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 前燕
중국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337∼370).
연(燕)이라고도 한다.
3세기 말 선비족(鮮卑族)의 추장 모용 외(慕容?)는 극성(棘城:遼寧省)에 도읍을 정하고 대선우(大單于)라 칭하는 한편, 진(晉)의관작을 받는 반(半)독립적 체제를 만들었다.
337년 아들 황(?) 때에 연왕(燕王)이라 칭하고, 단씨(段氏) 선비를 격파하여 허베이성[河北省] 북부를 지배하에 두었으며, 도읍을 용성(龍城)으로 정하고 고구려의 도읍 환도(丸都)를 함락시켰다.
345년 진(晉)의 연호를 쓰지 않기로 하여 독립을 분명히 하였다.
이후 자손은 황제를 칭하였고, 도읍을 업(?:河北省 臨?縣 서쪽)에 정하였다.
그 통치 영역은 한때 허베이[河北]·산둥[山東]·산시[山西]·허난[河南]·랴오닝[遼寧]에 까지 미쳤으나, 370년 모용 위(暐) 때에 전진(前秦)의 부견(?堅)에게 멸망하였다.
서량 西凉
중국 5호(胡) 16국 중의 한 왕조(400∼420).
왕실은 한인(漢人)인 이씨(李氏). 이씨는 농서(?西)의 명가로서 대대로 군태수(郡太守)를 지냈다.
후량(後凉) 여광(呂洸)의 말년에 이고(李暠)가 대중에게 추대되어 둔황[敦煌] 태수가 되어 대도독 대장군 양공 진이주목(大都督大將軍凉公秦二州牧)이라 자칭하고 연호를 제정하여 독립체제를 취하였다.
동방으로 세력을 뻗쳐 간쑤성[甘肅省] 주취안[酒泉]으로 옮겼으나 독발선비족(禿髮鮮卑族)· 저거흉노족(沮渠匈奴族) 등의 압박이 심하여 국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417년 고(暠)가 죽고 그의 아들 음(歆)이 그 뒤를 이었는데 저거몽손(沮渠蒙遜)과 싸워 패사하고 국도인 주취안을 빼앗겼다(400).
그의 동생 순(恂)이 대중에게 추대되어 그뒤를 이어서 둔황을 지켰으나 재차 몽손에 패하여 자살함으로써 서량은 421년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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