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앞쪽으로 올리는 사진 9폭(그 아래에 올린 사진들은 중국의 사이트에서 선재한 것이 아니다.)은 한 중국 네티즌이 사진의 출처도 밝히지 않고 설명도 없이 신화사이트에 올린 것인데 구체적 내용은 잘 알수 없으나 이미지를 통해 대체적인 문화적 의미는 알수 있다.원 제목은 <변태적인 일본인>이라고 되어있다.그러나 나는 이런 관점이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한다.이와 비슷한 풍속은 기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보기 힘들다.중국과 한국도 이와 비슷한 풍속은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있는 부분도 있는것이다.어쨌거나 이 사진들에서 표현되고 있는것은 분명 남근숭배사상인것 같다(기실 남근숭배사상만 있는것이 아니라 여근숭배사상도 엄존해 왔었다).
그럼 남근숭배사상이란 대관절 무엇일까?백과사전을 들춰보면 근간이 되는 내용을 알수 있다.
성행위나 성기(性器)에 의해 상징되는 생식원리를 숭배하는 것을 남근숭배[男根崇拜, phallicism]라고 한다.성행위나 남녀 성기의 상징과 관련된 종교 행위를 성기숭배 제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떤 제의가 성기숭배를 하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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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형식의 성의례(性儀禮)들은 성교가 다산(多産)을 촉진한다고 믿는 것, 신년 축제기간의 오르지(orgy) 경우처럼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문화를 원초적이고 강력한 혼돈의 상태로 되돌려놓음으로써 창조적 에너지가 홍수처럼 방출한다고 믿는 것, 연금술, 힌두교의 비의적 명상체계인 탄트리즘(Tantrism)처럼 성교가 상반된 것을 하나로 융합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그밖의 전통에서 숭배의 대상이 성기의 표상(예를 들어 그리스와 로마에서 디오니소스 행렬 때 남근상[男根像]을 들고 가는 것, 인도에서 남성 링가와 여성 요니)이나 뛰어난 성적 능력을 가진 신
(그리스의 프리아푸스)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볼 때 숭배를 받는 것은 성기 자체보다는 성기가 표상하는 창조적 힘이다.
일본의 성문화
1. 성의식의 원류 ㆍ≪고사기≫ 국토 생성 설화 - 일본의 국토가 신의 성적 결합에 의해 생성 → 성을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생산적인 행위로 보는 점,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으로 보고 신성시 ㆍ인간과 신의 합일 → 신 앞에서의 성적 결합 : 신도 기분이 좋아 곡식의 풍작, 일가의 번영
ㆍ아메노이와토 신화 : 신, 섹스, 웃음(성의 주술력과 웃음의 마력-웃음은 섹스와 동격) ㆍ일본 화장실의 성기 낙서 : 위험하고 다치기 쉬운 곳 일종의 부적 마귀를 쫓는 주술력 ㆍ신(가미), 어머니(가미상) : 일본 최초의 신은 여신, 생산력의 신비 대상으로써 동격 ㆍ신과 성을 직결 : 신토(神道) 자체가 성을 기쁨이나 축복으로 봄, 일본 특유의 성의식 ⇒일본의 성의식은 신과 연결되어있는 생산적 행위로써 오늘날의 성상품화와 구별
2. 남녀 성기의 명칭과 숭배 신앙
1) 성기 명칭
ㆍ≪도원화동(挑源華洞)≫ 1930년대 한정판으로 출판, 남녀 성기의 명칭에 관한 유래, 의미 등을 집대성 ㆍ여음 명칭 : 300여 개 ㆍ《고사기》《일본서기》에서 여자 성기를 `호토(富`登)` `호` : 불이나 태양, `토` : 장소를 나타내는 말 호토 : 신성한 곳, 신성한 영령이 나타나는 통로→자연숭배의 대상에 포함, 성기를 신성시(애액은 화상에 묘약)
ㆍ `오만코`, `간코`, `메코`, `찬코`, `보보`-불의 의미(보지-보자기, 불) ㆍ남성 명칭 : 150여 개 ㆍ마라(魔羅)-산크리스트 불전의 범어, 8세기경 일본에 유입, 신, 파괴의 의미 ※ 처녀, 처녀성, 처녀막-스키타 겐파쿠가 조어, 네델란드어 인체 해부학서를 우연히 보고 번역 ≪해체신서≫ 출간-춘화의 사실적 묘사에 영향 오토메(乙女)-성적관계가 없는 미혼 여성 일본은 처녀성 자체를 중요시하진 않은 듯, ≪고금화가집≫-첫사랑의 내용은 없다. 루이스 푸로이스 [유럽 문화와 일본 문화]-`일본 여성들은 순결을 조금도 중요시 여기지 않고도 시집을 잘만 간다` 유곽-처녀성은 상품성이 없음, 매독이 걸렸다 낳은 여자 인기, 숯총각은 인기(동정의 남자와 관계하면
