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야마토,나라大和,奈良 - 오토모 야카모치 大伴家持

지식창고지기 2009. 7. 25. 13:30

오토모 야카모치 大伴家持


718(?) ~ 785. 8. 28.


일본 나라 시대[奈良時代]의 정치가, 와카[和歌] 시인.


36가선(三十六歌仙 : 후지와라 긴토[藤原公任]가 선정한 36명의 대표적인 와카 시인)의 한 사람이다.

다비토[旅人]의 맏아들이며, 부인 사카노우에 오이라쓰메[坂上大孃]는 사카노우에 이라쓰메[坂上郞女]의 딸이다.


746년 엣추[越中] 지방의 수령, 751년에 쇼나곤[小納言 : 영제(令制)의 판관에 해당하는 벼슬로 태정관(太政官)의 제3등관]이 되었다.

754년 병부(兵部)관리로서 사키모리[防人 : 북규슈 지방과 쓰시마 등지의 변방을 지켰던 병사] 등을 관장했다.

그후 오토모 일족의 운명이 걸린 대사건이 연속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제3자의 입장을 고수했던 것 같다.

지방관 등을 역임했으며 780년 참의가 되어 우 다이벤[右大辨 : 영제에 있어서 태정관의 제4등관]을 겸했고, 한때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했으나 곧 복직되어 783년 주나곤[中納言 : 태정관의 차관]에 진급했고 2년 후 주나곤 종3품, 무쓰[陸奧] 안찰사 진수부 장군으로 죽었다.

사후에도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유해가 추벌(追罰)되는 등 명문 출신의 정치가로서는 꽤 불우했다고 할 수 있다.

와카 시인으로서 문학사상 지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만요슈 萬葉集〉에 조카[長歌] 46수, 단카[短歌] 432수, 세도카[旋頭歌] 1수 등 만요 시인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만요슈〉 자체의 편집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이며 와카로서 서정의 극치라고도 할 독자적인 경지를 수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