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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 선상탄(船上歎)

지식창고지기 2009. 7. 12. 14:30

선상탄(船上歎)
배 위에서 탄식하다


/박인로-도계서원/

박인로

이 작품을 창작한 1605년은 임진 왜란이 끝난 지 7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로서, 악화된 대일 감정이 지속되고 있던 때이다. 즉, 반일과 극일은 당시 우리 민족의 일반적 정서였고, 직접 전쟁에 참여했던 박인로의 기본적인 정서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작자가 '통주사'로서 나라 수비의 임무를 맡게 됨에 따라, 임진왜란의 참상과 굴욕을 견딘 후에 이를 이상적으로 초극하려는 의지와 민족의 염원을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것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는
반일과 극일의 정서, 나아가 우리의 자신감과 우월감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 애호의 정서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늘고 병(病)든 몸을 주사(舟師)로 보내실새,  을사(乙巳) 삼하(三夏)애 진동영(鎭東營) 나려오니
관방중지(關防重地)예 병(病)이 깁다 안자실랴.  일장검(一長劍) 비기 차고 병선(兵船)에 구테 올나,
여기진목(勵氣瞋目)하야 대마도(對馬島)을 구어보니,  바람 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 잇고,
아득한 창파(滄波)난 긴 하날과 한빗칠쇠.
(임금께서) 늙고 병든 몸을 수군 통주사로 보내시므로, 을사년(선조 38년, 1605) 여름에 부산진에 내려오니,
국경의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만 있겠는가? 한 자루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구태여(감히) 올라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누런 구름은 멀리 또는 가까이에 쌓여 있고(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음을 나타냄),
아득한 푸른 바다는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

선상(船上)에 배회(徘徊)하며 고금(古今)을 사억(思憶)하고,  어리미친 회포(懷抱)애 헌원씨(軒轅氏)를 애다노라.
대양(大洋)이 망망(茫茫)하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배 아니면 풍파 만리(風波萬里) 밧긔, 어내 사이(四夷) 엿볼넌고
무삼 일 하려 하야 배 못기를 비롯한고.  
만세천추(萬世千秋)에 가업산 큰 폐(弊) 되야,  보천지하(普天地下)애 만민원(萬民怨) 길우나다.
배 위를 왔다 갔다 서성거리며 예와 오늘을 생각하며 어리석고 미친 듯한 마음에 배를 처음 만들었다는 헌원씨(중국의 전설상의 황제로 배와 수레를 처음 만들었다 함)를 원망하노라.
큰 바다가 끝이 없어 천지를 둘렀으니,  진실로 배가 없었다면 풍파가 이는 바다 만 리 밖에서 어느 사방의 오랑캐가 (우리 나라를) 넘볼 것인가?(황제가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왜적들이 그걸 타고 침공했다는 말)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비롯(시작)하였던가?
오랜 세월에 무한한 큰 폐단이 되어, 온 세상 만백성의 원한을 조장하는구나.

