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풍전 (李春風傳)
미상
숙종 대왕 평화로운 시기, 서울 다락골에 이춘풍이 살았다. 춘풍은 부자집의 독자로 인물과 재주가 뛰어났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자 방탕하게 재물을 탕진하여, 아내에게 집안을 맡긴다는 수기를 써 주게 되었다. 아내가 열심히 길쌈하여 오년만에 제법 넉넉히 살게 되자, 춘풍은 아내를 윽박질러 가산을 긁어 모으고 호조 돈 이천 냥을 빚내어 평양으로 장사를 떠난다. |
* 작자, 연대 : 미상
* 종류 : 세태소설, 풍자소설
* 성격 : 풍자적
* 주제 : 기생에게 매혹된 양반 풍자
● <이춘풍전> 이해하기
<이춘풍전>은 정확한 창작 연대와 작자를 알 수 없는 세태 소설 (世態小說, 그 사회의 풍속·인심·유행 등을 묘사한 소설)이다. 조선 시대 말기, 즉 19세기의 작품으로 추측되며, 세태 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갈래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서민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판소리로 가창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이춘풍전>과 같은 세태 소설이 창작될 당시, 사회는 이미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여러 가지 모순에 심한 몸살을 겪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당파 논쟁의 혼란이 극에 달해 소수 양반 가문만이 모든 관직을 독점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리하여 결국 많은 몰락 양반이 발생했고, 더 나아가 관직을 사고파는 일까지 생겨났다. 또한 농촌에 널리 퍼진 광작 (廣作- 넓은 면적의 토지를 혼자서 경작함) 현상은 영세 농민을 농촌에서 몰아 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현실은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는 도고(都賈- 한 가지 물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독점적 도매상) 상인들이 상공업을 지배하고 부를 축적하여 영세업자들을 몰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어지러워진 사회 속에서 문학 특히 소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중국을 배경으로 과장된 인물과 허황된 사건을 소재로 하던 기존 소설 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배비장전>이나 <삼선기(三仙記)>처럼 무대를 국내로 하고, 잘난 척해도 별수 없는 인물을 등장시켜,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작품이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특히 사회에 대한 불신을 그 내용으로 하여 그 당시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기생에게 매혹된 양반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춘풍전>의 인물에 나타난 사회상
<이춘풍전> 역시 기생에게 매혹된 양반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세태 소설로 다락골에 사는 이춘풍이라는 양반 건달이 공연히 뽐내다가 기생에게 매혹되어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아내가 구출해 주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전형적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이춘풍은 헌칠한 풍채, 멀끔하고 미끈한 차림으로 기생 몇 명쯤은 문제가 아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물려준 돈은 물론 아내가 바느질을 하여 번 돈까지 모두 술과 여자와 노름으로 날려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 호조(戶曹)에서 빌린 많은 돈을 기생과 어울리며 다 써버리고 만다. 이러한 춘풍에게는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나 윤리 의식이라고는 없다. 다만 위선과 허세에 가득 찬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춘풍을 홀리는 기생 추월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춘풍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는 온갖 교태를 부리며 홀리다가 수천 냥 돈을 탕진하고 나자 “청루 물정 몰랐던가. 평양 기생 추월 소문 못 들었던가. 자네가 가져온 돈냥 혼자 먹었던가.”라고 말하며 문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
이들과 반대로 춘풍의 아내는 모범적인 여인의 전형이다. 그러면서도 조선 시대 여인들은 실제로 하지 못하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을 하는 여중호걸이다. 소극적이며 순종적인 여인이 아니라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새로운 시대의 여인상인 것이다.
조선 시대의 여성은 유교 윤리에 의한 구속 때문에 다른 시대보다 더욱 불리한 처지에 있었다. 생업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고,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인을 하고, 정해진 도리에 따라서 시부모를 섬기며 남편을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규범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의 모습일 수는 없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부당한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다행히 <이춘풍전> 같은 소설이 있어서, 규범에서의 탈출과 남녀의 지위 역전을 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같은 간접적 경험으로 여성들은 자신에 대해 새로운 깨우침을 얻기도 했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경제적·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잠재적 토대가 되기도 했 다.
이처럼 춘풍, 추월 그리고 춘풍의 아내는 모두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양반의 허세와 위선이 가득하고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 그리고 여성들이 억압받는 사회 현실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춘풍전>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 당시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비판한 서민 문학으로 그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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