재수, 횟수는 자랑거리이자 관록의 상징) 처녀성의 가치 : 유교의 도입으로 정절 중요시, 신앙의 영역 - 처녀가 아니면 신에게 봉사할 수 없었음(초조 전의 여자(중성으로 간주)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기에 신에게 봉사하기에 적절) 2) 성기 숭배 신앙 ㆍ 도소진(道祖神)-남자의 성기를 모방한 돌기둥이 동굴이나 고목의 기둥에 놓여 있음, ≪일본서기≫≪고사기≫에도 기록
ㆍ오래전 부터 민간 신앙으로 정착, 악귀로부터 마을과 통행인을 보호해주는 신령 ㆍ음력 정월 14일 15일에 제사 - 아이들이 중심(촌락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성지식 습득)이 되어, 온마을 전체의 제사 -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리는 의례 ㆍ크기는 60~90cm, 폭 30~39cm 정도 100kg넘는 돌기둥 ㆍ춘화 등에서의 남근의 지나친 과장 묘사
한국에도 성 풍속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도 이런 속신이 있는데 특히 남근석(男根石)은 이것의 대표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암탑과 수탑, 여근암과 남근암, 성기바위, 씹섬바위, 공알바위, 처녀바위, 삐죽바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여기까지 중국 인터넷사이트에서 전재한 일본의 성문화관련사진임.)
선돌이나 입암(立岩), 미륵암 등의 대응물들이 그대로 남근신앙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남근석은 남자의 상징을 따라서 뾰족한 형태나 길고 높이 솟아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에 따라서는 남근석과 여근석을 같이 두어 대비시키기도 한다. 이들 속신은 대개 아들 낳기를 바라는 유교사회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여자들이 치성을 드린다.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기원하는 경우가 많으나 마을집단의 공동체신앙으로서도 기능한다. 칠석 같은 명일에 백설기 등을 시루째 놓거나 맑은 물을 떠놓고 빈다.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개인적 염원을 기도드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며, 제를 지내는 사람은 금기를
하여 원하는 바가 잘 성취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섬지방에서는 남근석을 만들어 여신당에 둠으로써 풍어를 기원하는 생산기원적 의미도 지닌다. 가령 동해안의 삼척 해랑당에는 남근석을 여러 개 깎아서 당목에 걸어두어 마을에 제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풍어를 기원하고 바닷일의 안전을 도모한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남근숭배는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었던 부근당(府根堂)이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五州衍文長箋散稿〉에서 '접하는 네 벽마다 많은 나무로 만든 음경(陰莖)을 걸어놓으니 음탕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여 당집에 남자성기를 상징하는 목각물을 걸어두었음을 알려준다.
남정네나 여인네의 성기와 모양새가 닮은 자연적 상징물 또는 인위적 상징물에 바램을 담고 믿는 풍속신앙이다. 이러한 믿음은 나무나 돌을 남녀의 성기와 비슷하게 다듬어 만들어서 봉안하거나 암벽이나 암석에 남녀의 성기나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조각하고 새기어 신체로 삼는 신앙이다. 성기신앙은 기자. 풍어. 풍농 등 풍요로운 생산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행운을 빌기도 한다. 한국의 방방곡곡에서 그 질펀하고 끈끈한 풍속을 엿보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좆바위와 공알바위
예전에 여자가 아들을 낮지 못하면 소박을 맞았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남근과 여근이 수두룩했다. 남근석과 여근석을 부르는 이름도 가지각색이었다. 여근과 남근, 여근암과 남근암, 성기바위, 처녀바위, 미륵바위, 옥문바위 등 비교적 고상한 이름도 있었고, 좆바위, 씹바위, 공알바위, 씹섬바위, 암탑, 수탑, 자지방구, 소좆바위, 뼈죽바위와 같은 노골적이고 질펀한 표현도 있었다.
