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민족 영토

[동북아 한민족을 찾아서.31] 해외 한민족을 가꾸자

지식창고지기 2009. 5. 18. 12:53

[동북아 한민족을 찾아서.31] 해외 한민족을 가꾸자

 

지금까지 본란(本欄)-‘동북아 한민족을 찾아서’를 30회 연재하면서 주로 중국, 연해주, 중앙아시아에 산재하고 있는 한민족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원래 설정된 제목대로라면 당연히 재일본 한인들의 특별한 상황과 버려진 사할린 한인들의 처지를 논급했어야 함에도 여러 가지 사정상 그러하지 못 하고 끝을 맺게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해외동포에 대하여 여러 가지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동포, 교포, 교민 또는 해외한인, 거기에다 지역에 따라서 조선족, 고려인 등으로 부르고 있다. 모두가 같은 뜻이며 어떻게 부르든 의미상의 큰 차이는 없다. 그러 나 엄격히 구별하자면 그 용어에서 풍기는 뉘앙스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에 필자는 이번 기회에 이 용어를 정의(定義)하여 하나로 통일했으면 하는 희망과 아울러 제의를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에서 열거한 용어들을 포괄적으로 다 수용할 수 있는 말로서 ‘해외한민족’으로 표현 하면 좋을 듯하다. 이 용어의 정의가 잘못되어 어처구니없는 혼란과 큰 사 건이 야기되었다. 1999년 8월 국회에서 “재외동포 출입국과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 동포법)’이 통과되었는데, 재외동포에 대한 정의와 범위 때문에 큰 문제가 야기되었다. 동포를 정의함에 있어서 “이 법에서 재외동포라 함은, 1948 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한국 국적을 가졌던 자로 재외(在外)에 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법 논리에 의하면 한국정부 수립 이전의 재외거주자, 예컨대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등지에 살고 있는 한민족은 재외동포 범위에서 자동적으 로 제외(除外)되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정부 수립후 자기 선택에 의해서 미 주나 유럽, 동남아 등지로 이민간 사람은 재외동포이고, 일제하에서 생활고 에 시달려서 또는 강제징용에 의해서 혹은 독립운동가의 후예로서 거주 이 전의 선택권이 박탈당한 채 귀국할 길이 막혀 만부득이 해외에 거주하게 된 사람은 동포가 아닌 것으로 되어버렸다. 이렇게 됨으로써 재외동포중 반 이상이 동포에서 제외되었다. 정작 이 법에 의해 권익 옹호와 편의를 제공받아야 할 사람은 이들인데, 재외동포라 는 용어의 정의 때문에 거꾸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함은 언어도단이다. 재중 국, 재중앙아시아 지역 한인들은 이 법은 재외(在外)동포법이 아니라 제외( 除外)동포법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법 개정을 요구했다. 정부는 늦게나마 이 점을 깨닫고 법 시행령과 적용에서 구제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원래 이 법을 제정한 취지는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권익 옹호와 편의를 도모해주기 위한 것이었으나 중국정부의 항의 때문에 원래 의도대 로 되지 못한 것이다. 즉 중국정부는 재중 한인들은 이미 중국으로 귀화하 여 자기네 국민이 되어있는데 재외동포법을 제정하면 재중국 한인들을 자극 하여 혼란이 야기되며 양국간에 외교적 마찰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너무 전전긍긍하였다. 이 법에서 동포라는 용어 대신에 넓은 범위에서 다 포용할 수 있는 해외한민족이라는 용어를 채택 했더라면 이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570만 해외한민족은 소중한 존재로서 국가의 큰 자산이다. 우리는 이들 을 잘 가꾸어야 한다. 도의적으로도 그러하거니와 21세기 한민족이 지향하는 전략적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지난날의 민족사를 회고·반추하고 앞 으로의 진로 모색을 위해 고뇌하고 분발하며 슬기롭게 스스로를 추스려야 한다.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이스라엘의 예를 생각해보자. 이스라엘 민족은 영토를 잃고 2000년 동안이나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온갖 시련을 겪었지만 헤르츨 바이츠만, 벤 구리온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배출해 시오니즘(Zionism)으로 정신적 유대를 강화하여 오늘의 이스라엘국을 재건하였다. 1948년 5월14일 오후 4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흩어져 있던 65 만여명의 유대인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지도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는 유대민족의 역사적이며 본질 적인 권리와 유엔의 결의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수립하고, 이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을 선포한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유대인의 시오니즘 운동을 이 끌었으며 신생 이스라엘 초대 수상으로 선출된 벤 구리온이었다. 