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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 개념의 분석적 이해

지식창고지기 2010. 1. 6. 17:51

"天" 개념의 분석적 이해
  

德田 張俸赫

 


1. 서설(序說)

 

동양에 있어서 사상이나 철학의 원류는 "천(天)"에 근본을 두어 왔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려는 본성을 존중하고 옹호하며 실현하려는 근본을 천에서 찾으려 하여왔다.  서양에 있어서도 천에 근본을 둔 종교문화로부터 그 사상이나 철학이 심오하게 발전이 시작되었으며, 그리스 민족이 이룩하여 놓은 철학과 예술의 향기 높은 문화도 하늘의 신비한 이치를 추구하는 과정으로부터 파생된 신화(神話)와 더불어 그 절정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이 어떠한 속박에 의해서 자기의 인간성을 억압당하였다.  이러한 속박에서 해방하려는 인본주의(人本主義)라하는 휴머니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개인의 권리와 존엄을 부르짖어 옹호하면서 인간성의 자유로운 발휘를 앞세우며, 금욕주의적 교리의 규범으로부터 탈피하고자, 지체 높은 사람들의 수도원 생활이 위선적 행위로 가득차 있음을 폭로하는 운동과 더불어 문예부흥이 일어나고, 이어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어지는 기계문명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개성이나 자주성이, 메커니즘의 한 기능으로 화하여 인간성을 차츰 상실되어가고 있으며, 인간에 의하여 발명된 각종 핵무기 앞에 위기와 불안을 맛보면서 과학의 폭력으로부터 인간성을 옹호하고 인류 자신을 수호하고자하는 인간량심(人間良心)은 공해 없는 대자연(大自然)의 품을 그리워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인본(人本)은 다시 천본(天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천(天)"의 의미론적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하늘의 형체를 말하는 자연현상의 천공(天空)과 하늘의 성정(性情)을 인사(人事)에 결부한 천도(天道)의 두 가지로 크게 구별할 수 있으며, 공간적인 천의 개념과 공간 속에 내재하면서 천지 만물을  주재(主宰)하는 천도(天道)의 개념을 분석적(分析的)으로 이해하여 보려는 시도가 본고(本稿)의 목적인 것이다.  

 

2. 천공(天空)과 천도(天道)의 분석적 의미

 

무한히 열린 하늘을 뜻하는 천공(天空)에 관하여는 천문학(天文學) 또는 천체물리학(天體物理學)에서 연구되고 있으며, 유한자(有限者)인 인간이 무한 존재자인 천에 관하여 유한적 정의(定義)를 내려오고 있으나 무한적 존재의 실체를 다 규명하지 못하고 있으니, 예컨대 천공(天空)의 넓이에 관하여 어느 과학이론에서는 40억 광년이라고도 하고 최신에 발견된 초신성의 별빛이 200억 광년이라고 연구 발표되기도 하니, 이 모두가 유한 존재자의 유한적 이론 정립(定立)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역학(易學)사상에서는 하늘의 형체(天體)를 포함한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궁극적 실체인 태극(太極)의 원리와 이론 속에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이론정립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태고(太古)에 있어서는 천문학(天文學)이 인류의 생존에 매우 필요한 학문이었으며, 고대의 중국에 있어서 천문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산역술(算歷術)이 세계 최고로 발달하기도 하였으나, 그 진보는 중세기에 그치게 되어 서양의 천문학에 압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의 형체를 연구하는 천문학이 보통 실사회와 거리가 먼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류의 문화(文化)가 크게 약진할 때에는 언제나 천문학이 앞서 발달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든다면 조선조의 세종 년간에 천문학의 학술사상을 집대성한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과 외편(外篇)이 찬술됨으로써 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서구(西歐)에 있어서 르네상스의 선구를 이룬 것도 원양항해술(遠洋航海術)에 필요한 학문으로써 먼저 천문학이 크게 발전을 본 이후였던 것이다.  천문학의 발전은 지동설(地動說)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어서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찾아내고 천체역학(天體力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서 천체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예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것들을 일러서 '하늘이 형상을 드리운다(天垂象)'고 주역(周易)에서는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성정(性情)을 인사(人事)와 결부하여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표현으로 천도(天道)라고 하는데 하늘에는 과연 성정이 있는 것인가?  성정이라는 어휘는 인성(人性)과 감정(感情)의 시원(始源)에 관한 표현으로서, 분석적인 차원에서 하늘에 과연 본성과 감정이 작용하는 성정(性情)을 찾아서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송대(宋代)에 이르러서 신유가(新儒家)의 주요 학설을 창조하였으니, 정명도(程明道:1032∼1085)는 "천자이야(天者理也)"라 하여 이(理)를 천(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고, 주자(朱子:1130∼1200) 또한 "천즉리(天卽理)"라고 하여 하늘의 성정이 곧바로 모든 사물의 이치라는 논리를 펴다가, 하늘의 성정이 곧 인간의 성정이라는 차원에서 인성이 곧 천리라는 뜻으로 "성즉리(性卽理)"라 하여 성리학(性理學)의 학문 체계를 완성하였다. 

