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는 흔히 <일리아스>의 속편으로 간주되지만, 역시 두 편의 내용이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 이후, 계속된 전쟁의 와중에서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스 건’에 화살을 맞고 죽으며, 트로이는 ‘트로이의 목마’에 속아 무너진다. 승자들은 저마다 전리품을 잔뜩 챙겨 고향으로 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이런저런 불운이 겹치며 10년 동안이나 더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오디세이아> 역시 <일리아스>처럼 이야기가 중간에서 시작되어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바다 요정 칼립소의 섬을 떠나 알키노스 왕의 궁전에 도착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모험을 회고하는 긴 이야기가 끝나면, 드디어 고향에 돌아간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집을 유린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내와 재회하는 것으로 서사시는 마무리된다.
그 웅장함이며 긴박감에 있어서는 <일리아스>에 미치지 못하지만, <오디세이아>는 오랜 방랑 생활 동안 주인공이 맞닥트리는 갖가지 기이한 사건과 사물(대표적인 것이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 오디세우스 일행을 가둬두고 한 명씩 잡아먹는 키클로페스(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를 구출해 준 나우시카 공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속이기 위해 매일 베를 짜고 또 풀었던 페넬로페, 텔레마코스에게 부친을 찾아갈 방법을 조언하는 멘토르 등이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또 수많은 비유를 낳은 바 있다. 분량으로 따지면 <일리아스> 쪽이 더 많지만, 내용의 풍부함으로 보면 <오디세이아>가 단연 압권이다.
호메로스의 영향력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계속된다
미국의 저술가이며 독서 관련 에세이로 유명한 클리프턴 패디먼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관한 글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적을 한 바 있다. 우선 그는 100만 명의 병력과 6000여 척의 선박이 동원된, 20세기 중반 당시로는 사상 최대의 군사 작전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예로 들면서, 그 작전의 최고지휘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회고록을 읽어보아도 한 줌밖에 안 되는 청동기 시대 부족들 간의 전투를 기록한 <일리아스>만큼의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건 결코 아이젠하워 장군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가 호메로스가 아니었을 뿐이다.” 패디먼의 이 말은 호메로스의 위대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호메로스의 탁월함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할 때에 더욱 두드러진다. 양대 서사시에는 수천 년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에 호소하는 훌륭한 묘사가 수두룩하다. 가령 <일리아스>에는 분노의 창칼로 적을 도륙하는 영웅들의 무용담뿐만 아니라, 그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의 불운도 묘사되어 있다. 창에 맞아 선지피를 내뿜으며 땅에 쓰러진 아무개의 아들 저무개가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처자를 뒤로 하고 하데스(저승)로 떠났다는 참혹하고도 구구절절한 묘사 앞에서 독자는 새삼스레 전쟁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일리아스>는 사상 최초의 ‘전쟁문학’인 동시에 ‘반전문학’이기도 하다. 이처럼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에는 차마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상당히 ‘많은 것’이 들어 있다.
호메로스의 가장 우수한 후계자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는 로마 시대인 1세기경에 나왔다. <일리아스>에도 잠깐 등장했던 트로이의 영웅 아에네이스가 고향을 잃고 방랑하다가 오늘날의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훗날 로마의 시조가 된다는 일종의 건국신화를 담고 있는데, 전반부의 여섯 장은 <오디세이아>의 모범을 따라 트로이에서 이탈리아까지의 여행을 설명하고, 후반부의 여섯 장은 <일리아스>의 모범을 따라 이탈리아의 토착 부족과 벌인 전쟁을 설명한다. 하지만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차이는 호메로스와 아이젠하워의 차이만큼이나 현격하다. 이 역시 베르길리우스가 못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호메로스가 너무나도 탁월한 것뿐이다.
호메로스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는 현대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식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1922)는 <오디세이아>의 내용과 구조에 착안해서 20세기 더블린의 하루 사이 사건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묘사한 작품이며, 종종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추앙된다. 그런가 하면 199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데릭 월콧은 호메로스의 에스파냐어 식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서사시 <오메로스>(1990)를 펴내 격찬을 받았다. 여기서는 아킬레우스, 헥토르, 헬레네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이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이며 월콧의 고국인 세인트루시아 토착민으로 묘사된다.
그 외에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제목과 내용은 물론이고, 심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의 주인공 소녀의 이름도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가 없었으면 나올 수 없었으리라. 이것만 보아도 호메로스의 영향력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