어즈버 깨다라니 진시황(秦始皇)의 타시로다.  배 비록 잇다 하나 왜(倭)를 아니 삼기던들,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로 뷘 배 졀로 나올넌가.  뉘 말을 미더 듯고,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그대도록 드려다가,
해중(海中) 모든 셤에 난당적(難當賊)을 기쳐 두고,  통분(痛憤)한 수욕(羞辱)이 화하(華夏)애 다 밋나다.
장생(長生) 불사약(不死藥)을 얼매나 어더 내여,  만리 장성(萬里長城) 놉히 사고 몇 만년(萬年)을 사도떤고.
남대로 죽어 가니 유익(有益)한 줄 모라로다.  어즈버 생각하니 서불(徐市) 등(等)이 이심(已甚)하다.
인신(人臣)이 되야셔 망명(亡命)도 하난 것가.  신선(神仙)을 못 보거든 수이나 도라오면,
주사(舟師)이 시럼은 전혀 업게 삼길럿다.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 하나 왜국을 만들지 않았던들,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 말을 믿어 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많이 들여서
바다 가운데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왜적)을 남기어 두어서,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미치게 하는구나.
장생불사한다는 약을 얼마나 얻어내어 만리장성 높이 쌓고 몇 만 년이나 살았던가?
그러나 진시황도 남과 같이 죽어가니, 사람들을 보낸 일이 유익한 줄을 모르겠다. 아, 돌이켜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들이 매우 심하다.
신하가 되어서 남의 나라로 도망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못만났거든 쉬 돌아왔더라면,
수군인 나의 근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두어라, 기왕불구(旣往不咎)라 일너 무엇하로소니.  속졀업산 시비(是非)를 후리쳐 더뎌 두쟈.
잠사각오(潛思覺悟)하니 내 뜻도 고집(固執)고야.  황제 작주거(黃帝 作舟車)난 왼 줄도 모라로다.
장한(張翰) 강동(江東)애 추풍(秋風)을 만나신들,  편주(扁舟) 곳 아니 타면 천청해활(天淸海활)하다 어내 흥(興)이 졀로 나며,
삼공(三公)도 아니 밧골 제일강산(第一江山)애,  부평(浮萍) 갓한 어부생애(漁父生涯)을
일엽주(一葉舟) 아니면, 어대 부쳐 단힐난고.
 그만두어라 이미 지난 일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공연한 시비는팽개쳐 던져두자.
곰곰히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지나친 고집이구나. 황제가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잘못이 아니로다.
장한(중국 진나라 사람. 재주가 있고 글을 잘해서 제왕이 대사마를 삼았더니,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먹고 싶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다)이 강동에서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해도, 만일 작은 배를 타지 않았다면, 하늘 넓고 바다 넓다 한들, 무슨 흥이 저절로 났을 것이며,
정승 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경치 좋은 강산에 부평같이 물에 떠 다니는 어부의 생활을
한 조각의 작은 배가 아니면 무엇에 의탁하여 다닐 것인가?

일언 닐 보건댄,  배 삼긴 제도(制度)야 지묘(至妙)한 덧한다마난,
엇디한 우리 물은 나난 닷한 판옥선(板屋船)을 주야(晝夜)의 빗기 타고,  임풍영월(臨風영月)호대 흥(興)이 전혀 업난게오.
석일(昔日) 선중(舟中)에난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터니,  금일(今日) 주중(舟中)에난 대검장창(大劍長창)뿐이로다.
한 가지 배언마난 가진 배 다라니,  기간(其間) 우락(憂樂)이 서로 갓지 못하도다.
이런 일을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지극히 묘하지만,
어찌하여 우리 무리들은 나는 듯한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 (소동파가 적벽강 위에 띄운) 배에는 술상이 어지럽게 흩어졌더니, 오늘 우리가 탄 배에는 큰 칼과 긴 창 뿐이다.
같은 배이건만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다.

시시(時時)로 멀이 드러 북진(北辰)을 바라보며,  상시(傷時) 노루(老淚)랄 천일방(天一方)의 디이나다.
오동방(吾東方) 문물(文物)이 한당송(漢唐宋)애 디랴마난,  국운(國運)이 불행(不幸)하야 해추(海醜) 흉모(兇謀)애
만고수(萬古羞)를 안고 이셔,  백분(百分)에 한 가지도 못 시셔 바려거든,
이 몸이 무상(無狀)한달 신자(臣子)ㅣ되야 이셔다가,  궁달(窮達)이 길이 달라 몬 뫼압고 늘거신달,
우국 단심(憂國丹心)이야 어내 각(刻)애 이즐넌고.
때때로 머리 들어 임금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때를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 나라의 문물이 한나라·당나라·송나라에 뒤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들의 흉악한 꾀에 빠져
만고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고 있어, 백분의 일이라도 못 씻어 버렸거든,
이 몸이 변변하지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곤궁과 영달)이 서로 달라, 못 모시고
늙은들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향한 충성스러운 마음이야 어느 때라고 잊을 수 있겠는가?