 

하늘의 성정을 인사에 결부하여 천도를 말할 수 있으며, 천도를 풀이하여 설명하자면 천지만물의 근본원리이며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고 섭리하며 지배하는 원리인 것이다.  주역의 겸괘(謙卦)에서는 <天道는 가득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여 겸손한 곳에 더해준다.:天道虧盈而益謙>고 하였으며 서경의 탕고(湯誥)에서는 <하늘의 법도는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화를 내린다.:天道福善而禍淫>고 하였고 시경(詩經)의 소민(召旻)에서는<자애로운 하늘이건만 미워하여 벌하시려고 심히 두려운 멸망을 내리셨도다.:旻天疾威시니 天篤降喪하시니라>고 하여 하늘의 법도와 인사(人事)를 결부하여 표현하였다.  천도(天道)의 분석적 의미란 무엇인가?  이 부분은 유가(儒家)의 전통적 정설(定說)에 맡기고 여기에서는 약술한다.  다만 한마디 첨언 한다면 주역에 있어서 천도는 건원(乾元)으로부터 인식되어야 할 것인즉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기 때문인 것이다.

 

3. 천(天)과 건(乾)의 자의(字義)

 

천과 건은 다같이 하늘을 표현하는 글자이면서도 천(天)은 천공(天空)을 뜻하고 건(乾)은 하늘의 성정(性情)을 뜻하고 있다고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천은 하늘의 형체(形體)를 뜻하는 것이며 건은 하늘의 작용(作用)을 뜻한다고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의 출현으로 은(殷)나라시대(?∼BC1100)는 역사시대로 인정되게 되었으며, 문자상(文字上)의 기원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갑골문(甲骨文)에서 천자(天字)가 나타나고 있으니   ,  ,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형(字形)은 천이라는 글자의 원형으로서, 그 의미를 근대의 중국 철학자 왕국유(王國維:1877∼1927)는 그의 저서인 관당집림(觀堂集林)에서 <字形이 본래 사람의 형상을 닮았는데 은허(殷墟)의 복사(卜辭)에서는   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이러한 형상을 갖는 이유를 천이 위치하여 있는 곳을 사람 위의 허공을 가리키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 허공의 천이 자연천(自然天)으로서의 개념이든, 천신적(天神的) 존재로서의 개념이든간에, 인류 고대의 역사시대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인류의 머리 속에는 <天> 개념이 있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천(自然天)이란 인류의식발전(人類意識發展) 이전부터 있었겠으며, 천신적존재(天神的存在)로서의 원류(源流)를 찾아 단정하기란 너무나도 이설(異說)이 많으면서도, 인류의 의식발전(意識發展)과 더불어 천의 성정(性情)과 그 작용(作用)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으리라는 추정이 압도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퍽 다행스러운 일로서, 팔괘(八卦)가 그려진 연대를 역사시대 이전인 복희시대(伏羲時代)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중에 건괘(乾卦)는 하늘의 성정과 그 작용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문자(古文字)인 갑골문에서 <乾>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공적(公的)이나 사적(私的)으로 소장된 갑골문(甲骨文)을 모두 합치면 10만편이 조금 넘는 수량인데, 갑골문(甲骨文)의 자체(字體)가 아직까지 통일되지 못하고 학자에 따라서 자수(字數)의 합계가 다르기는 하지만, 갑골문에 쓰여진 자수(字數)는 약 2000여 자로서 그 중에 해독이 가능한 것은 그 반절정도"라고, 중국 근세의 고고학자 동작빈(董作賓:1895∼1963)은, 195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 집필한 <甲骨學六十年>이라는 저서에서 피력하여 놓았다.  2000여 자의 자체(字體) 중에서 지금까지 해독되지 못하고 있는 1000여자의 갑골문 중에서 <乾>자가 나타나서 해독되기를 희망하면서, 차선(次善)으로 종정문(鐘鼎文)이라고 일컫는 금문(金文)에서 자의(字意)를 살펴볼 수 밖에 없다. 

