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번한관경 내 요중12성의 위치?
단군조선 초기가 되는 서기전2301년 경자년에 요중(遼中) 12성을 쌓았다. 이해는 단군왕검(서기전2333년~서기전2241년, 93년) 33년이 되는 해이며, 번한 2대 낭야(서기전2311년~서기전2238년)가 11년이 되는 해가 된다.
1. 요중 12성
서기전2301년 경자년에 쌓은 요중 12성은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통도(桶道), 거용(渠용),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다.
2. 요중12성을 쌓은 목적
단군왕검은 치우천왕의 후손이 되는 치두남(蚩頭男)을 번한으로 봉하고 겸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
여기서 치두남은 사람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남작(男爵)일 가능성도 있으며, 치두라는 남작을 승진시켜 번한으로 봉한 것으로 된다. 우(虞)는 순임금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순임금은 서기전2343년생이며, 서기전2324년에 아버지 유호씨를 따라 요임금을 토벌하러 갔던 인물로서 서기전2314년 30세에 요임금에게 등용되었고 서기전2294년 50세에 섭정을 맡았으며 서기전2284년에 요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천자가 되어 서기전2224년까지 나라를 다스렸는데, 치두남은 번한으로서 서기전2312년에 사망한 것이 되고 이때까지는 순이 요임금에게 등용되었던 시절이므로 요임금의 신하 순의 소행을 감시한 것이 될 것이다.
이후 치두남의 뒤를 이어 2대 번한 낭야가 서기전2311년에 즉위하여 계속적으로 순을 감시한 것이 되며, 서기전2301년에 요중12성을 쌓은 것이 된다.
결국 요중12성을 쌓은 이유는 요임금과 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서기전2357년에 요가 형 제지를 멸하고 자칭 제왕이라 하면서 배달나라의 질서를 배반하고 마음대로 구주를 나누고 마음대로 달력을 만들어 시행하는 등 폭정을 일삼았고 서기전2334년에 염제신농국의 섭정 비왕으로 다스리던 단군왕검의 나라를 기습침략하여 왕성을 점령하여 버리므로 당시 순방정치를 하던 단군왕검은 왕성을 잃고 급기야는 동북의 송화강 아사달로 무리 800을 이끌고 이동하였으며 결국 구이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였던 것이고, 나라를 정비한 후 서기전2324년경에 중신이던 유호씨에게 그 아들 순 등 환부, 권사 등 100여명과 군사를 내주어 요를 토벌토록 하였으며, 이때 요임금은 정세를 간파하고 굴복하여 나라를 보존하였고, 순의 사람됨됨이를 살피다가 서기전2314년에 순을 등용함으로써 순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었는데, 유호씨는 다만, 요와 순의 소행을 감시만 하였던 것이고, 이리하여 서기전2301년에 쌓은 요중12성은 요와 순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전략에서 쌓은 것이 된다.
3. 요중12성의 위치
요중12성은 서기전2301년에 쌓은 것으로 요동과 요서 지역에 있어 요중이라 하며, 당시 요동과 요서의 구분 기준선은 지금의 북경부근을 흐르는 영정하로 추정된다. 이리하여 요중12성은 이 영정하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누어 쌓은 것이 되는 것이다.
(1) 험독(險瀆)
험독은 번한의 가장 중요한 수도이기도 하다. 번한의 최초의 수도이기도 하고 마지막 수도이기도 하며, 줄곧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된다. 서기전194년에 번조선을 차지한 위만도 험독을 수도로 삼았다.
험독은 지금의 산해관 자리이다. 지금의 난하가 되는 옛 패수의 동쪽으로 발해만 유역에 해안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왕검성, 왕험성이라고 한다.
험독은 번한의 5개 수도 중의 하나가 되는 오덕지(五德地)의 하나이다. 요동지역에 위치한다.
(2) 영지(令支)
영지의 위치는 정확히 알기 어려운데, 서기전665년 제나라 환공이 영지국과 고죽국을 정벌한 기록으로 볼 때 연나라의 북쪽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연나라의 북쪽은 당시로는 태원에서 천진에 걸치는 지역이 되는데, 지금의 북경과 천진을 중심으로 한 나라가 고죽국이 되며 북경의 서북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요서지역이 된다.
