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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육담의 세계관 (1)

지식창고지기 2009. 5. 22. 10:48

한국 육담의 세계관


                                                                                          지은이 김선풍 외
    

머리말


육담의 사전적 해석은, 음담 내지 '품격이 낮고 속되고 야비하며 투박한 이야기'쯤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육담이 성적 관계를 표현한 이야기라 해서 그 언표 표상)가 모두 품격이 낮고  몹쓸 말로만 꾸며져 있지는 않다.

그것은 육담을 음담패설 정도로만 이해하는, 고루한 문학관을 진 이의 한계점을 드러내는 사고일 뿐이다.
고전 문학은 때로 에로티시즘에 관한 묘사가 비속하다는 이유로 저급한 작품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남녀 관계를 표현해도 성의 감각적 측면만 강조하다 보면 야한 감각을 벗어나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에는 동물적인 애정과 정신적인 애정,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 두 가지 측면 중 전자에 비중을 두었을 때 좀더 야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중국 연변 조선족들은 육담을 '고기얘기' 또는 쌍담이라 한다. 이때의 고기는 ''을 유머러스하게 번역한 것인데, 고기는 다름아닌 ''을 뜻한다
.
문학사를 살펴볼 때, 상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성에 대한 표현이 노골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조로 넘어오면서 문학사에서의 성의 표현은 금기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겉마음뿐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그러했을까
?
양반도 인간이기에 인간 본연의 행동에서는 동일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민 이상의 괴벽스럽고 추한 동물적 번식욕에 사로 잡히는 수도 없지 않았다

국문학의 대가라고 일컫는 송강 정철마저 진한 음담  시조를 짓고 있는 터에 필부필부 세계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
근화악부>에 나오는 송강의 시조를 들어보자.


: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이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 정철 작


: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 진옥 작


위 시조와 설화가  살갗을 스치는 음담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비록 육담의 시조요 설화로  표현되어 있지만, 고도의 문답식 문학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때문이다.
문답식 사랑의 표현에서  기생인 진옥이라는 여성이 승리하였으며남성인 송의 유머러스한  물음을 되받아 넘긴 진옥의  명답법이 음담패설이라는 오명을 불식시켰고 작품을 밀도  있는 문학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남성의 승리로 끝이  났더라면 이 작품은 비속이라는 딱지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적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유교사회라고  하는 '금기사회'의 벽을 허물어버린 데서 심리적 해방감이 찾아온 것이다
.
금기파기를 새롭게 맛봄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끼고 억눌렸던 본능을 회생시키게 된 것이다. 여기에 육담의 묘미가 있다.


민속학자 임석재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한국 육담의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
육담에는 성에 관한 무지나  오해로 인하여 기이한 행위, 오류, 실수 등이 일나는 것을 내용으로  한 것이 있는데, 이러한 육담은 청소년에게  성적 지식을 알려주는 역학을 한다. 또한 육담에는 이성을  유혹하고 성욕을 자극하며 성감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계략, 책략, 기지 등을  구사하는 것도 있는데이러한 것은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게 해주기도 한다
."
현재 임 교수는  9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학회  활동까지 하고 있는 분이다. 성을 찬미하는  것과 성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판이하게 다른 두 현상이다
.
성을 잃은 자는 죽은  자이다. 육담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고  육담을 즐겨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늙지 않았고 신체적으로 늙지 않는다
.
'
일소일소 일노일로'라는 평범한 속담대로, 양질의  고기얘기를 즐기는 것은 장수의 지름길이라고 감히 말해두고자 한다.

 

     1997. 10. 10               김선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