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시대 平安時代
일본 역사에서 794~1185년의 기간.
시대명은 794년 나라[奈良]에서 천도한 헤이안쿄[平安京:교토]의 이름을 땄으며, 정치·문화의 중심이 헤이안쿄에 있었던 시대이다.
나라 시대(710~784)에 처음으로 채택되었던 중국식 중앙집중화된 정부 체계는 장원, 즉 개인 영지들이 점차 성장함에 따라 변모되었다.
이들 개인 영지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국가 토지를 잠식해가 결국 국가 재원을 감소시켰다.
9세기 중엽부터 조정은 후지와라 씨[藤原氏]의 지배를 받았는데, 후지와라 씨는 집안의 딸들을 왕의 후사와 결혼시키는 정책에 의해 섭정으로 왕실을 지배했다.
이 가문의 영향력은 후지와라 미치나가[藤原道長]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그는 995~1027년에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이후 후지와라 씨 출신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천황이 정권을 잡자 몰락하고 말았다.
1086년 시라카와 천황[白河天皇]이 일찍 퇴위해 막후에서 정치를 하는 인세이[院政] 체제를 설립함으로써 권력의 중심이 새로이 바뀌었으며, 이 제도는 이후 몇몇 천황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
이 시대에 궁중귀족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는데, 미학적인 세련됨을 추구함으로써 미술과 문학이 더욱 새롭게 발전했다.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쓴 11세기 소설 〈겐지모노가타리 源氏物語〉는 귀족생활에 대한 뛰어난 기록물이며 세계문학사에서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종교에서는 밀교인 천태종(天台宗)과 진언종(眞言宗)이 정교한 궁중의식과 병행되는 공식적인 의식들을 치렀다.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정토종(淨土宗) 교리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러한 교리들은 지방의 반란과 지방 군벌들 사이의 무력 투쟁으로 특징지어지는 헤이안 시대 말기의 사회적 격변기에 대중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지방 군벌들간에 벌어진 이러한 싸움은 1156년 수도에까지 파급되었으며 다이라 씨[平氏]와 미나모토 씨[源氏]는 서로 다른 천황을 세우기 위해 경쟁했다.
결국 다이라 씨가 승리해 1185년까지 조정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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