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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아직은 겨울 낙옆 속, 봄꽃이 숨어 핀다

지식창고지기 2009. 7. 13. 15:26

아직은 겨울 낙옆 속, 봄꽃이 숨어 핀다
거제 가라산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마파람에 실려 오는 훈훈한 기운을 막아보지만 어느새 봄기운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양지바른 언덕배기 봄나물은 부지런한 처녀의 손을 탄지 오래고,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시냇가의 버들가지에도 봄빛이 뚜렷하다.

 어김없이 순환하는 계절이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앞서 간다. 야생초산행은 봄기운을 찾아 남해바다에 떠있는 섬 거제도 가라산으로 나섰다. 가라산(加羅山 585m)은 거제도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거제의 진산이다. 주변에는 노자산과 망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고, 고운모래로 유명한 명사해수욕장, 매끈한 몽돌만 구르는 학동몽돌해수욕장,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명소인 해금강, 천연기념물233호로 지정된 동백림이 있다.

 가라산과 노자산은 우리나라에서 고로쇠수액을 제일 먼저 채취하는 곳이다. 다른 곳에서는 한겨울이라 할 수 있는 입춘 전후가 되면 고로쇠수액을 맛볼 수 있다. 고로쇠수액이 한창일 때 거제에는 동백꽃도 피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에 핀다고 동백이라 했지만 사실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가라산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의 모양이나 능선으로는 곳곳에 드러난 바위가 있어 남해바다를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은 산이다. 청명한 날에는 욕지도, 비진도, 매물도와 통영의 한산도는 물론이고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라산이라는 산 이름은 금관가야의 국경이 북으로는 합천의 가야산, 남으로는 거제도 최남단 가야산이었는데, 가야산이 가라산으로 변음 되어 전해졌다고 한다.

 산행은 다대초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저수지를 지나 학동재로 오르는 길을 따랐다. 산길은 누구나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경사로가 끝까지 이어진다. 학동재에 이르자 옛 성터가 나타나고 길은 성터를 따라 계속 된다.

 동백꽃만 꽃소식을 전하며 봄을 알리지 않는다. 가라산에 가면 봄의 전령사 역할을 자청하며 꽃잎을 내민 야생초도 반겨준다. 지리적으로 남쪽에 위치하여 따뜻한 바닷바람을 먼저 맞는 곳이라 부지런히 발품을 팔 각오만 되어 있으면 누구나 만날 수 있다.

 성터 옆 능선 길에는 봄의 전령인 ‘노루귀(사진 위)’가 숨바꼭질 하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찬바람이 무서워 아직은 낙엽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꽃의 높이가 한 뼘도 되지 않고, 크기도 작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봄이 무르익어 꽃이 무더기로 핀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노루귀’는 키 큰 활엽수 그늘을 좋아 한다. 초봄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따뜻한 햇살을 충분히 받아 꽃을 피워 결실을 맺고,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에서 보내게 된다.

‘노루귀’라는 식물의 이름은 꽃이 한창일 때 부드러운 털에 덮여 나오는 잎의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학문적으로 보면 잎보다 먼저 피는 ‘노루귀’의 꽃은 꽃받침으로 꽃잎이 아니다. 같은 ‘노루귀’지만 색의 변이가 심하여 흰색은 물론이고 분홍색, 드물게는 보라색의 꽃도 핀다. 적응력이 강한 ‘노루귀’는 지역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여 울릉도에서는 섬노루귀, 제주도에서는 새끼노루귀로 진화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귀여운 ‘노루귀’를 만나고 싶다면 서둘러 봄이 무르익기 전에 찾아 나서야 한다.

 능선에 자라한 바위에 걸터앉자 멀리 수평선을 응시해보는 것도 가라산 산행의 묘미다. 봄 산행의 흠이라면 연무가 자주 끼여 멀리까지 볼 수 없는 시계(視界)다. 힘든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래야 바위를 두어 번 짚고 올라서면 끝나는 길이 이곳 등산로다.

 정상이 가까워지면 노자산(진마이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오래지 않아 헬기장이 나타나고 정상은 북쪽 가까운 곳에 있다. 아직 정상부근에는 푸른빛을 찾을 수 없다.

 하산은 헬기장으로 되돌아 나와 남쪽의 다대마을 쪽으로 이어진 길로 들어섰다. 곧이어 샘이 나타나고 길은 경사를 더한다.

 낙엽활엽수가 울창한 하산 길 곳곳에서도 무리지어 핀 ‘노루귀’를 만날 수 있다. 여기도 예외 없이 흰색과 분홍색의 꽃이 어울려 함께 피어있다.

[img1] 더 낮은 곳으로 내려서자 ‘남산제비꽃’이 잎은 낙엽 속에 감춘 채 꽃대 하나만 내밀고 있다. ‘남산제비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40여종의 제비꽃 가운데 하나다. 처음 발견된 곳이 남산이라 얻은 이름이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남산제비꽃’의 특징은 잎이 3개로 완전히 갈라지고, 다시 두세 개로 갈라져 깃털모양이 되고, 꽃은 흰색으로 자주색 맥이 안쪽으로 나있다. 비록 한 송이의 꽃에 아이가 손가락을 꼭 움켜진 듯 가는 잎은 낙엽 속에 감추었지만 자태만은 ‘남산제비꽃’이 틀림없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봄이 무르익기 전에 미리 준비하였다가 제비꽃을 하나하나 분류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산 길은 다소 경사가 있는 길이지만 곳곳에 핀 꽃으로 인하여 즐겁게 내려 올 수 있었다. 이른 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꽃이 더 있지만 한 곳에서 모두를 만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노루귀와 함께 마주친 남산제비꽃 만으로도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가라산을 오르는 목적이 야생초를 보기 위함 이라면 다대마을에서 출발하고 돌아오는 회기산행이 편리하다. 산행에 걸리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 4시간이면 충분하다.
 [img2]
<가라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