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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아사달시대(단군왕검 조선)

지식창고지기 2010. 2. 16. 09:35

단군조선 번한 요중12성의 하나인 영지(令支)의 위치는? 북경 서북쪽 탁록의 바로 강 건너 怫來불래?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01년에 완성된 요중12성의 하나인 영지의 위치는 어디일까?

서기전1291년에 은나라 무정이 귀방(鬼方)을 공격하고 색도(索度)와 영지(令支)를 침공하였으나 대패하고 화해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는 영지는 어디일까?

서기전664년 제나라 환공이 관중과함께 연나라를 지나 영지, 고죽국을 정벌하였다는 영지는 어디일까?

서기전651년 제나라환공이 정벌하였다는 산융, 리지(離支), 고죽 중에서 영지라 볼 수 있는 리지의 위치는 어디일 까?


1. 영지는 단군조선 번한 요중12성의 하나로 북경서쪽이나 북쪽 사이로 추정

북경 바로 바깥에 통도성이 있었다. 그래서 영지성은 북경을 조금 더 벗어난 곳이 되며, 아마도 북경의 서북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단군조선이 요중12성을 쌓은 이유는 요의 침략을 대비한 것으로서, 요임금의 나라가 태원 이남을 중심으로 한 나라이므로 태원 이북에 위치하는 것이 되므로, 영지성은 북경서쪽의 대동(상곡)과 적성(赤城) 사이에 있는 장가구(張家口장저커우)의 동남쪽과 북경서북 사이에 있는 성으로 추정된다.

2. 영지국은 고죽국의 수도(북경?)에서 서북에 위치한다.

고죽국의 수도는 지금의 북경이라고 본다. 고죽국은 연나라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구려와 접하며, 남동으로는 제나라와 접하고 동북으로는 낙랑과도 접하며, 서쪽으로는 서화(기자 망명지)와도 접하는 것으로 본다.

제나라 환공이 이끄는 군사는 먼저 영지성을 정벌하고 남동쪽에 있는 고죽국의 수도를 정벌하였다고 기록된다. 그리고 북쪽으로 산융을 정벌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산융은 곧 영지국과 고죽국을 거느린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말이 되며, 이때 산융은 단군조선의 중요 제후국인 구려가 된다. 당시 구려는 고죽국의 북쪽에 위치하며, 지금의 적봉시와 난하 상류 지역에 걸치는 나라였다. 난하 상류에는 서안평이 있었는데, 서안평은 거란의 상경임황부가 있던 자리이다.  

3. 귀방은 단군조선의 서남쪽, 은나라의 북쪽에 해당하고, 색도는 귀방의 동쪽, 영지는 색도의 동쪽 지역으로 추정된다.

귀방은 방향으로 보아 단군조선의 서남쪽에 해당하고 은나라로 볼 때는 북쪽에 해당하는 바, 은나라의 영역을 지금의 안양~서안~태원으로 하여 대략적인 중심으로 잡으면 그 북쪽은 황하중류 최북단을 포함하는 곳으로 만리장성 밖이 되며, 태원의 서북지역이 되고, 대동의 서쪽 지역이 된다. 즉 바오터우를 포함하는 지역으로서 음산산맥 일대가 되며 초기 흉노족의 활동무대가 되는 지역이 된다.

색도는 귀방의 동쪽으로 추정되는데, 대동과 장가구 사이 지역이라 보이며, 아마도 천진(天鎭)이나 불안(安)지역으로 보이고, 영지는 색도의 동쪽으로 장가구와 북경 사이에 있는 것으로 강력히 추정된다.

북경의 서북에 위치하며 탁록의 바로 강건너에 불래(來)라는 땅이 있고 사성(沙城)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이 영지성(令支城)이 틀림없다고 보인다.


이상으로 종합하여 보면, 영지(令支)는 북경의 서북에 위치하는 탁록의 바로강건너에 있는 지금의 불래(불來=沙城)라는 땅이 된다. 來와 令支, 不令支, 離支는 그 소리가 비슷하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