유대인들은 서기 73년 로마에 의해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반유대운동이 전 유럽에 확산될때 그들은 항상 지금 우리에게 시대적 정신이 무엇이며, 시대적 명제가 무엇인가를 자문자답하면서 어떠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연상하며 항상 희망 속에 살아왔다. 유대인은 패배를 기념하는 민족이다. 그들은 패배일에는 반드시 쓴나물을 식탁에 올려 패배의 쓴맛을 되씹어본다. 민족의 패배를 문서나 말로써 전해주는 것만으 로 불충분하고 쓴 음식물로 민족의식을 재생시킨다. 그리고 식사 마지막으로 ‘아라자’를 마신다. 이것은 최후의 승리를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민족을 나무에 비유한다. 유대인들은 과거라는 대 지(大地)에다 싱싱한 뿌리를 내린 한 그루의 큰 나무라는 것이다. 뿌리로 대지의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불행하게 밑둥이 잘려도 그 옆에서 지표 를 뚫고 새싹이 돋아나므로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과거라는 대 지가 공급해주는 영양분은 조상들이 물려준 교육·문화·철학·종교 등이며, 이를 통해 그들은 ‘유대인다움’의 정체성을 견지해가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의 유대인들은 씨줄과 날줄에 의한 유기적인 한 장의 직 물처럼 잘 짜여져 있다. 이 짜여짐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국내외 의 구별이 없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하베림코트 이스라엘’이라 한다. 모든 유대인은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이 형태가 바로 유대인공동체인 것 이다. 오늘날 해외한민족 문제를 고려할 때 유대인공동체는 우리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한 모델로서 참으로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내 집 식구는 내가 보살피고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을 우리가 거두고 가꾸지 않으면 타민족으로 부터 멸시당하고 박해와 천대를 받는다. 중앙아시아에는 많은 독일인들이 살 고 있다. 연해주 한인들이 강제이주당했던 것처럼 그들도 강제이주당했던 것 이다. 1924년 모스크바 근교 볼가강 유역에 독일인들이 자치주를 형성하고 살 고 있었는데 1941년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 중앙아 시아로 추방했다. 러시아에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개혁 개방 정책이 시행되 자 독일정부는 재빨리 손을 써서 중앙아시아에 산재하는 독일인들에게 모국 으로 귀환하거나 볼가강 유역으로 귀환할 선택권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국으로 귀환하였고 또는 볼가강 유역으로 재집결하여 제2 독일자치공화국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자기 민족을 보살피고 가꾸는 좋은 본보기인가. 우리 정부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무엇을 했는가. 1989년 한·러 국 교가 수립될 때 러시아독립국연합(CIS)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에 대하여 충 분한 연구를 하고 앞으로의 대책도 강구했어야 했다. 그 당시 정부는 북방 정책 완수라는 업적 쌓기에 급급하여 이곳 한민족에 대한 깊은 배려는 하 지 않은 채 30억달러를 한꺼번에 지원하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제주도에까지 왔을 때 1937 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고 한인들의 권익 옹호와 그 외 현안 문제들에 대한 보장을 받은 다음 지원했어야 했다. 당시 다 급했던 사정으로 보아 고르바초프는 우리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30억달러를 연해주에 연간 1억달러씩 투자한다면 아마도 가히 경제·사 회적 혁명이 일어날 것이고, 반세기 후에는 500만 한민족을 수용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해주는 우리들의 경제적 영토가 될 수 있을 것 이다. 집권자에게는 적어도 이런 안목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민족이 해야할 것은 유대민족처럼 세계 한민족공동체(Korean Communit- 약칭 KC)를 구성하는 일이다. 세계 각처에 산재하고 있는 한민족 을 한민족망(Korean Network)을 구축하여 한민족의 역량을 결집, 공동 번영 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대열에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해외한민족을 반드시 동참시켜야 한다. 이들에게는 경제적·문화적 접근방법을 통해 씨줄과 날줄로 민족망을 짜 야 한다. 역사는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위 주체의 의지 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보듯이 진취적이고 강렬한 의지가 작열할 때 역사는 웅비하고, 의지가 나약할때 침체한다. 이는 고 금의 진리이다. 고구려의 기상이 충천할 때 요동벌을 누볐고 외세에 의지하 고 눈치나 살필 때 나라를 잃었다. 이 이상 우리 가슴에 와닿는 교훈이 있겠는가.

 

이윤기해외한민족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