 

건(乾)은 주역의 경문(經文)에 나타나는 첫글자라는 의미론을 부여하기 이전에, 8괘를 그릴 때에 천을 형상(形象)한 뜻을 건으로 표현하였다는 것과 역(易)은 맨처음부터 하늘의 형체(形體)가 아닌 성정(性情)을 상대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더 큰 것이다.  건자(乾字)의 고문(古文)은    →   으로 쓰여졌다.  여기에서 세개의 '日'은 태양 또는 하늘을 뜻하여 삼천(三天)이라는 뜻도 있거니와, 천문학에서 말하는바 太陽界(SOLAR SYSTEM), 銀河界(MILKYWAY SYSTEM), 그리고 大宇宙(MACROCOSM)의 삼천을 말한다고 할 수 있으며, 十은 갑골문에서 甲자로 통하는 바, 人과 乙이 더 모여진 회의문자로서   과 乙을 합한 문자가 乾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인 것이다. 


 乾 은 집운(集韻)에서 居발음과 案발음의 반절음이라고 하였으니, 그 음이 '간'이 되고 아침 해가 솟아올라 빛나는 모양이다.  여기에 乙은 초목의 싹이 위를 향하여 싹터 오르는 모양으로, 이 두가지가 합해져서 초목의 굽은 싹이 해를 향하여 올라가는 뜻이 되니 하늘의 형체가 아닌 하늘의 성정적 작용을 뜻하는 글자가 바로 乾인 것이다.

 淸나라의 경학자(經學者)이면서 문자훈고학자(文字訓 學者)인 단옥재(段玉裁:1735∼1815)는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을 注하면서, '乾'자에 대하여 "乾이라는 문자는 괘명(卦名)으로 쓰려고 만들어졌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성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글자가 바로 乾자인 것이다.  천과 건의 자의(字意)를 살펴 볼 때에 天은 하늘의 형체(形體)를, 乾은 하늘의 성정(性情)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4. 天에 관한 호칭  

 

[하느님]이란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다.  특정종교만이 아닌 다수 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인간을 초월해서 절대자로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주재섭리하며 불사사의한 능력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화복을 내린다는 범신론적(汎神論的)인 개념으로 그 호칭 또한 다양하다.