그래서 영지성은 북경의 서북쪽이 되고 태원의 동북이 되는데, 지금의 대동이나 장가구 부근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전707년 단군조선이 연나라를 돌파하여 제나라와 임치부근에서 전쟁을 하여 승리 한후, 서기전665년에 제나라 환공이 영지국과 고죽국을 정벌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으며, 서기전653년에 다시 단군조선이 수유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치니 연나라가 제나라에 도움을 청하여 고죽국에 크게 쳐들어 왔으나 곧 화해하고 물러갔으며, 서기전651년에 제나라와 연나라가 다시 산융(山戎), 이지(離支), 고죽국을 정벌하였다고 기록되는데, 여기서 이지는 영지가 되며, 산융은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이지와 고죽국의 북쪽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며, 이때의 산융은 위치상으로 보면 고죽국과 낙랑의 북쪽에 위치한 구려국이 되는 것으로 된다. 북경의 서쪽이 되는 서화 땅은 은나라 태사 기자의 망명지가 되며, 기자의 후손은 수유라고도 불리는데, 수유, 고죽, 구려 등 단군조선의 일부 제후국을 산융이라 적은 것이 된다.
(3) 탕지(湯池)
탕지는 탕지보(湯池堡)라고도 하며 고구려의 요서10의 하나인 안시성(安市城)이다. 이 탕지는 번한의 오덕지 중의 하나로서 구 안덕향 즉 옛날의 안덕향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험독의 서북에 위치하고 패수(난하)의 서쪽으로 비정되며 만리장성의 남쪽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탕지는 요동지역이 되며, 난하가 요수가 되는 때에 요서지역이 된다.
(4) 통도(桶道)
통도성은 지금의 북경 밖 60리에 위치하였다. 아마도 동쪽으로 60리라고 보인다. 요동지역이 되며, 난하가 요수가 되는 때를 기준으로 하면 요서지역이 된다.
(5) 거용(渠용)
(6) 한성(汗城)
고구려 요서10성 중의 한성(韓城)이 틀림없으며, 위치상으로 고하의 최하류에 위치하고, 서기전323년에 기자의 먼후손 기후가 선점한 성으로 번한성(番汗城)이라고도 기록된다.
번한의 5개 수도가 되는 오덕지의 하나에 해당하며 중앙의 안덕향이라 불리는 개평의 서쪽에 위치한다.
요동지역이 되며, 난하가 요수가 되는 때를 기준으로 하면 요서지역이 된다.
(7) 개평(蓋平)
번한 수도의 오덕지의 하나로서 안덕향(安德鄕)이라 불리며, 동서남북중 수도 중에 중앙에 위치한 것이 된다. 개평은 지금의 당산 바로 위에 개평(開平)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요동지역이 되며, 난하가 요수가 되는 때를 기준으로 하면 요서지역이 된다.
(8) 대방(帶方)
정확한 위치는 불명인데, 낙랑과 비교하면 패수의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며, 패대지역이라고 할 때의 대는 대수(帶水)를 가리키는데, 이 대수는 지금의 요동반도의 서쪽에 흐르는 요하의 동쪽에 위치한 어느 강으로 보인다. 난하가 되는 패수와 이 대수 사이에 낙랑과 진번이 위치하고 있는데, 진번은 바로 진한과 번한 사이의 땅이 되고 대수(帶水) 가까이에 있으며, 요하의 바로 서쪽에 위치하고 구려의 동쪽에, 번한의 동북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된다.
요동지역이 된다.
(9) 백제(百濟)
일단 발해만 유역에 있었던 성이 되며 대방 부근으로 추정된다. 요동지역이 된다.
(10) 장령(長嶺)
장령은 만리장성이 지나는 고개로 추정되며, 난하 가까운 곳으로 추정된다. 요동지역이 되며 난하가 요수가 되는 때를 기준으로 하면 아마도 요서지역이 될 것이다.
(11) 갈산(碣山)
지명으로 보아 갈석산이 틀림없으며, 고구려의 요동성이 위치한 곳이 된다. 갈석산은 난하의 동쪽에, 험독의 서쪽이 되고 진황도의 서쪽에 위치한다.
요동지역이 되며, 난하가 요수가 되는 때를 기준으로 하면 요서지역이 된다.
(12) 여성(黎城)
단군조선 초기 순임금 때 구려분정(九黎分政)을 실시한 산동지역으로 비정되기도 하는데, 서기전1266년에 여파달(黎巴達)이 서쪽의 빈, 기의 땅 가까운 곳에 만든 나라 이름이 여(黎)이며, 빈, 기의 땅은 주나라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요서지역이 된다.
