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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와 비즈니스의 ‘오묘한’ 세계]대기업 사옥 ‘역시 돈되는 땅은 다르

지식창고지기 2010. 1. 9. 18:13

[풍수와 비즈니스의 ‘오묘한’ 세계]대기업 사옥 ‘역시 돈되는 땅은 다르네’ - 풍수와 비즈니스의 ‘오묘한’ 세계

한경비즈니스 | 입력 2009.08.26 09:56

 


경기가 어려워지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최근 풍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경기 침체 때문이겠지만 혹 내가 살고 있는 집이나 회사가 풍수가 나빠 사업이 안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비즈니스와 풍수의 함수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풍수 연구가 김모 씨는 올 초 국내 모 대기업 비서실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룹 회장 자택에 대한 풍수를 감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던 것. 전화를 끊고 곧장 성북동 자택을 방문한 김 씨는 도착 즉시 감정에 들어갔다.

풍수지리로 볼 때 성북동은 서울의 대표적 길지(吉地)로 꼽힌다. 성곽을 쌓은 남쪽 능선이 백호, 북악 스카이웨이 능선이 청룡이 돼 부지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학에선 성북동을 전형적인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 명당이라고 부른다. 완사명월이란 '밝은 달빛 아래에 비단을 펼쳐 놓은 형세'로, 비단은 높은 벼슬아치나 부자만이 입을 수 있는 귀한 옷감이다. 마을 입구가 닫힌 듯 보이지만 그 안쪽에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어 대를 이어 부를 누릴 수 있다고 풍수 연구가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 대기업 회장의 집은 예외였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성북동이 명당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집의 문제는 터보다는 건물 배치에 있었다. 산을 비스듬히 마주보고 집을 지었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건물이 산에 매달린 형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대기업의 계열사 상당수가 경기 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풍수(風水)를 미신 따위로 여기는 사회 풍토는 아직도 여전하다. 기와 음양학을 기초로 한 자연과학이라는 풍수 연구가들의 주장이 아직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풍수는 이미 우리 생활과 깊숙이 관계를 맺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이 사옥 등을 건축할 때 알게 모르게 풍수를 꼼꼼히 따진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북이 떠받드는 SK 서린동 빌딩
1999년 완공된 SK그룹의 서린동 빌딩은 설계 당시부터 풍수적인 요소를 건물 곳곳에 집어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빌딩에는 건물의 네 기둥에 거북 발 모양의 문양이, 정문과 후문에는 거북 머리와 꼬리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문양이 설치돼 있다. 거북등으로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평소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지시로 만든 이 조형물과 문양은 사업 번창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자 하는 그룹 총수의 뜻이 담겨 있다.

풍수 전문가들은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용맥(龍脈: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의 한 가지가 북악산으로 솟기 전 떨어져 나와 청계천을 앞에 두고 기가 모이는 곳에 바로 서린동 사옥이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이를 가리켜 풍수지리학에서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 길지라고 말한다. 모인 기가 빠지지 않도록 북악산→인왕산→남산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이 백호, 삼청공원→창덕궁→종묘로 이어지는 능선은 청룡이 되며 건물이 남산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살기를 막아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 일반적으로 서울을 놓고 볼 때 남산의 역할은 관악산이라는 살기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뿐만 아니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대표되는 사신도에서 주작에 해당한다. 보통 주작은 붉은색,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에 정남향인 남산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 사옥 부지로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지난해까지 삼성그룹의 심장부 역할을 해 온 태평로 빌딩을 풍수로 보면 어떨까.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곳은 거북이 진흙으로 몸을 감춘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으로 거북이 진흙 속에 빠지면서 생긴 기가 땅으로 올라와 재물을 많이 쌓게 되는 명당이다.

건물 입구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좋은 기운을 많이 받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일반적으로 건물이 동쪽을 향하고 있으면 좋은 기운이 들어와 단합도 잘 되고 외부의 침입에도 쉽게 대처할 수 있다. 본관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계열사 건물이 좌청룡, 우백호 역할을 하고 있다. 건물 뒤쪽에 약 2m 높이의 받침대가 현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풍수를 현장에 잘 접목한 케이스다. 건물 앞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지 않아 좋은 기운을 차단하지 않는다는 점도 풍수의 특성을 잘 살린 부분이다. 박민찬 신안계물형설연구소 원장은 "이건희 전 회장의 한남동 자택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자택을 중심으로 화목과 보호의 상징인 좌청룡 우백호가 양팔을 벌려 어린아이를 안듯이 잘 감싸 안고 있는 명당 중 한 곳"이라면서 "재물을 상징하는 강물(한강)이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건물 출입구를 배치한 것도 풍수적으로 볼 때 좋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마다 사옥에 풍수 요소 적용
하지만 지난해 이전한 서초동 본사 사옥에 대해선 주변 지형이 동고서저(東高西低)여서 어떤 방향에다 입구를 내도 건물이 불안정하게 배치돼 풍수로 놓고 볼 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남쪽(우면산), 동쪽(역삼역), 서쪽(서초동 법원)에서 발생한 지맥이 한곳에 모이는 명당이라는 등 전문가들마다 다소 해석이 엇갈린다.

계동 현대 사옥은 조선시대 관상감이 자리했던 창덕궁 서쪽에 있다. 조선시대 풍수학자 최양선은 계동에 대해 "주맥이 씩씩한 채 잡스러운 기운이 없다. 내룡이 벌의 허리와 학의 무릎 같은 형세로 들어오다 둥근 언덕처럼 솟아났는데, 삼각산의 기운이 남쪽으로 내려오다 모이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전형적인 길지라는 설명이다.