 

기독교의 일부계층에서는 하나님, 천도교에서는 한울님, 대종교에서는 한얼님, 천주교에서는 천주님, 민간에서는 천신(天神) 또는 옥황상제, 그 외에도 천제(天帝) 상제(上帝)의 호칭이 있는데 다 같이 우주의 주재 섭리자를 인격화(人格化)하여 섬기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행 출판되고 있는 국어사전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면 '신교(新敎)에서 하느님을 일컫는 말'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신교란 개신교(改新敎)로서 서양의 특정종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국어사전의 내용을 부연(敷衍)해보면 '하나님'은 '하느님'에 대한 신조어(新造語)로서, 개신교의 내부에서도 '하나님' 호칭을 반드시 사용하여야 할 것인가의 여부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느님이란 표준말을 두고 신조어를 왜 사용하여야 하는지 개신교의 일부 신도들은 그 진실을 모르고 있다고 보아지는 것으로, 그 연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불경(佛經)이 중국을 거쳐서 우리 나라에 들어왔듯이, 개신교의 성경(聖經) 또한 중국말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데에서 시작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한문(漢文) 성경을 한글로 번역함으로서 개신교의 경전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다.  그 역할을 맡은 선교사가 스코틀랜드 출생 존 로스(JOHN ROSS:1842∼1916)목사였고, 한국에 나타난 최초의 선교사였다.  존 로스는 중국 대륙과 만주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 왔으며, 1882년에 만주봉천에서 한글 성서의 효시가 되는 '누가복음'을 간행하였다. 

 

그는 한국과 만주를 넘나들면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있어서는 하느님에 대한 어휘표현으로 고심하였다.  그는 한글로 성서를 번역하면서 신학적 용어사용의 선택에 애쓴 기록을 1883년 12월에 선교 보고서로 작성하여 영국개신교 본부에 보냈으며, 그 기록이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교 신학대학 도서관에 현재 보관중이다.

 

그의 선교보고서를 살펴보면 당시 한국사람들은 天을 하 텬으로 읽고 있음으로 HANANIM(하나님)으로 표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유일신(唯一神)이라는 의미의 숫자 '하나'에 '임'을 붙인 것이 아니고 천주(天主)를 순수한 한국말로 표현하자니, 한문 '天'에 대한 표의가 하  이기 때문에 HANAL(하날)로 표기 하였다는 기록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관하여 잠시 정음(正音)에 관한 음운(音韻)의 국어사적(國語史的) 발전과정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에 관한 표의(表意)가 정음(正音)으로 표기된 참고자료는 다행히도 우리에게 두가지가 남아 있으니 [類合]과 [訓蒙字會]이다. 

 

유합(類合)은 조선왕조 성종(成宗:재위 1469∼1494)년간에 언해(諺解)한 한자(漢字)교본으로 한글 고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훈몽자회(訓蒙字會) 또한 조선왕조 중종(中宗) 22년(1527)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학습서로 3,360자의 한자를 사물 중심으로 갈라서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았는데, 이 또한 한글 고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오고 있다.  이 두가지 자료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또 우리말의 국어사적 발전과정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본에 속한다.  이 두가지 자료를 살펴보면 아래아( )에 대한 표기는 조선왕조가 무너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으며, 국어의 두번째 음절에 나타난 아래아( )는 '으'나 '이'의 발음으로 변해왔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니, 훈몽자회에 나타난 몇 가지 예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天 → 하날  텬 → 하늘천
言 → 말쌈  언 → 말씀언
陰 → 그날  음 → 그늘음
受 → 바달  슈 → 받을수
朝 → 아참  됴 → 아침조

 

존 로스 선교사가 최초로 '누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조선왕조의 말기의 1882년이었고 그 때 당시에 '天'자에 대한 음훈을 '하  텬'으로 하였으므로 천주(天主)에 관한 표기를 'HANAL'에 'NIM'을 붙여서 'HANANIM(하나님)'으로 하였다고 선교보고서에 남기고 있음에도, 오늘날의 일부 목회자들은 유일신(唯一神)이라는 의미로 숫자 '하나'에 '님'을 붙인 것처럼 고집하면서(이러한 의미로서 신조어가 되었다고 보아짐) 스스로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호칭을 고집함으로서 국가관을 파괴하고 조상 공경하기를 저버리고, 형제간에 의리를 갈라놓고 마는 전락의 위기를 맞이하며 또한 조상을 공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정성껏 모셔야 된다고 하는 목회자는 이단이라고 출교(黜敎)시키고 있는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하느님'이 개신교나 불교나 유교의 전속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하느님'이라는 점이다.  마치 햇빛이 만인에게 고르게 비추듯이 하느님의 섭리 또한 만인에게 고르게, 그리고 과거의 조상들에게도 그렇고, 먼 훗날의 후손들에게도 차별 없는 섭리를 내리실 것인즉, 부지런한 자에게는 풍요의 섭리를 게으른 자에게는 빈곤의 섭리를 내리실 것이다.  
 

