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언저리 밭둑에는 억새가 춤을 추고, 산 능선의 갈참나무는 아직도 갈색 잎을 매달고 있다. 그뿐 아니라 계절을 망각한 듯 제철마냥 꽃을 피운 구절초와 쑥부쟁이, 미국가막사리도 있다. 야생초산행은 계절을 잊고 초겨울의 차가운 날씨에 맞선 이들을 찾아 금오산(849m,金鰲山)으로 향했다.
금오산은 정상에 자리한 군사시설로 인하여 입산을 한동안 통제하여 오던 산이다. 군사시설이 철수되고 난 1993년부터 등산이 허용되었고, 최근 조망이 뛰어난 산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금오산에 올라보면 사방으로 큰 산이 없어 시야에 막힘이 없다. 북으로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남으로는 쪽빛 남해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장난감처럼 내려다보이는 섬들은 토끼섬, 개구리섬, 솔섬, 나물섬, 장구섬, 방아섬, 넓은섬, 쪼각섬, 대섬 등 하나같이 다정스럽고 예쁜 이름을 지녔다.
최근에는 남해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해돋이 산행지로 알려지면서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하동군에서는 해돋이 산행꾼들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별도의 시설공사를 하고 있어 공사가 끝나면 편안하게 일출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될 것 같다.
[img1] 산행기점을 청소년수련원에서 시작하여 계곡을 따라 올랐다. 청소련수련원 담장 주변에는 아직도 가을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씨를 달고 있어 옷에 달라붙어 귀찮게 하는 가막사리, 풀을 베고 난 자리에 뒤늦게 자라나 꽃이 핀 개쑥부쟁와 구절초, 메마른 땅이나 바위틈에 한 줌의 흙만으로도 잘 견디는 ‘이고들빼기’ 등 대부분이 국화과 식물들이다. 잎이 부드러워 힘이 없어 보이는 ‘이고들빼기’는 생김새와는 달리 고들빼기 종류 중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꽃을 관찰 할 수 있다. 잎이나 가지를 자르면 하얀 유액이 나오는데 쓴맛을 지녔다. 노란 꽃은 가지 끝에 여러 송이가 평평하게 달리는데 꽃이 필 때는 곧게 서지만 질 때는 아래로 처진다. 꽃의 이름은 꽃잎인 설상화가 사람의 앞니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댐을 지나면 계곡이 나타나고 계곡은 하나의 넓은 반석 위를 가늘게 흐른다. 다소 경사가 있고 물이 흐르는 반석지대에 들어 갈 경우에는 미끄러운 곳이 많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석지대 가장자리 바위틈으로 사철 푸른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기가 있는 바위 겉이나 냇가에 잘 자라는 ‘석창포’다. 천남성과인 ‘석창포’는 뿌리가 대나무뿌리처럼 굵고 마디가 있으며 그 마디에서 수염뿌리가 나고 드러난 부위는 푸른색을 띤다. 한약재로 널리 쓰이는 ‘석창포’는 정신을 맑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하여 학생이나 정신노동자에게 좋다고 한다. 향기가 나는 방향성 식물로 잎은 뿌리줄기 끝에 모여서 난다.
반석지대가 끝나는 곳에서 계곡을 건너 건너편 기슭으로 오르게 된다.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르게 경사가 급해진다. 급경사의 언덕을 지그재그로 오르게 되는 남동방향에는 아직도 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가을꽃이 아니라 봄에 피는 꽃이었다. 바느질을 할 때 손가락에 끼우는 골무를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골무꽃’이다. ‘골무꽃’이 피는 시기는 5~6월로 초여름이다. 꿀풀과에 속하는 ‘골무꽃’이 가을을 지나 추운 지금 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봄에 핀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는 두 세 송이에 불과 하지만, 꽃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줄을 서듯 두 줄로 핀 것은 제철과 다름없다. 꽃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꽃은 밑 부분이 꼬부라져 곧게 섰고, 윗입술은 투구모양이고 아랫입술은 넓게 앞으로 내밀고 자주색 반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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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오르면 무당이 굿을 하는 당나무가 나오고 샘이 있으며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어느 길을 선택하드라도 두 길은 석굴암에서 만나게 된다. 같은 방향으로 내려 올 생각이라면 길을 달리하여 오르내린다면 지루함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조망이 뛰어난 금오산에는 고려 헌종 때부터 봉수대(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를 설치하여 왜구의 침입을 대비했다고 한다. 너덜지대 한 가운데 위치한 봉수대 옆에는 석굴암도 있다. 석굴암은 봉수대를 관리하는 파수꾼들이 사용하던 숙소였으나 지금은 불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석굴암을 지나 너덜지대를 벗어나면 곧장 능선에 이른다. 오래지 않아 금오산마애불로 향하는 안내판이 나오는데 마애불을 경유하여 정상을 갈 수도 있고 하산할 때 돌아 내려와도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길을 왕복하지 말고 오르내리는 길을 달리하면 좋다.
금오산의 또 다른 볼거리 마애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90호)은 정상에서 가까운 9부 능선 달바위 아래 위치한 천연석굴 서쪽 벽에 음각되어 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는 판독이 쉽지 않으나 구름을 타고 달을 업은 채 하늘을 나는 형상이라고 한다. 석불 바로 옆에는 역시 구층 석탑이 음각되어 있다. 달바위를 넘으면 정상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정상 주변은 벌써 겨울처럼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금오산 정상은 통신시설과 방송시설, 주차장이 점령하고 있어 훼손이 심하다. 군사 시설이 있던 곳이라 정상까지 도로가 나있어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큰 장애물이 없는 금오산 정상은 도로를 따라 돌면서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빼어난 조망에서 가치를 찾는다면 즐거운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금오산 등반은 정상까지 이어진 도로를 따르는 것보다 교통편을 고려하여 청소년수련원이 있는 상촌마을을 출발하여 왕복하거나, 마애불을 구경하고 직진하여 대치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어느 길을 택하든 등반에 소요되는 시간은 4~5시간은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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