마을의 입구에 멀쩡하게 좆바위를 세워 놓았는데 숫기 없는 처녀들은 얼굴을 붉히었고, 총각 녀석들이며 동네 아낙들은 신주 모시듯 하며 즐거워했다. 허나 뭐랄 사람도 없었고 음탕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정월이면 좆바위에 새끼를 감아 성적제의를 올리며 풍년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기도 했다
남근 숭배 사상은 원래 남방계의 풍습인데 일본을 거쳐서 동해안 일대로 들어 왔다. 이러한 풍습은 동해안의 몇 몇 지역에서 수신제 또는 해신제로 행해지고 있다.
동해바다를 향하여 향나무로 깍아진 남성의 성기가 출렁이는 물결과 바닷바람을 배경으로 꺼떡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남근숭배 사상이 나타나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옛날 옛적에 한 어부의 어엿쁘고 착한 딸이 살고 있었다. 나이가 차 시집 갈 때가 된 그 처녀는 씩씩하고 건장한 배필을 원하였다. 처녀는 소망하던 대로 건장하고 미남인도사공 청년과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청년은 풍랑을 만나 조난을 당하게 된다. 처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청년이 풍랑과 싸워 이기고 꼭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매일을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청년이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지 않자 처녀는 바다에 몸을 던지었다. 그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생기고 바다의 물고기도 씨가 마르고 마을의 어부들도 조난을 당하게 된다.
또한 바다에 나간 젊은이들도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의 사람들은 시집도 못가고 바다에 빠진 처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사당을 짓고 나무로 남성의 성기모양을 깍아 만든 남근을 만들고 정성스레 칠을 하여 바치고 매월 단오 때 마다치성을 드리었다. 그 뒤에 흉어와 조난이 없어졌다 한다. 이렇듯 남근숭배의 풍속 또한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네의 삶이 베어져 있다
여근 숭배
남근숭배사상이 만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맞붙는 여근이 무시되지는않았다.남근이 우뚝하니 위용을 과시하면 그에 걸맞는 여근 또한 질펀한 모습으로 짝을 이루며 견주고 있었다.자연스레 생긴 바위의 모양새가 마치 여성의 성기처럼 옴푹 패이고 드러난 모습은 영락없이 여자의 음부 그대로이다.
남근(男根)숭배민속을 관광지로 조성해 놓은 해신당공원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결혼한 지 6년만에 임신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삼척시 원덕읍 신남리 해신당공원에서 관광통역 안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일본인 고이께 하루미(36)씨는 지난 1999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뒤 삼척에 정착해 살고 있으나 아이를 갖지 못해 고민스런 날을 보내 왔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삼척시 관광통역 안내원으로 해신당공원과 어촌민속전시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통역원으로 근무하던 중 6년만에 첫 아이를 임신하게 돼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루미씨는 주변 동료들로부터 `남근목 전설의 효험을 얻었다'는 축하인사를 받고 있으며 주민들 또한 구전으로만 내려 오던 남근목의 전설을 실감하고 있는 눈치이다.
해신당공원에는 이 마을 총각과 결혼을 약속한 처녀가 해초작업중 풍랑으로 죽은 뒤 계속 흉어가 되자 처녀의 원혼을 살리기 위해 남근을 만들어 매년 제사를 지냈더니 풍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에 남근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있고, 삼척시는 해신당을 비롯해 남근조각공원과 어촌민속전시관, 세계성민속 전시관을 조성해 유료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일부 관광객들은 이 곳을 다녀 가면 2세를 잉태한다는 소문을 믿는 등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삼척시 대표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한다.
추꾸이또 사원
|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티티카카(Titicaca)호수의 북쪽 지방에 살았던 아이마라족이 세웠다는 추꾸이또 사원은, 옛부터 결혼 후에도 장기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 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인들은 이곳에 찾아와 이 바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고.
땅에 박혀 있는 이 남근석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뾰족한 머리 부분이 하늘을 향해 박혀 있는 것은 "신에게 감사한다(Gracias a dios)"는 의미이고, 뾰족한 머리 부분이 땅으로 박혀 있는 것은 "땅에게 감사한다(Gracias a tierra)"는 의미.
아이마라족은 자신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태양과,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땅에게 감사하기 위해 이 남근석들을 사원 내에 박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돌들은 남근을 닮았다는 이유로,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용도로 변형돼 사용되고 있다.
사원 내에서 바라보이는 성당의 종탑 가장 꼭대기에도 작은 크기의 남근석이 있는 게 보인다. (출처: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