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배영대] 현대 중국에서 새롭게 뜬 역사 인물 1호를 꼽으면 단연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처음 통일했다. 현대 중국은 진시황의 통일 이미지를 요청하고 있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영웅’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했다.
그 같은 ‘진시황 영웅 만들기’에 반기를 든 책이 나와 주목된다.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주쉐안 지음, 문성재 옮김, 우리역사연구재단)이다. 도발적 제목이다. 진시황을 중화문명의 주류인 한족으로 당연시하는 통설에 도전했다.
2006년 대만, 2008년 상하이에서 나온 중국어 원서 제목은 『秦始皇是說蒙古話的女眞人』. 한국어 번역본은 원서 제목을 그대로 풀어냈으니, 없는 내용을 창작한 것은 아니다. 저자 주쉐안(朱學淵·68)이 구이린(桂林)에서 태어난 토종 중국인이고, 미국 몬타나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일종의 ‘제도권 학문’을 섭렵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자연과학도인 저자는 개인적으로 헝가리 민족의 시원에 관심을 가졌고, 동북아시아 북방 민족의 기원으로 관심을 확대했다. 2002년 펴낸 『중국 북방 제 민족의 원류』와 함께 이 책은 저자의 ‘오래된 외도’의 결실이다.
저자는 비교언어학 방법을 도입했다. 저자가 볼 때 인문학에서 가장 자연과학과 닮은 분과가 언어학이다. 언어에서도 문자보다 소리의 변화에 특히 주목했다. 그는 한자의 소리 변천을 통해 고대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중국 북방민족이 중원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흔히 오랑캐로 불렸던 북방 민족의 근원을 만주 여진족에서 찾았다. 이 논리대로라면 중원의 주인이었던 북방 민족들은 중원의 안방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오랑캐로까지 몰린 셈이 된다.
이 책은 일견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진시황은 반드시 한족이어야만 ‘통일 영웅’이 되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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