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민족 영토

[동북아 한민족을 찾아서.30] 한민족 통합

지식창고지기 2009. 5. 18. 12:51

[동북아 한민족을 찾아서.30] 한민족 통합

 

인간에게 있어서 혈통과 뿌리가 같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사람은 그 혈연과 지연에 근거하여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창조하면서 삶 을 영위했고 작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왔 다. 한민족은 같은 혈통을 지닌 단일민족으로 고대에는 만주와 연해주를 포 함한 넓은 지역을 무대로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고, 이후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이를 계승·발전시켜온 문화의 뿌리가 튼튼한 민족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화적 번영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외세에 의한 강제 개 항 이후 근대사의 격동기에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을미조약·아관파천·을 사조약 등의 수난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일제에 국권까지 상실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세계사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까 닭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역사 주체의 지위에서 객체의 지위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의 주·객 지위가 바뀌었다는 것은 한민족사에 있어 최대의 불행이었다. 그 여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내적으로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의 상황에 처해 있고, 외적으로는 아직 역사주체로서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솔직한 우리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21세기에 한민족이 지향할 역사적 제일의 과제는 역사 주체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한민족을 통합하는 일이다. 여기서 한민족 통 합이란 물리적 힘에 의한 인위적·지역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 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한민족이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승화시켜 그 정체 성을 제고하고 공동운명체적 연대감을 인식케 하여 함께 번영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 해외에는 120개 국가에 570만명 교포가 흩어져 살고 있다. 이 수 는 날로 늘어나 남북한을 합한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그러나 지금껏 우 리는 이들의 이주 배경과 현지에서의 애로사항과 장래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나 협조를 소홀히 한 채 한민족 통합의 필요성을 마음속 깊이 절감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한때 한국의 교민정책은 기민(棄民)정 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교포에 대한 관심도 대책도 없이 그냥 내버렸다는 비아냥조의 비판이었다. 지금도 교민정책의 기조는 ‘현지에 적응하여 열심 히 살아라’는 식이다. 이미 이주한 이상 조국에 대한 미련은 갖지 말고 빨리 현지인으로서 생활 자세를 확고히 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근래 대통령이 해외 나들이할 때 교포들의 환영연회 자리에서 한 연설 내용에서도 이런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애정으로 보살피고 가꾸어 민족일체감을 심어주는 교포 정책적 내용 이 담겨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교포들의 바람도 큰 것이 사실이다. 일찍이 중국 신해혁명 때 쑨원(孫文)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화교를 혁명의 어머니(華僑爲革命之母)라고 했다. 또 한편 덩샤오핑(鄧小平)은 1982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를 환영하는 화교들에게 “중국은 화교들의 거주지 가 어디든, 국적이 어느 나라이든 여러분을 중화인민으로 간주한다”고 선언 했다. 화교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자긍심을 가졌다. 십수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이 더 많은 인구가 아쉬워서 한 말이겠는가. 이 짧은 말 한마디에서 중국의 화교정책을 읽을 수 있다. 교민정책은 적어도 향후 100년은 내다 보고 입안해야 할 것이다. 밖으로 눈을 돌려 향후 한 세기를 조망해보면 시공을 초월하는 통신 및 교통수단의 발달과 지역공동체 형성으로 인해 국경과 주권의 개념은 퇴 색되고 생활권·문화(민족)권 중심의 새로운 형태의 영역, 이른바 문화적 영 토 또는 경제영역이 출현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 현상은 21세기에 예견되는 인류사의 획기적 변화의 핵이라 할 만하다. 유럽연합(EU)과 미주국가들의 블록화(NAFTA) 또는 구소련연방의 와해와 새 로운 민족주의 대두 등에서 감지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은 세기적인 변화 와 관련하여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세계 여러 지역에 집거하고 있는 한민족의 장래와 관련한 문제이다. 이들은 3∼4세대로 내려가면서 모국어를 잊고 민족에 대한 의식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조부모의 정성스러운 교육 영향으로 예절, 풍습, 생활양식 등 한민족의 문화적 원형을 간직한 채 쉽게 동화되지 않고 민족정체성을 견지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해외 한민족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 대단히 중요한 상황에 처해있음을인식해야 한다. 