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은 실존 인물이었다
<홍길동전>은 허균이 지은 최초의 한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드물지만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신출귀몰하는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 홍길동이란 답이 바로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홍길동을 만화 영화의 주인공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홍길동은 과연 허균의 상상력이 그려낸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만 할까?
소설 속의 홍길동은 15세가 초 세종 시대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는 이조 판서와 노비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는데 사회적 차별이 심한 자신의 출신에 대해 고민하던 가운데, 홍판서의 본처와 첩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가출해서 도적의 수령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활빈당으로 조직해 부당하게 빼앗긴 재물을 되찾아 백성들에게 나눠 주는 의적으로 활동한다. 홍길동은 둔갑술을 부려 신출귀몰하는 행각을 벌이는데 암행 어사로 위장해 탐관오리들을 처벌하는가 하면 관아를 습격하기도 했다. 그는 끝내 체포되지만 왕은 그에게 병조판서직과 쌀 1천 섬을 내리고 석방한다. 홍길동은 남쪽 저도라는 섬에 근거지를 두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요괴를 물리쳤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마침내 율도국을 공략해 율도국의 왕이 되었다.
이처럼 소설 속의 홍길동은 도저히 현실 속의 인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과 경력이 과장되어 있다. 그리고 소설의 곳곳에는 허균의 경험과 사상이 녹아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허균 자신이 서자 출신은 아니지만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얼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왕과 대신들의 미움을 살 정도였다. 또한 이러한 그의 생각은 홍길동의 출신 배경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청년 시절 임진왜란을 겪은 허균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졌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홍길동이 율도국을 공략해 국왕이 되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실존 인물이 있었으며, 그의 행각이 소설 주인공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연산군 시대인 1490년 12월 29일의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의금부의 위관 한치형이 왕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고 한다.
강도 홍길동이 갓 꼭대기에 옥으로 만들어 단 장식을 하고 붉은 허리띠 차림으로 첨지(중추원의 정3품)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공서에 드나들면서 꺼림 없이 행동을 자행하는데도, 그 지방 말단 관리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체포해 고발하지 아니했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관리들을 모두 변방으로 유배 보내는 것이 어떠하리까.
또한 중종 18년(1524) 8월 29일의 <중종 실록>에는, 충청도 지역에서 홍길동 토벌 작전의 여파로 고행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 세금을 예전처럼 거두기 어렵다는 보고가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충청도 공주 땅에는 홍길동의 무리들이 쌓았다는 산성이 남아 있고, 이 지역에선 홍길동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은 편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17세기 초반 허균이 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홍길동의 모델은 16세기 초반의 실존 인물 홍길동인 것이 분명하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황석영의 <장길산>이 그러하듯이, 실존하는 인물과 그의 활동에 작가의 역사관과 철학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이 덧붙여진 것일 뿐이다.
- 노회찬, <어, 그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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