5. 결론(結論)

 

[천]에 대한 표현은 장구한 세월동안 일정하게 한가지 개념으로서만 표현되지 않았을 것이며, [천]이 실제론적 사물이든 추상론적 존재이든 간에 인간의 사유(思惟)가 바뀌고 변함에 따라 그 개념은 언제까지나 한가지로 표현되는 타당성을 주장할 수도 지탱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天]에 대한 인간의 인식의 변화에 따라서 개념의 의미내용도 변화하였을 것이다. 

 

유가의 사상에 입각한 [천]개념과 도가(道家)의 사상적 입장에서 사유(思惟)하는 [천]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달랐을 것이고, 같은 유가적 입장에서도 맹자(孟子)의 [천]개념을 천의 성정과 인사에 결부한 천도(天道)를 앞세우지만, 순자(荀子)의 [천]개념은 자연천(自然天)을 앞세운바 서로 다르다.  그래서 순자(荀子)의 [천]개념을 부연(敷衍)하여 인간의 능력으로 자연천(自然天)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이인멸천(以人滅天)] 논을 앞세우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천]만이 인사를 주재하고 섭리할 수 있다고 하여 [이천멸인(以天滅人)] 논을 앞세우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유한적 인간이 무한존재를 완전하게 인식하고 개념화 한다는 것은 무한존재를 한정하고 규정한다는 의미인데, 유한한 인간의 인식능력으로서 그들마다의 개념적 표현 가운데에 무한자에 대한 어떠한 한계성이 내재되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유가 있으니, 중국고대에 있어서 당(唐) 우(虞)와 하(夏) 은(殷) 주(周)를 거치면서 제자사상가(諸子思想家)들의 [천]에 대한 개념은 그들 학파내에서 통용되고 사용되는 하나의 약속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천]개념은 시대적으로 달랐고, 사상가에 따라서 달랐다.  그래서 천신적(天神的) 존재로서 인간을 주재하는 [천]도 되고, 유물사관(唯物史觀)의 시원(始源)으로서의 [천]개념이 정립되기도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천]은 다만 병술적(兵術的)차원에서 오직 시간이요, 기후조건으로서의 [천]개념이 정립되기도 하였다. 

 

그간 정립된 [천]개념을 대별(大別)하여 천신봉자(天信奉者)와 천비신봉자(天非信奉者)의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천신봉사상(天信奉思想)에는 인사적(人事的)이고 주재적(主宰的)이며 이법적(理法的)인 사상이 포함된다 할 수 있고, 천비신봉사상(天非信奉思想)에는 순수 자연적(自然的)이고 기계론적(機械論的)인 사상이 포함된다고 할 것이며, 전자는 [이천멸인]을 두려워하여 왔으며, 후자는 무신론적 [이인멸천]을 주장하여 갈 것이다.  그래서 [천]개념이 신봉하는 쪽이 우세할 경우에는 인간의 정신활동이 왕성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비신봉의 개념이 투철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정신활동보다는 물질문명의 추구로서 인간의 본성타락과 본성와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천멸인]이라고 해서 천이 순수자연이 아닐수 없으며, [이인멸천]이라고 해서 유한자인 인간이 시공적(時空的)으로 무한존재를 정복하는데에는 언제나 한계성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