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풍전> 읽어보기 1
허랑 방탕한 이춘풍
숙종 대왕 즉위 초에 인심이 화합하고, 나라가 태평하여 백성이 편안하다. 이 때 서울 다락골에 한 사람이 있으되 성은 이(李)요, 이름은 춘풍 (春風)이라. 부모 살림이 넉넉하여 장안의 거부(巨富)로되 다만 혈육이 춘풍뿐이라. 부모 매양 사랑하여 교동(嬌童-교만한 아이 )으로 길러 내니 풍채가 고결하고 헌헌 장부라, 타인과 달라 못할 것이 전혀 없더라. 그렇듯 지내다가 양친이 일시에 생을 마치니 춘풍이 슬퍼하기 그지없더라. 삼년 상을 마친 후, 춘풍을 돌볼 이 없으매, 춘풍이 외입(外入-오입. 제 아내 아닌 딴 여자와 상통함)하여 하는 일마다 방탕하고 대대로 내려온 돈과 물건 마구 써서 없이하더라. 남북촌 외입쟁이와 한가지로 휩쓸려 다니며 밤낮으로 노닐 적에, 청루 미색(기생 집의 아름다운 여자 ) 달려들어 수천 금을 시각에 없이하니 천하 부자 석숭인들 그 무엇이 남을손가. 티끌같이 없어지고 진토같이 다 마른다. 춘풍이 하릴없이 제 집에 돌아와 처더러 하는 말이,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 집안이 어려우면 현명한 아내가 생각난다 )라, 옛글에 일렀건만 애고 이제 어찌할꼬.”
가련하다 춘풍 아내 하는 말이,
“여보소, 내 말 듣소. 대장부 되어 나서 문무(文武)간에 힘을 써서 과거에 급제하여 계수화를 숙여 꽂고 부모 전에 영화 뵈고 후세에 이름 내면 패가를 할지라도 무엄치나 아니할꼬. 그렇지 못하면 농업에 힘써 처자를 굶기지 말고 의식이나 호강으로 지내면, 그도 아니 좋을손가. 부귀 공명 마다하고 부모의 세전지물(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물건) 일조일석(一朝一夕) 다 없애고 수많은 노비 전답 뉘게 다 넘기고서 처자를 돌아보지 않고 주색 잡기 아침 저녁 방탕하여 저렇듯이 되었으니 어이하여 살잔 말인고.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주색 잡기 좋아 마오. 자고로 외입한 사람 뉘 아 니 망했는가. 미나리골 이패두는 청루 미색 즐기다가 나중 신세 글러지고 동문 밖의 오청두도 투전, 잡기 즐기다가 말년에 걸인 되고, 모시전 김 부자도 술 잘 먹고 허랑하기 장안에 유명터니 수 만 금을 다 없애고 기름 장사 다니네. 일로 두고 볼지라도 주색 잡기 다시 마오.”
이렇듯 만류하니 춘풍이 대답하는 말이,
“자네 내 말 들어 보소. 사환(使喚) 대실이는 술 한 잔 못 먹어도 돈 한 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사환을 못 면하고, 탑골 복동이는 투전, 골패(骨牌)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네.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 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은 앵무배(鸚鵡杯)로 백년 삼만 육천 일, 하루 삼백 배로 매일 취하였어도 한림 학사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 잡기 하였어도 나중에 잘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 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常事)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
이처럼 방탕하여 조석을 이룰 수 없이 탕진한지라, 춘풍이 하릴없어 그제야 회과 자책(悔過自責) 절로 나서 아내에게 사과하고 지성으로 비는 말이,
“자네 부디 노여 마오. 자네 부디 설워 마소. 이왕지사(已往之事) 고사하고 가난하여 못 살겠네. 어찌하면 좋단 말고. 오늘부터 집안일을 자네에게 맡길 것이니 자네 마음대로 처리하여 의식이나 줄이지 말게 하소.”
춘풍의 처 하는 말이,
“부모 주신 수만 금을 주색에 다 없애고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후에 혹시 침재, 길쌈, 방직하여 돈푼을 모을지라도 그 무엇을 아낄손가?”
춘풍이 대답하되,
“자네 말이 내 행세를 믿지 못하니, 이후 주색 잡기 않기로 글을 써 줌세.”
지필을 내어 글을 쓰는구나.
‘모년 모월 모일 이춘풍은 부모님의 수만 금을 주색 잡기에 다 날리고 지금은 잘못을 뉘우치니라. 이후로는 집안일을 부인 김씨에게 다 맡기니, 일체 다른 말 하지 않겠노라.’
하여 주니, 김씨 받아 장롱에 넣어 두고 이 날부터 집안을 다스린다. 침재 길쌈 능란하니 오 푼 받고 새 버선 짓기, 서 푼 받고 새김 볼 박기, 두 푼 받고 한삼(汗衫) 짓기, 서 푼 받고 헌 옷 깁기, 닷 돈 받고 도포하기, 일곱 돈 받고 금침하기며, 겨울이면 무명,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하기, 이렇게 사시 사철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사오 년, 수천 금을 모았구나. 의식이 넉넉하고 가세가 풍족하여 바랄 것이 없었더라.
이춘풍, 평양 장사 떠나다
이 때에 춘풍이, 아내 덕에 의복을 차려 입고, 고량 진미(膏梁珍味) 배 불리 먹으며 제 집 술로 매일 취하는구나. 마음이 교만하여 이전 행실 절로 난다.