이들은 동화될 수도, 한민족으로 존속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서있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동화될 것이고, 가꾸면 한 민족으로 존속할 것이다. 앞에서 전망한 대로 국경의 벽이 허물어지고 영토 주권의 개념이 퇴색되며 문화적 영토의 출현이 가능하다면 한민족이 집거하 고 있는 지역은 문화적·경제적 접근방법으로 우리의 영역화함이 바람직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재국과 충돌이나 갈등이 야기되어서는 안된다. 배타 적·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주재국의 착실한 시민으로 적응하고 융화하면 서 의식의 내면에서 “우리는 한민족이다”라는 긍지를 가지고 정체성만 견 지하면 되는 것이다. 가령 옌볜(延邊)이나 타슈켄트에 집거하고 있는 한민족 이 국제법상으로 그 나라 국적을 가지고, 또 살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거나 우즈베키스탄이라 하더라도 조국과의 유대가 강화되고 한민족 문화를 간직 하여 정신적으로 한민족임을 인식하고 있으면 그들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은 사실상 우리의 문화 영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해외에 지역단위로 집거하고 있는 교포들의 비중과 위상 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들은 지난날의 인식처럼 모국으로부터 지원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짐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모국과 연계하여 국력이 해외로 진 출, 신장해 나아가는 데 있어 필요불가결의 존재로서 국가의 큰 자산이다. 그들은 민간외교관으로서 또는 우리 문화 홍보원과 한국상품 선전원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타슈켄트, 알마티 등지에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이곳 고려인들이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지 사정에 밝고 현지어에 능통하며 또 는 거주국의 관료나 산업분야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많아 우리 기 업들이 진출할 때 여러 가지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고 상품 선전원으로서 역할을 다해주었다. 지구상에는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한국이 여러 곳이 있다. 해외한민 족이 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거하며 문화적·경제적 영역을 형성하여 모국과 긴밀한 유대, 일체감을 간직하면 이는 시공을 초월하여 사실상 본국 영토 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옌볜조선족 자치주를 위시하여 중앙아시아 의 타슈켄트·알마티에 수십만명씩 집거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 유럽, 동남 아시아 여러 곳에 한인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들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서 우리의 문화적·경제적 영역 이 될 수 있다. 그 접근방법은 문화적·경제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가능하다 . 결코 정치적·군사적 접근법을 취해서는 안된다. 문화적으로 한민족 정체 성을 견지하며 한민족 경제망을 구축하여 공동이익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그 한 예로서 하와이와 일본과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하 와이는 진주만사건으로 일본과 악연이었지만 오늘날 사실상 일본의 영토화되 어가고 있다. 일본인들이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토지를 매입하며 정치적으로 도 일본계가 주지사와 연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주의회 68%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중·고교 학생들이 하와이 수학여행 중 비행기에서 내 릴 때 일장기를 손에 들고 펄럭이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들은 아마 도 하와이가 일본 영토의 한 부분처럼 착각하는 듯 했다. 실제로 미국은 하와이주에 형식적인 주권 행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일간에 하 등의 마찰이나 불편함이 없이 하와이는 잘 유지·번영하고 있다. 양국간에는 이익이 상반되지 않고 상호 호혜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21세기는 어떠한 나라이든 단일 민족국가로만 존속할 수 없고 다민족국가 형태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며, 따라서 복합문화 구조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지난 20세기는 이념적 동 서의 관계였다면 앞으로 21세기는 남북의 관계가 더 활발히 진척될 것이다. 남북의 관계란 부유국과 빈곤한 나라와의 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예상되는 것은 노동자의 생존권적 대이동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민족의 문제가 수반 되게 마련이다. 혈통과 뿌리를 같이하는 민족적 노동자군(群)이 다른 나라에 서 생존권을 향유하고 그 혈연에 의한 자연스러운 집거촌이 형성된다는 것 이다. 이때 그 혈통과 뿌리를 관리하는 모국과는 계속 유대가 강화될 수밖 에 없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점들을 전망하면서 해외교민정책의 기조를 정 립해야 할 것이다.

 

이윤기해외한민족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