흔히 풍수는 지리적인 것만을 갖고 판단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리 좋은 터라도 어떻게 건물을 짓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모건스탠리로 주인이 바뀐 서울역 앞 옛 대우그룹 빌딩이나 삼성동 무역센터는 외관이 풍수로 볼 때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역 대우빌딩의 단점은 능압(凌壓), 즉 지나치게 위압감을 주는 것이 한계라는 지적이다. 서울역 광장에서 바라보는 대우빌딩의 느낌은 웅장함보다는 답답함이 먼저 느껴진다. 더군다나 남산의 기운을 막고 건물이 서쪽을 향해 있는 것도 풍수로 볼 때 좋은 것은 아니다.

직선의 의미가 많이 강조된 건물은 겉으로 봐서는 간결함이 먼저 느껴지지만 자칫 잘못 설계하면 살(殺)의 기운이 많이 나올 수 있다. '부동산과 생활풍수'라는 책을 쓴 조인철 자연과 건축 대표건축사(건축학 박사)는 "삼성동 무역센터 건물은 승천하는 용을 형상화해 설계했다는 일본인 건축가의 설명과 달리 돌칼의 살벌함이 느껴진다"면서 "칼로 자른 듯한 모양의 역삼동 A 기업 사옥이나 삼성동 B 기업 사옥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명동 서울중앙우체국 건물은 도끼로 내리찍어 갈라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건물이 지어지면 기가 분산된다"며 "남산 3호 터널과 숭례문에서 출발한 대로가 만나 도로 살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건물을 설계한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 같은 풍수지리의 한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비보풍수(裨補風水)라고 불리는 이 같은 풍수 연구에 기업들이 부쩍 관심을 높이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를 극복해 보자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한강로 국제빌딩을 인수한 LS그룹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국제그룹의 본사로 사용됐던 국제빌딩은 용산이라는 명당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사례다.

지난 1984년 완공 당시만 해도 용산 국제빌딩은 국내 최초의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풍수 전문가들은 외형에 많은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건물이 총 9개 각으로 이뤄져 있고 예각에서는 칼로 베는 듯한 살기를 내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시한다. 이 건물을 봤을 때 안정감보다는 섬뜩함이 먼저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빌딩이 완공된 이듬해인 1985년 국제그룹은 해체의 길을 걸었고 이후 이 빌딩을 인수한 기업마다 사세가 위축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요즘 국제빌딩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기능성 향상이라는 것이 이 빌딩을 소유한 LS네트웍스의 설명이지만 일부에서는 풍수로 건물의 살기를 막기 위한 이유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국제빌딩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한 한 풍수 전문가는 "건물 이름을 국제센터빌딩에서 LS용산타워로 바꾼 것도 개명(改名)을 통해 살기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며 "건물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를 제압하기 위해 빌딩 북동쪽에 연못을 조성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LS네트웍스는 재앙을 상징하는 북서쪽 찬바람을 막기 위해 건물 북서쪽 공터에 작은 나무숲을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마침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도 LS용산타워로선 긍정적인 신호다. 풍수 전문가들은 건물이 홀로 높게 서있으면 외관상으로는 돋보일 수 있지만 재화가 빠져나간다고 본다. 나 홀로 높게 선 건물들치고 해당 기업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신문로 신사옥도 비보풍수를 건물에 적용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옆 흥국생명빌딩에 설치된 조형물 때문이다.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10m 조형물 '해머링 맨'은 일하는 즐거움,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사옥에서 보면 기운을 파괴하는 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모 풍수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해머링 맨과 마주한 곳에 수경시설을 설치했다. 망치로 물을 내리치면 출렁거릴 뿐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풍수 전문가의 주장이다. 신대방동 농심 본사 건물 앞에 양기를 뜻하는 수말 3마리를 조형 작품으로 설치한 것도 풍수를 고려해서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대표는 "여의도 트윈타워는 한강 물이 서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풍수로 볼 때 좋은 입지는 아니다. 물은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닻 형상의 대형 조각품을 설치하면 이를 막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의도는 땅 모양이 배와 같고 트윈타워는 쌍 돛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재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돋보기│중국에 부는 풍수 비즈니스
HSBC·중국은행 '풍수싸움' 팽팽
풍수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같은 아시아권에 속해 있는 홍콩은 대형 건축물에서부터 집 설계에 이르기까지 풍수사의 조언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홍콩에서는 중국은행과 홍콩상하이은행(HSBC) 간 풍수를 놓고 때 아닌 공방을 벌였다. 1990년 완공된 중국은행 건물은 칼날을 꽃은 외관에 외벽을 모두 유리로 둘러 홍콩에서도 기가 센 건물로 통한다. 이처럼 기가 센 건물에서 사업이 번창하려면 입주자 자신도 기가 충만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건물 기에 눌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것이 다반사다.

문제는 바로 옆에 있던 HSBC은행의 사업 실적이 바닥을 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HSBC은행은 부랴부랴 옥상에 대포 모양의 조각품을 세우고 포신을 중국은행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중국은행에 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칼을 대포로 응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은행이 발끈했다. 대포 조형물로 기가 눌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중국은행은 사장실에 수천만 원을 들어 금붕어 수조를 설치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풍수학에서 금붕어는 기를 잘 느끼는 동물로 기가 눌리면 곧장 죽어버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국은행이 금붕어 수조를 설치한 것도 HSBC은행 건물의 기를 유심히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홍콩 풍수사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행은 조만간 HSBC은행의 대포 조형물을 압도하기 위해 미사일 모양의 조형물 설치를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의 풍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