떵떵거리고 내달아서 호조(戶曹) 돈 이천 냥을 대돈변으로 얻어내어 평양으로 장사 가려 하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이 말 듣고 크게 놀라 춘풍더러 하는 말이,
“여보시오 서방님, 내 말 잠깐 들어 보소. 이십 전에 세전지물 탕진하고 그 사이 오 년을 격단(隔斷)하고 앉았다가 물정도 모르는데 평양 장사 가지마오. 평양 물정 내 들었소. 번화, 사치하고 청루 미색, 단순 호치(丹脣皓齒) 반쯤 열고 교태(嬌態) 부려 돈 많고 허랑한 자는 세워 두고 벗긴다니 부디 장사 가지 마오.”
지성으로 만류하니 춘풍이 하는 말이,
“나도 또한 사람이라. 이십 전에 패가하고 원통하기 골수에 박혔으니, 낸들 매양 패가할가 속속히 다녀옴세.”
춘풍 아내 이른 말이,
“일전에 살림을 결딴 내고 참견 아니할 뜻으로 글을 써서 내 장롱에 넣었거든 그 사이 잊었는가. 의식을 내게 믿고, 편안히 앉아 먹고 부디 부디 가지 마소.”
춘풍이 이 말 듣고 크게 화내어 어질고 착한 아내 머리채를 얼레에 연 줄 감듯, 뱃사공의 닻줄 감듯 휘휘 칭칭 감아 쥐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며,
“천리 원정 장삿길에 요망한 계집년이 잔말을 이리 하니, 이런 변 또 있는가?”
제 아내 윽박지르고 집안 재물 다 털어서 말에 싣고 떠날 적에, 불쌍하다 춘풍 아내 아무리 여러 말로 말리어도 막무가내일러라.
추월, 이춘풍을 홀리다
이 때 춘풍이 무학재 얼른 지나 의기양양 평양 길 내려가니, 때는 춘삼월 호시절이라. 수양 가지마다 꾀꼬리가 날아들고, 나는 나비, 우는 새는 봄철을 희롱한다. 대동강에 다다라서 모란봉 쳐다보니, 경치도 좋거니와 영명사(永明寺) 극히 좋다. 성내에 들어서니 인가도 번성하고 물색도 번화하다.
춘풍의 거동 보소. 최성루 돌아들어 좌우 산천 구경하고 또 한편 바라 보니 옛 마음이 절로 난다. 이런 변이 또 있는가. 청루 앞을 썩 지나서 객사 동편 자리 잡고, 열두 바리 실어 온 돈 차례로 들여놓고 삼사 일 유숙하며 물정을 살피더라.
하루는 난간에 의지하여 한 집을 바라보니 집치레도 좋거니와 저 집 주인 거동 보소. 일색 추월이라. 얼굴도 일색이요, 노래도 명창이요, 나이는 십오 세라. 성중의 호걸과 팔도의 소년 한량 한 번 보면 수삼백 석 쓰기를 물같이 하는구나.
이 때 서울 이춘풍이 수천 냥 싣고 와서 뒷집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추월이 넌짓 춘풍을 홀리려고 표연한 교태(嬌態)로 녹의 홍상(綠衣紅裳) 차려 입고 천연히 앉았구나. 춘풍이 얼른 보니 얼굴, 태도 청천(晴天) 명월(明月) 같고, 모란화 아침 이슬에 반쯤 핀 형상이요, 그 절묘한 맵시는 그림 속 해당화요, 월궁의 항아(姮娥)로다.
추월이 홀로 앉아 거문고를 무릎 위에 얹어 놓고, 봉황곡을 둥흥동동지 동당 타는 소리에 춘풍의 심신이 황홀하여 미친 마음 절로 난다. 제가 본디 계집이라 하면 화약 한 섬을 지고 모닥불에 보금자리 칠 성질이라. 일신의 정신 있는 대로 모다 그리 간다. 춘풍이 거동 보소. 꾀꼬리 수양버들 찾아가듯, 나비가 꽃밭을 찾아가듯, 갈지자 걸음으로 문 안에 들어서니 추월의 거동 보소.
춘풍이 오는 양을 얼른 보고 옥안(玉眼)을 번듯 들어 계단 밑에 내려 서서 춘풍의 옷자락을 휘어잡고 방 안으로 맞아들이니 집치레도 황홀하다. 추월이 은근한 눈짓으로 영접하여 앉은 모양, 아리땁고 고운 태도, 복숭아꽃 만발할 때 반만 핀 홍련(紅蓮)이라.
이말 저말 다 버리고 추월이 분부하여 주찬을 차려 올 제, 섬섬옥수로 졸졸 퐁퐁 가득 부어 춘풍에게 드리니,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초로 같은 우리 인생 한 번 돌아가면 뉘라 한 번 먹자오리. 살았을 제 먹사이다.”
춘풍이 받아 먹고 흥에 겨워 노는구나.
“추월, 춘풍 연분 맺어 한가지로 놀아 볼까.”
추월이 대답하되,
“화류 봉접(花柳蜂蝶) 좋은 연분 어이 인제 만났는고.”
허랑 방탕한 이춘풍은 장사에 뜻이 없고 이 날부터 이천 오 백 냥을 마음대로 쓰는구나. 추월이 수천 냥을 홀리려고 교태하여 이른 말이,
“초록 저고릿감 날 사 주오. 은죽절, 금봉채, 온갖 노리개 날 해주오. 동래 반상, 안성 유기, 청동 화로 날 사 주오. 문어, 전복 안주하게 날 사 주오.”
온갖 것을 해 달라니 허랑한 이춘풍이 한 가지나 사양할까. 수천 냥 돈을 비일비재 내어 주니 일 년이 못 가서 돈주머니가 비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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