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敎와 中國文化
I. 序 言
「도교와 중국문화」를 서술하는 첫머리에서 葛兆光은 고대문화를 연구하는 이들이 때때로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첫째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고대의 문화현상을 하등의 가치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며, 둘째는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고대의 문화현상을 몇 가지 기본공식에 짜맞추는 것이다.
葛兆光은 이러한 "현대 학자"들의 「시각적 편중」에 의해서 도교가 종교이기 보다 사상으로서의 몇 가지 개념으로만 압축되어 표현되었음을 비판하며, 기존의 연구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음을 밝힌다.
그는 당시대 사람들의 문화가 "동일한 근원과 구조를 통한 지연, 사회, 인간의 상호교감"이라는 총괄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형성되었다는 체계를 설정하여, 글을 전개해 나가며, 위의 이론적 체계는 「도교와 중국문화」 본서를 이해함에 있어 필수적 요소이다.
본 글은 도교의 이론, 역사속에서의 발전과정, 사대부 문화와 세속 문화, 그리고 중국 고전문학에의 영향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려 한다.
II. 도교의 이론
종교를 사상이나 철학이 아닌 종교 자체로 인식하여 연구하는것은 단순한 복제나 환원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각도에서 파고 들어갈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이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도교의 이론, 신의 계보, 의식, 방법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어떻게 연결하고 그 핵심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다름아닌 것이다.
여기서 사유방식은 특히 중시해야 될 핵심이다.
고대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자연과 사회의 모든 현상을 자신들의 심리적 요소(감각, 경험, 상상)들로 통합시켜 해석하는 우주관념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우주관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중화 민족의 문화 속으로 침투하여 완전히 습관화된 사유 구조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혹 새로운 사물이나 현상에 맞닥뜨릴 경우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사유 틀거리 안에서 대응할 만한 것을 찾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서로 하등의 상관관계도 없는 사물까지도 감각상의 유사함을 이유로 서로 연관되었다.
도교는 이러한 사유방식과 「도」「음양」「오행」이론이 시간적, 공간적인 연결성을 맺으면서 형성된 토속 종교이다.
도교의 우주기원, 구조에 관한 이론의 초기에는 神의 자리가 없었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낳으며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은 물론 신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자연적인 변화과정을 의미할 뿐이다. 음양의 화합과 오행의 상생과 상극, 그리고 천인합일을 바탕으로 한 천인감응과 물물상관, 이 역시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진 현상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도식에는 근본적인 이론적 결함(인과관계나 종속관계가 불분명하다.)이 존재하며, 실증적인 결함(도가 음양을 낳는다든지 음양이 화합하고 오행, 오색, 오장이 서로 사응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인과관계를 실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도교에서도 신이 등장하여 여러 가지 수수께끼의 해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哲理는 어느 새 종교로 변하고, 곳곳에 神祇(하늘과 땅의 신)가 끼어들어 「도」「음양」「오행」의 화신이나 집행자로 행세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노자가 그 일을 하였는데, 나중에는 원시천존, 옥황대제로 바뀌었고, 그들 아래로 희귀하고 괴이한 귀신 명단이 연이어 줄을 서게 되었다.
III. 도교사
도교는 조악하고 비속한 무격방술에서 점차 발전되어 哲理를 갖추면서 신의 계보와 의식 방법을 지닌 종교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남북조 시대에 들어서면서 민간종교에서 다시 궁궐로 진입하여 왕실의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삶을 위주로 하고, 즐거움을 위주로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향락에 도취되어 살면서, 죽음을 잊고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온갖 쾌락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도교의 종교적 가르침은 세속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인생의 부족한 점을 심리적으로 보상해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곤란의 대응수단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도교는 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하나의 종교로 당, 송, 원, 명, 청의 1천여년의 세월 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IV. 사대부 문화와 세속 문화
중국문화에서 도교에 영향관계를 살펴보면, 당송문화의 변천이라는 거대한 흐름속에서 분명한 변화가 발생하는데, 세 가지 서로 다른 발전 방향이 그것이다.
도교의 본래 면모인 재초, 부록, 연단 등의 의식과 방법으로 사람들(주로 황제나 상층귀족 관료계층)의 생존과 향락에의 욕망에 영합하는 것 말고도, 한편으로는 불교의 哲理에서 흡수한 사상과 도교에 잔존하고 있는 노장사상과 양생사상을 강조시키고 자기 마음의 청정공적, 자기 마음의 한적담백을 특징으로 삼아 사대부 계층에 침투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의 인과응보 윤회사상 등과 융합함과 동시에, 유가의 윤리강령과 결합하여 도교에 있는 귀신에 대한 미신과 종교적 윤리성분을 강조시켜 선에는 선한 응보가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는 것을 간판으로 하여 미간의 침투하였다.
