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론의 성립 배경 |
베게너는 31세인 1911년 가을 어느 날 마르부르그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다 우연히 브라질과 아프리카 사이에 옛날에 육교가 있었음을 내용으로 하는 논문을 발견하였다. 베게너는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대륙이 예전에는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양을 건너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대서양 양쪽 대륙에서 동일하게 발견된 동식물 화석의 기재를 다룬 육교설의 증거는 베게너에게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이와 관련된 지질학과 고생물학 분야의 논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으며, 이것은 바로 20세기 지구과학의 혁명을 야기하게 하는 숙명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베게너가 최초로 대륙이동설을 제시하였을 당시의 대륙이동 그림. 이그림은 아프리카 대륙판(좌)에서 아메리카판이 분리되어 이동(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1858년 지리학자 안토니오 스나이더 펠레 그리니(Antonio Snider Pellegrini)에 의해 제작된 것을 미국 캘리포니아와 버클리 대학에서 새롭게 재수정하여 제작한 것이다. 인터넷 다운 자료 (출처: http://pubs.sgs.gov/publications/text/historical.html#anchor483350)
◀ 대륙이동설(Continental Drift Theory) 동영상 그림 ▶
베게너는 1915년 '대륙 이동설에 관한 논문(Die Entst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대륙의 표이(Continental drift)'로 변역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2. 이론의 제시의 증거 |
당시 베게너에 의해 제시되었던 증거는 다음과 같다.
- 1) 해안선의 일치성: 아프리카 서해안과 남미 동해안의 대륙붕, 대륙 사면의 경계부를 서로 맞추어 보면 잘 들어맞는다
- 2) 지질 구조의 연속성: 북미의 에팔레치아 산맥과 스코틀랜드의 카레도니아 산맥 등 현재 서로 멀리 떨어진 대륙에 분포되어 있는 산맥의 지질 구조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있다.
- 3) 고생물 분포의 유사성: 글리솝테리스라는 식물 화석이 현재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환경이 다른 남국 호주, 남미, 남아프리카에 공통적으로 분포한다.
- 4) 고생대 말 빙하 퇴적층의 분포: 현재는 열대나 온대 지방에 속하는 남미, 아프리카, 인도, 호주에 고생대 말의 빙하 퇴적층이 분포하는데, 이들을 한데 모아 보면 남극 부분에 모이게 되고 전체 대륙은 초대륙 형태를 이룬다.
- ◀ 시기별 대륙이동의 실제 ▶
중생대 초기(약 2억 5000만년전)의 지각 분포 중생대 중기(약 1억 9000만년전)의 지각 분포
중생대 말기(약 6500만년전)의 지각 분포 현재의 지각 분포
3. 이론의 문제점과 반론자들의 공격 |
베게너가 제시한 대륙이동에 관한 이론은 당시 과학의 발전 단계 및 수준과 연구 패러다임(pradigm)에서 지나치게 획기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이에 따른 반론의 제기가 가혹하리 만큼 무서웠다.
영국의 저명한 천문학자이며 지구물리학자인 지프리(Harold Jeffrey)는 1924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The Earth, Its Origins, History and Constituition)에서 베게너가 제시한 대륙 이동의 지질학적 및 생물학적 증거들을 경멸적으로 추방하였으며, 베게너가 제시한 대륙 이동설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지구 자전과 중력에너지의 원동력에 대하여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베게너의 장인이기도 한 쾨펜(KÖppen)은 베게너가 지질학자도 아니고 고생물학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은 오랫동안 쌓아놓은 모든 지구과학의 기초를 뒤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지질학자인 할람(Anthony Hallam)은 베게너가 지질학자들의 모임의 회원이 아니었던 것을 이유 중의 하나로 지적하였으며, 그가 독창적인 착상을 하게 된 것은 기존의 지질학적 관념을 세뇌 받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혹평을 하였다.
4. 고지자기학의 등장에 따른 이론의 새로운 이해 |
이러한 비판과 함께 현대 지구과학의 서막을 알리는 대륙 이동설은 베게너의 죽음과 원동력에 대한 명쾌한 설명의 부족으로 점점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의 혼란이 지난 후, 1950년대 '고지 자기학'이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나온 증거로서 대륙 이동설은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과거의 대륙 충돌 현상을 규명하는 중요한 지질학적 방법중의 하나인 고지자기학은 지각의 암석 내부에는 철로 구성된 광물(특히 자철석)을 소량 포함되어 있는데 암석이 형성될 때, 이들 광물이 지구자기에 영향을 받아 배열되는 경향을 가진다는 사실에 착안함으로써 대륙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을 가능하게 한 학문의 일파이다. 이러한 고지 자기학의 영향으로 대륙 이동설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캠브리지 대학의 란콘(S.K.Rancon)은 여러 지질 시대에 걸친 유럽의 암석시료를 얻어 측정한 결과, 신생대 제 3기 이전에 있어 자극의 위치가 시간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이러한 자극의 경로는 북미에서의 암석에 대한 측정 자료로부터 구한 것과 위치가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유사한 모습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지구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지구의 자극은 위치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면 이러한 사실은 지질 시대에 따른 대륙의 이동에 따라서 나타나는 겉보기 극이동 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또한, 지금 현재 복각이 60°인 영국에 분포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의 지층에서 측정한 고지자기의 복각이 30°인 사실은 영국이 중생대 이후 약 3,000km 북상하였음을 나타낸 것이며, 현재 적도상에 위치한 테칸고원의 현무암에서 측정한 쥬라기의 복각이 -64°인 사실은 인도 대륙이 쥬라기의 복각이 -64°인 사실은 인도 대륙이 쥬라기 이후 약 7,000km 북상하여 아시아 대륙과 합쳐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베게너가 대륙이동의 원동력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그가 제시한 대륙 이동의 여러 증거들 마저 우연의 일치라고 공박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고지 자기 연구로써 대륙 이동이 설명될 줄은 전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5. 이론의 지형학적 의의 |
이러한 대륙 이동설은 그 당시 대륙을 이동시키는 힘의 근원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여 큰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사장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지형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원초적 지식과 원리를 제공하는 기초 이론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의 덕분에 현재의 지각의 대륙판 모양이 미래에는 어떤 모양으로 변하게 될 것인가 까지도 추론이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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