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택론' 시대 화장하는 남성 등
생물학 범주 넘어 인문과학·예술로
"진화 개념 없인 아무것도 의미 없다"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 최재천
1859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의 존 머레이 출판사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판매용으로 찍은 1170권의 초판은 꺼내놓기가 무섭게 당일로 몽땅 다 팔려나가는 진기록을 세우며 당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이 창조주의 은총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나타난 결과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발이었다.
2000년 서양 역사의 사상적 기반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 철학과 기독교 신학이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 세상은 영원불변의 전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전형으로부터의 변이(變移)는 진리의 불완전한 투영에 불과하다. 금이 은으로 변할 수 없듯이 생물의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다윈은 플라톤이 진리의 불완전한 그림자로 지정한 변이야말로 이 세상에 실존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다름이 곧 아름다움이며 삶의 새로움을 잉태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다윈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다윈의 진화론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론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50년간 끊임없이 계속된 담금질로 인해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생명의 의미와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이론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진화론은 이제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법학 등의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과학사학자들은 이들 두고 '다윈 혁명'이라 부른다. 일찍이 유전학자 도브잔스키는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제 감히 이렇게 말하련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대공황의 공포로 밀어 넣는 요즘 경제학의 지평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경제의 주체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과 심리에 관한 과학적 분석이 결여된 경제학이 논리적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법학도 드디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 거의 맨 마지막에 이르러 홀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먼 훗날 훨씬 중요한 연구 분야들이 열릴 텐데, 심리학은 전혀 새로운 기초 위에 놓일 것이다." 요즘 각광 받고 있는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도 엄연히 진화의 산물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분야들과 진화생물학을 통섭(統攝)하고 있다.
- ▲ 다윈이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거북이‘해리엇’. 2006년 6월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176세에 세상을 떴다(왼쪽), 탄생 200주년을 맞아 21세기의 사상가로 되살아나는 찰스 로버트 다윈(오른쪽). /조선일보 DB사진
다윈이 돌아왔다. 《왜 다윈이 중요한가?》(바다출판사)의 저자 마이클 셔머는 우리 시대를 주저 없이 '다윈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는 근대를 대표하는 세 석학,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중에서 다윈만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 그의 이론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모름지기 훌륭한 이론은 간결하고 쓰임새가 다양하며 우아해야 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은유와 유비로 가득 찬 아름답고 탁월한 이론이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이론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감탄한다. "그처럼 단순한 시작(So Simple a Beginning)으로부터 이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우리는 감탄한다. "이 엄청난 생명다양성의 진화가 그처럼 단순한 이론(So Simple a Theory)으로 이렇게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다니!"
다윈 포럼은?
'다윈 포럼'은 찰스 로버트 다윈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통섭(統攝·Consilience)을 지향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통섭'은 '전체를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이다.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통섭》을 통해 인문사회과학과 예술은 진화학·유전학·뇌과학 등의 도움을 얻어 재해석되고,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지식인 사회에 학문 통합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 결성된 다윈 포럼은 다윈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등을 함께 연구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국내에 '통섭' 개념을 소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교수(통섭원 원장)를 비롯해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 위원(과학사), 최정규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진화경제학), 강호정 연세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생태학), 장대익 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생물철학), 김성한 고려대학교 철학과 강사(철학과 윤리), 전중환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연구원(진화심리학), 이상임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연구원(행동생태학), 김태원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연구원(행동생태학) 등으로 구성됐다.
입력 : 2009.01.0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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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경제: 경제 위기의 순간에 다윈을 찾다
세계경제가 위기다. 서브프라임 부실의 충격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침체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그냥 놔두면 시장경제는 알아서 잘 작동할 것이라던 믿음이 깨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놀라며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경제에서 위기와 급변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1929년 대공황 이래 지난 세기에만 우리는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문제는 기존의 경제학이 이러한 경제현실을 설명하는 데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이다. 그 훌륭한 경제학자 중 누구도 이들 사태를 예상하지도 못했고 그들의 경제 원리를 가지고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은 1970년대 세계경제가 오일쇼크로 인한 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경제학의 위기'를 외쳤는데 30여년 만에 또다시 경제학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균형에 관한 헛된 믿음을 버려라
기존 신고전파 경제학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이유는 그것이 뉴턴 역학에 입각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뉴턴표(標)' 경제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뉴턴 역학의 체계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균형을 정상상태로 생각한다. 경제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자동제어장치' 같아서 항상 균형 상태에 있으며, 외부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쇄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다시 균형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내생적인 불안정성이나 급격한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현실은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다양성의 확대와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출현',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변의 소용돌이',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경제 현실이다. '뉴턴표' 경제학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경제학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를 정상 상태로 하는 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의 경제현실을 보면서 다윈을 다시 찾는 이유이다.
기존 신고전파 경제학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이유는 그것이 뉴턴 역학에 입각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뉴턴표(標)' 경제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뉴턴 역학의 체계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균형을 정상상태로 생각한다. 경제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자동제어장치' 같아서 항상 균형 상태에 있으며, 외부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쇄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다시 균형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내생적인 불안정성이나 급격한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현실은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다양성의 확대와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출현',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변의 소용돌이',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경제 현실이다. '뉴턴표' 경제학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경제학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를 정상 상태로 하는 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의 경제현실을 보면서 다윈을 다시 찾는 이유이다.
- ▲ 금융 위기의 충격에 사로잡힌 뉴욕증권거래소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다윈주의자들은 경제 위기의 원인을 진화경제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조선일보 DB사진
다윈은 변이와 선별, 이 두 가지 간단한 개념의 결합을 통해 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혔다. 비록 다윈은 자신의 개념을 생물의 진화에 적용하였지만 이 원리는 생물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세계의 보편적인 변화 원리가 될 수 있으며 경제에도 훌륭히 적용될 수 있다. 《부의 기원》(2007)을 쓴 바인하커(E. Beinhocker)는 진화야말로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공식"이라고 하였다.
경제현실에서 변이는 새로움의 지속적 창출을 의미하고 선별은 변화의 누적적 증폭 과정을 의미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의 내생적 변화는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이것이 누적적 증폭 과정을 통해 확산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 슘페터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누적적 변화'를 강조한 베블렌 등은 진화론적 관점을 경제학에 도입하려고 노력했던 20세기 초의 경제학자들이었다.
◆경제는 두려움 때문에 진화한다?
금번 경제위기도 진화 패러다임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이는 작은 국지적 요동이 누적적 증폭과정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자의 연체가 금융기관의 연쇄적인 부실로 이어졌다. 금융기관의 대출 중단과 회수는 자산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이것이 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대출 중단 및 회수 행동을 더욱 강화시킨다. 가계와 기업 역시 지출을 줄이면 고용과 이윤을 감소시키고 이것이 다시 지출 축소 행동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두려움이 현실을 악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두려움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한쪽 방향으로 선별이 일어나 그것을 확산시킴으로써 글로벌 경제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경제는 갈수록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급변이 빈발하고 있다. '뉴턴표' 경제학은 이제 그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진화론이야말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적합한 패러다임이다. 이것이 경제위기의 순간에 다윈을 찾는 이유이다. 이제는 경제학의 기초에 진화론이 들어와야 한다. '다윈표' 경제학이 부상할 때가 된 것이다.
입력 : 2009.01.12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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