강개(慷慨) 계운 장기(壯氣)난 노당익장(老當益壯) 하다마난,  됴고마난 이 몸이 병중(病中)애 드러시니,
설분 신원(雪憤伸寃)이 어려올 닷하건마난,  그러나 사제갈(死諸葛)도 생중달(生仲達)을 멀리 좃고,
발 업산 손빈(孫빈)도 방연(龐涓)을 잡아거든,  하물며 이 몸은 수족(手足)이 가자 잇고 명맥(命脈)이 이어시니,
서절 구투(鼠竊拘偸)을 저그나 저흘소냐.  비선(飛船)에 달려드러 선봉(先鋒)을 거치면,
구시월(九十月) 상풍(霜風)에 낙엽(落葉)가치 헤치리라.  칠종칠금(七縱七禽)을 우린달 못 할 것가.
근심하고 분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기지 못한 씩씩한 기운은 늙어가면서 더욱 씩씩하다마는 조그마한 이 몸이 병중에 있으니,
분함을 씻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푸는 것이 어려울 듯 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도 살아있는 중달을 멀리 쫓고,
발이 없는 손빈도 그 발을 자른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갖추어 있고 목숨이 붙어 있으니
쥐나 개같은 도적(왜구)을 조금이라도 두려워 하겠느냐? 나는 듯이 달리는 배에 달려들어 선봉을 거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헤치리라. 칠종칠금을 우린들 못할 것인가?

준피 도이(蠢彼島夷)들아 수이 걸항(乞降) 하야사라.  항자 불살(降者不殺)이니 너를 구태 섬멸(殲滅)하랴.
오왕(王) 성덕(聖德)이 욕병생(欲병生) 하시니라.  태평 천하(太平天下)애 요순(堯舜) 군민(君民) 되야 이셔,
일월광화(日月光華)난 조부조(朝復朝) 하얏거든,  전선(戰船) 타던 우리 몸도 어주(漁舟)에 창만(唱晩)하고
추월춘풍(秋月春風)에 놉히 베고 누어 이셔,  성대(聖代) 해불 양파(海不揚波)랄 다시 보려 하노라.
꾸물거리는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려무나.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으니 너희를 구태여 섬멸하겠는가?
나의 왕(선조)의 성덕이 같이 살기를 원하시니라. 태평천하에 요순의 군민처럼 되어 있어
해와 달의 빛에 아침이 거듭되거든(성왕의 덕이 계속되는 태평 세월이 되거든), 전투 배에 타던 우리 몸도 고기잡이 배에서 늦도록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배게를 높이 베고 누어 있어, 성군 치하의  태평 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 <선상탄> 정리
* 갈래 : 가사, 전쟁가사
* 연대 : 선조 38년(1605)
* 제재 : 배
* 주제 :
전쟁의 비애를 극복과 태평 성대 기원
* 의의 : 임진왜란의 체험이 반영된 전쟁 가사
* 표현의 한계성 : 고사 인용이 많음. 한자어 사용이 많음

● <선상탄> 이해하기
작가가 임진왜란 발발 이후 부산의 통주사로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평화를 희구하는 작가의 강렬한 소망이 담겨 있다.
<태평사>와 더불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문학이다. 조선 전기의 가사가 현실을 관념적으로 다룬 데 반해,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민족 전체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상의 전개는 주로 배를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쟁을 일으키고 침략자를 만든 계기로서의 배와 평화를 상징하는 배라는 이중적 의미를 설정해, 전선(전선)이 평화로운 태평성대에 풍류를 즐기는 배가 되기를 희구하는 우국단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용상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는 진동영으로 부임해온 작가가 일장검을 짚고서 배 위에 올라 대마도를 굽어보는 심경이 나타나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배를 만들어 침략의 발판을 만든 헌원씨와, 왜국에 사람이 살게 함으로써 왜적이 생기게 한 진시황을 탓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속절없는 시비를 거두고 배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흥취와 풍류를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했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네 번째 부분에서는 국운을 걱정하는 화자의 우국단심과 왜구를 추풍낙엽과 같이 무찌르겠다는 당당한 기개를 노래하고 있으며,
다섯 번째 부분에는 태평 성대를 희구하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한문투의 수식이 많고 직서적인 표현이 많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송강 정철의 가사 작품에 비해 문학성이 뒤떨어지긴 하지만,
호쾌하고 결의에 찬 작가의 목소리를 담은 대표적인 전쟁 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