당시 사대부들은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고 이상을 실혀하는 것은, 자신의 본래적인 심성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되찾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유가는 인간의 욕망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인간의 욕망은 번뇌이니 또한 끊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도교에서도 인간의 정욕은 진귀를 소멸시킨다고 하였다. 유가는 욕망을 극복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誠과 敬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거듭 반성하라고 하였다. 불교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淸과 淨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밝게 하고 성을 드러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교는 장생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심리적 생리적 안정과 한적은 유지해야만 한다고 하면서 무위 무념하기를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심에서 시작된 인생이상의 추구는 곧 내적으로 정신과 마음에 대한 추구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구는 다시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억압하고, 그 욕망을 승화시켜 인격의 최상적인 完善을 위한 동력으로 삼고, 마음 속의 충동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당시 사대부의 앞에서 도교는 자신의 종교적인 색채를 옅게 하고, 심성의 자아수양과 고아하고 맑고 준엄한 생활방식, 그리고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양식의 도를 치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소양을 표현하는 담뱍한 내용과 초월하여 아무데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담박하고 청아한 심미적 정취와 예술경계를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세속의 일반 대중들의 경우에는, 현세의 안녕과 내세의 행복을 획득하는 길은 예법을 준수하고, 공손하게 농사일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가는 충효, 절의를 말하고 불교는 인과와 윤회를 말하며, 도교는 귀신이 복과 재앙을 주관하여 「선에는 선한 응보가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도교는 내심의 윤리적 관념과 외재적인 귀신 신앙을 집적하여 세속 대중들에게 강력한 구속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세속 대중들에게 있어서 도교는 윤리규범과 예법제도를 보완하는 하나의 힘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러한 추세는 도교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순수 미신형태의 의식이나 방법과 서로 합류하여,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서 귀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과 윤리관념으로 이용되어 세속 대중들을 속박하는 하나의 사슬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V. 道敎와 文學
종교와 문학은 연관성이 깊으면서도 실질적인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부분중의 하나이다.
종교는 상상력과 意象을 통해 신의 계보를 만들고, 다시 이를 인간의 신앙과 결부시킨다. 문학도 상상력과 意象을 통해 미적 意境을 창조하여 창조자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이렇게 사유와 의상의 내재적 조화로 말미암아 종교와 문학은 저절로 연관을 맺게 된다. 전자는 후자의 상상을 자극하여 대량의 신기한 의상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관계로 문학가가 종교의 신도가 아닐지라도 종교적 영향을 받게 되며, 그뿐만 아니라 일단 종교적인 받게 되면 다시 종교적인 사유, 감정, 의상이 끊임없이 문학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도교가 중국 고전문학에 끼친 영향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i. 도교는 여러가지 기이하고 신기한 意象 - 신선, 선경, 요귀, 도사, 법술 등 - 을 제공하였다.
ii. 도교는 인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VI. 結 言
「道敎와 中國文化」에서 葛兆光은 도교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시발로 하여 도교의 실질적 내용과 그 역사적 전개과정, 그리고 구체적인 영향관계를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의 논의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도교가 종교라는 점과 바로 그 이유로 말미암아 哲理나 思想뿐만 아니라 종교적 특성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도교의 싱의 계보와 儀式등에 주의를 기울였고, 영향관계를 고찰하면서도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수용자세에 대해 세밀한 탐사를 시도하였다.
葛兆光은 도교가 성립할 수 있었던 문화적 바탕, 즉 고대 사람들의 사유방식을 체계화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것은 바로 「동일한 근원과 구조를 통한 자여ㄴ, 사회, 인간의 상호교감」으로 당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총괄한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葛兆光의 이론적 체계 - 고대 사람들의 사유 방식 - 는 - 전적으로 葛兆光의 입장에서 본다면 - 도교를 이해함에 있어 필수적 요소로 작용한다.
「道敎와 中國文化」본 책의 내용이 워낙 방대한 관계로, 본 글에서는 아쉽지만, 도교의 이론, 역사속에서의 발전과정, 사대부 문화와 세속문화 그리고 고대문학에의 영향력등을 서술하였을 뿐 실제적으로 일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의식 儀式, 術, 귀신, 신선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였다.
도교를 그저 조잡한 신선, 귀신등이 등장하는 체계없는 - 물론 이론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 종교로만 알고 있던 본인에게 「道敎와 中國文化」는 새로운 앎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신선하였다. 허나, 그 내용이 워낙 많고, 만연체로 서술되어 있어, 이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본인이 비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본 글은 葛兆光 저자의 지식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며, 다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점에 만족하려 한다.
주 처리가 미흡하고, 간혹 횡설수설하고 장황한 전개가 눈에 띄는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葛兆光의 「道敎와 中國文化」는, 도교는, 귀신에 관한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삷 속에 있는 인간문화, 종교의 총체였다는 것을 밝힌 큰 장점을 지닌 훌륭한 中國 思想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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