*구려분정은 크게보면 단군조선 제후국들의 자치가 되며, 좁게 보면 산동지역의 구려(九黎)인 동이족들의 제후국이 자치를 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 제후국들의 감독을 단군왕검은 순임금에게 맡겼다. 중국내륙에 있던 대표적인 동이족으로 내륙8이가 있으며, 그 외 도이(島夷:양자강 유역의 섬에 사는 동이족), 사이(沙夷:沙水 지역의 동이족), 사이(泗夷 : 泗水 지역의 동이족) 등 많은 동이족들이 나라를 이루었다. 내륙8이는 남이, 엄이, 개이, 래이, 우이, 양이, 서이, 회이이다. 남이(藍夷)는 남국을 가리키며, 서이(徐夷)는 서국을 가리키고, 회이(淮夷)는 회수지역의 회국을 가리키며, 엄이(奄夷)는 태산지역의 엄국 또는 엄독홀을 가리키며, 그외 개(介), 래(萊), 우(隅), 양(陽) 등은 모두 산동반도 지역에 있었다.
4. 요동과 요서의 구분선 - 요수(遼水)
요중12성이란 요동과 요서 지역에 있는 12성이라는 말이며, 서기전2301년 당시 요수는 바로 지금의 북경 부근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가 된다.
그래서, 12성 중 영지성, 여성은 요서지역에 있는 것이 되고, 험독, 탕지, 통도, 거용, 한성, 개평, 대방, 백제, 장령, 갈산은 요동지역이 된다.
서기전202년 한나라의 연왕 노관과 번조선이 국경으로 삼은 지금의 난하를 기준으로 하게 되면, 험독, 갈산, 대방, 백제는 요동지역이 되며, 탕지, 통도, 여성, 영지, 장령, 거용, 한성, 개평은 요서지역이 된다.
패수가 되는 난하를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강으로 삼은 것은 우리 기준으로 서기전202년이후가 되며, 고대중국에서는 요동과 요서의 구분선을 영정하로 보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패수인 난하를 요동과 요서의 구분선으로 하였으며, 태조무열제가 요서10성을 쌓았는데, 요동성만 요동에 있고 나머지는 요서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요서10성은, 안시(安市), 석성(石城), 건안(建安), 건흥(建興), 요동(遼東), 풍성(豊城), 한성(韓城), 옥전보(玉田堡), 택성(澤城), 요택(遼澤)이다. 안시성은 번한 요중12성 중의 탕지이며, 요동은 갈산이 되고, 한성(韓城)은 한성(汗城)이 되며, 건안은 안시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석성은 건안의 서쪽에 위치하며, 건흥은 난하 서쪽에 위치하고, 풍성은 안시성의 서북에 위치하며, 풍성의 먼 남쪽에 한성이 위치하고, 옥전보는 옛 요동국이라 하는데 영정하의 하류지역으로서 영정하의 바로 동쪽에 위치하는 것이 되고, 요택과 택성은 옥전보의 남쪽의 발해만 유역에 위치하는 것이 되고 옛 황하북류의 왼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특히 옥전보는 지금도 개평의 서북에 이름이 남아 있는 지역이 존재하는데, 고구려의 요서10성의 옥전보인지는 불명이다. 고구려의 옥전보는 지금의 옥전보의 먼 서남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고구려의 요서10성은 모두 영정하의 동쪽에 위치하고 난하의 서쪽에 위치하며 단지 요동성만 갈석산 부근에 위치하여 요동지역이 된다.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을 흐르는 요하(遼河)는 서기980년경 거란이 수도를 옮기면서 붙인 명칭이 되므로 고구려 이전의 요동과 요서의 구분선이 아니다.
원래 요동과 요서의 구분선은 바로 영정하이며, 우리 입장에서는 패수가 되는 난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고, 고대중국은 영정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였는 바, 기록을 세심히 살펴 요동과 요서를 구분지어야 하며, 영정하와 난하 사이는 우리기록에서는 요서로, 중국기록에서는 요동으로 기록된다.
옛 요동국이 위치하였던 옥전보는 영정하 하류의 동쪽에 있었던 것이 되며, 원래 연나라는 요서지역에 있었으나 고죽국을 차지함으로서 요동지역까지 들어오게 되어 이 요동국은 요서지역이 되었던 것이 되고, 번조선이 연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땅을 잠식당하여 서기전365년 이후 우리기록에서는 서기전202년에 한나라의 연왕 노관과 경계를 삼았던 난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구분한 것이 된다.
====================
<단군조선 번한 요중12성>
<고구려 요서10성>
<고죽국-서화-구려-남선비-낙랑-만번한>
'Blog·Cafe > 진실되게 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아사달시대(단군왕검 조선)-5 (0) | 2010.02.16 |
---|---|
조선시대-아사달시대(단군왕검 조선)-4 (0) | 2010.02.16 |
조선시대-아사달시대(단군왕검 조선)-2 (0) | 2010.02.16 |
조선시대-아사달시대(단군왕검 조선) (0) | 2010.02.16 |
제1남북국시대(대진국 신라) (0) | 2010.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