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赤壁大戰
<적벽대전도>
중국 후한(25~220)말 소규모 병력인 손권(孫權)·유비(劉備)의 연합군이 양쯔 강[揚子江] 중류 츠비에서 조조(曹操)의 대군을 물리친 유명한 전투.
화북지방을 통일한 위(魏)나라의 조조는 208년 20만(80만으로 알려져 있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샹양[襄陽]·장링[江陵]에 진을 쳤다.
조조는 유비를 추격하는 한편, 양쯔 강 하류에 할거하던 오(吳)나라의 손권에게 투항을 권유하여 전국통일을 기도했다.
유비는 번구(樊口: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 어청[鄂城] 서쪽)로 패퇴한 후, 손권에게 제갈량을 파견하여 동맹을 맺도록 설복시켰다.
손권이 주유(周瑜)·정보(程普)를 앞장 세워 3만의 병사를 출전시킴으로써 유비군과 함께 모두 5만여 명의 병사가 반격에 나섰다.
10월 조조군은 장링에서부터 양쯔 강 동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츠비에서 손권·유비 연합군에게 저지당하여 북철오림(北撤烏林:지금의 후베이 성 훙후 호[洪湖] 동북쪽)에서 손권·유비 연합군과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주유의 부하장수 황개(黃蓋)가 위장투항 계책을 써서 화공(火攻)으로 조조측 수군(水軍)의 군함을 불살랐다.
조조군은 수전(水戰)에 서툴고 먼데서 와 지쳐 있는 데다 전염병이 퍼져 병사들의 마음이 흩어져 있었고 계속되는 화공으로 군대를 재정비하지 못했다.
조조는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북방으로 패퇴했다.
츠비 대전 이후 손권은 강동(江東:즉 양쯔 강 하류) 정권을 공고히 했고, 유비도 형주(荊州) 지역을 차지하고 후에 익주(益州:지금의 쓰촨[四川])를 병합함으로써 3국 정립(鼎立)의 국면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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