여라. 小童(소동) 아해다려 酒家(주가)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난 술을 메고, 微吟緩步(미음 완보)하야, 시냇가의 호자 안자, 明沙(명사)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淸流(청류)랄 굽어보니, 떠오나니 桃花(도화)ㅣ 로다. 武陵(무릉)이 갓갑도다, 져 뫼이 긘 거인고. 松間(송간) 細路(세로)에 杜鵑花(두견화)랄 부치 들고, 峰頭(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千村萬落(천촌 만락)이 곳곳이 버러 잇네. 煙霞日輝(연하 일휘)난 錦繡(금수)랄 재폇난 닷.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有餘(유여)할샤.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 가자꾸나. 푸른 봄풀을 밟는 들놀일(답청)랑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일(욕기)일랑 내일 하세. 아침에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 물고기를 낚으세. 이제 막 익어서 괴는 술을 갈포 두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잔 수를 세면서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들을 건너 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지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내게 말하여라. 작은 아이더러 술집에 술이 있는가 물어서 어른은 지팡이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나직이 읊조리며 느릿느릿 걸어와 시냇가에 혼자 앉아, 맑은 모래 위의 깨끗한 물에 술잔을 씻어 술을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무릉 도원이 가까운가 보다. 저 들이 그것인 게로구나. 소나무 사이 좁은 길에 진달래꽃을 불들고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 높은 곳에 앉아보니, 수많은 촌락이 여리저기 벌여 있네. 안개와 놀과 햇살로 채색된 빛나는 산수의 경치는 마치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다. 엊그제까지 검던 겨울의 들에 벌써 봄빛이 풍성히 넘치는구나.
<결사> 자연을 벗하며 안빈낙도함
功名(공명)도 날 끠우고, 富貴(부귀)도 날 끠우니, 淸風明月(청풍 명월) 外(외)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簞瓢陋巷(단표누항)에 흣튼 혜음 아니 하내. 아모타, 百年行樂(백년 행락)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려 따르지 않으니, 맑은 바람이며 밝은 달 - 아름다운 자연 외에 어떤 친구가 있을 것인가? 소박하고 간소한 생활을 하는 이 시골 살림에 번잡한 허튼 생각을 아니하네. 아무렇든지 한편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니 만족해 하지 않고 어찌하랴?
● <상춘곡> 정리
* 작자 : 정극인
* 출전 : 불우헌집
* 연대 : 1) 창작 : 성종 원년 (1470)
2) 간행 : 정조
* 갈래 : 서정 가사, 양반 가사, 정격 가사
* 성격 : 묘사적, 예찬적, 서정적
* 표현 : 설의법, 대구법, 의인법
* 주제 : 봄 경치의 완상과 안빈낙도(安貧樂道)
* 의의 : 1. 최초의 가사 작품
2. 송순의 <면앙정가>에 영향을 줌
● <상춘곡> 이해하기
<상춘곡>은 조선조 가사 문학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성종 때 창작된 것으로, 정조 때 후손 정효목이 간행한 정극인의 문집인 <불우헌집>에 실려 전한다.
작가가 벼슬을 버리고 전라도 태인으로 돌아가 자연에 묻혀 살 때 지은 것으로, 자연애를 바탕으로 한 풍류를 통해 안빈낙도의 정신을 노래한 작품이다. 봄날의 흥취에 한껏 젖어 있는 작가의 자연을 기리는 송가(頌歌)이기도 한 이 작품는, 송순의 <면앙정가>를 거쳐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이어지는 강호가도의 시풍을 형성하며 호남 가단의 기반이 된 전형적인 가사이다.
<서사>에는 대자연의 주인이 된 화자의 기쁨과 여유가 있는 유유자적한 생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본사>에서는 봄 경치를 즐기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할 만큼 묘사가 뛰어나다.
<결사>에는 부귀 공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화자가 자연에 귀의하고 안빈낙도하는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대구법, 의인법, 설의법, 직유법 등 수사법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고사를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가사 문학의 효시라는 점과 작가가 정극인이라는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곧 이 작품이 가사의 효시 작품치고는 너무나 정제되어 있으며, <불우헌집>의 행장과 시문에 이 작품이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작가를 정극인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사의 효시 작품이 고려 말 나옹 화상의 <서왕가>라는 견해는 가설로 굳어졌고, <불우헌집>의 문집 내 다른 시문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정극인의 작품이라는 설이 아직까지는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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