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지(述志)-길재(吉再;1353-1419)
내 평생의 뜻-길재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 개울가에 초가집 지어, 한가히 홀로 사니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즐거움이 넘치네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부래산조어) : 손님이 찾지 않아도, 산새들이 이야기 하고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대나무 둔덕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 글을 읽는다오
길재(吉再1353-1419)는· 관료로 였던 아버지를 만나러 개경에 갔다가 이색,·정몽주,·권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 후에 여러 벼슬을 거쳐 성균박사를 역임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상박사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에 따라 거절하였다.
세상의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정여창,·조광조 등으로 그의 학맥이 이어졌다.
1구를 보자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 개울가에 초가집 지어, 한가히 홀로 사니
벼슬을 떠나 시골에 살면서 다른 일 하지 않고 공부만 한다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개울가(臨溪)에 초가집(茅屋)을 짓고 한가히 살 수 밖에는(閑居) 없을 것이다. 어디 진정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일과 병행할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겠는가.
여기에서는 작자가 처한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시골에서 학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구를 보자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즐거움이 넘치네
그는 시골에서의 학자 생활이 대단히 만족하다. 보통 사람은 따분할 것이다. 학자들의 하는 일이란게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어떤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그 성과 성과에 따른 보상을 원하는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도 관리가 되어 권력을 쥐고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판단으로 그 길도 스스로 막아버린 것이다. 정말 보통 사람에게는 즐거울 것이 하나없는 생활인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이 있어 즐거운가. 그것은 달과 바람이다. 달빛(月)이 너무 밝아 천지가 눈내린 듯 하얗고(白), 바람(風)은 맑아(淸)다. 그 맑은 바람은 때맞춰 솔솔불어 더위를 식혀주는 것이다. 이러할 때이면 마음에 흥(興)이 절로 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흥은 즐거움이 되어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有餘).
여기서는 작자가 자연과 벗하여 자연 속에 동화되어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런 댓가없이 그저 자신이 느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무진장의 보물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3구를 보자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부래산조어) : 손님이 찾지 않아도, 산새들이 아야기 하고
시골의 조용한 학자를 진정한 학문을 연구하는 이 외에 누가 찾겠는가. 인간이란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데 이와 관련이 없는 작자를 찾는 사람이란 적을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외래의 손님(外客)은 오지 않는다(不來)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건 사람은 외부와 교섭을 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작자는 무엇과 교섭하는가. 그렇다. 여기서는 산새들山鳥)과 이야기를 나눈다(語)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의 산새는 또 다른 자연물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4구를 보자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 대나무 둔덕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 글을 읽는다오
그리고 또 작자는 무엇과 외부와 교섭하는가. 그것은 책을 통해서 책 속의 여러 인물과 사건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 읽기는 그의 하나의 생활이 되어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날이 어두워지거나 너무 더워지거나 하면 책 읽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러한 불편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책읽기 좋은 곳으로 자유롭게 그 장소를 옮겨가는 것이다.
아무도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자기 기분에 맞추어 언제고 어디로나 옮겨갈 수 있는 생활이다.
작가는 시원한 그늘과 적당한 바람이 부는 대나무 언덕(竹塢)으로 평상(床)을 옮겨간다(移)고 했다. 그리고는 책읽기에 가장 편한 자세로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누워서(臥) 글(書)을 본다(看)고 했다. 물론 처음부처 누워서 책을 읽는 자세가 편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장소를 옮겨오기 전까지는 단정한 자세로 오랫동안 글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누운 자세가 편하다는 것이다.
이 또한 자연에 뭍혀사는 작자의 특권이다. 구속되지 않는 삶이며, 그 즐거움이다.
여기서는 자연 속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자유자재하는 학자의 성숙한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를 통해서 우리는 물러나 자연에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유유자적한 대학자의 평화롭고 만족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어쩔 수 없이 쫓겨난 사람의 삶이나 우선 물러나 다시 기회를 노리는 사이비 학자의 은둔 생활과는 구별되는 삶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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