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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종교․사상의 갈래와 흐름

지식창고지기 2010. 3. 19. 21:12

중국 종교․사상의 갈래와 흐름

 

 

중국사상의 주된 흐름은 유가․불가․도가로 나눌 수 있다. 유교가 정치․경제․사회․교육에 영향을 미쳤다면 불교는 종교와 예술에 영향을 끼쳤고 도교는 천문․지리․의학 같은 과학 방면과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공자가 만든 유가의 첫 번째 특징은 인본주의이다.

 

공자의 사람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인(仁)으로 표현하였다. 이 같은 생각을 이어 받은 맹자는 사람다움의 실현 근거로 성선설을 주장하였고, 순자는 실천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였다. 유가의 두 번째 특징은 도덕 지향이다. 유가는 도덕 욕구만을 인정하고 사적인 이익 추구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맹자는 4단만을 인간의 본질적 요소로 인정하였고, 이 같은 흐름은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수양론으로 이어졌다. 유가의 세 번째 특징은 강한 사회성이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논리가 그것이며,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걱정하는 우환의식으로 남았고 그 결과 관료 지향의 병폐를 낳기도 하였다.

 

다음은 도가사상을 보자.

 

도가사상가로는 양주․노자․장자․열자 등이 있고, 한나라 말에는 도가사상에 방술, 역술, 음양설, 오행설, 점성술 등을 뒤섞은 도교가 나왔다.

 

도가의 첫 번째 특징은 인본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도가는 인간 중심주의를 부정하고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것을 강조하였다.

 

도가의 두 번째 특징은 도덕 지향에 대한 부정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혜나 인․의․예․지 같은 도덕을 반대하였고, 정치적으로도 백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에 맡겨 두는 무위(無爲) 정치를 주장하였다.

 

도가의 세 번째 특징은 평등 지향이다. 도가는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이며 만물은 같다는 입장에 서 있다. 도가의 네 번째 특징은 개인주의와 신비주의적 경향이다. 이 같은 경향은 현실 부정의 도피와 은둔사상으로 이어져 위진남북조시대에 죽림칠현 같은 풍조로 유행하였지만, 문인과 화가들의 자유로운 예술정신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다음은 불교를 보자.

 

불교는 인도 고유 사상에서 나왔지만 계급적 인간관을 평등한 인간관으로, 신 중심의 세계관을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고행 중심의 수행관을 중도(中道)의 수행으로, 내세적 해탈을 현세적 해탈로 바꾸었다.

 

불교의 첫 번째 특징은 연기(緣起)적 세계관이다. 세상 모든 것은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다른 존재나 현상과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연(緣)에 의해 일어난다. 이 같은 연기적 관점에서는 창조론이나 환원론이 나올 수 없다.

 

불교의 두 번째 특징은 주체적 인간관이다. 해탈 가능성과 현실의 고통스러운 생활 사이의 틈이 언제나 열려 있으며, 그 실현 여부는 오직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만이 자기 삶의 완벽한 주인이자 책임자이다.

 

불교의 세 번째 특징은 평등적 세계관이다. 모든 인간이 해탈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나아가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중국의 종교와 사상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된 때는 춘추전국시대이다.

 

사마담(司馬談)은 제자백가를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名家), 음양가의 여섯으로 나누었으며, 그 가운데 법가사상을 받아들인 진나라가 통일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진나라가 망한 뒤 법가의 전제정치에 대한 반발로 황노사상이 유행하였다. 그 뒤 무제가 동중서의 현량대책(賢良對策)을 받아들여 유학의 정치화를 이루었다. 또한 분서갱유에서 살아남은 옛 문자로 쓰여진 경전들과 그 이후 정리 작업을 통해 복원된 당시의 글자로 쓰여진 새로운 경전들 사이에 금고문논쟁(今古文論爭)이 일어났다.

 

한나라 말에 이르면 도교와 불교가 큰 틀로 자리 잡는다. 불교는 초기에 중국 전통사상 개념들을 빌려다가 불교를 이해하려는 의탁불교(依託佛敎)로 나타났고, 이어서 도가사상을 중심으로 비슷한 개념끼리 짝을 맞추는 격의불교(格義佛敎)로 나아갔다. 특히 남북조시대에 겪은 몇 차례의 탄압은 불교가 현세주의에 부응하는 중국적 성격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위진시기에는 유교가 침체하면서 어지러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지식인들이 청담사상을 유행시켰다. 수당 시기에 이르면 교상판석(敎相判釋), 또는 교판이라고 불리는 부파불교 시대가 열려서 삼론종, 법상종,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율종, 진언종 같은 다양한 종파가 나온다. 중국불교는 특히 혜능(慧能)에 의해 선종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송나라에 이르면 유․불․도 삼교의 교섭 결과로 성리학이 나온다.

 

성리학은 불교와 도교를 받아들였지만 그 핵심을 인본주의적 윤리에 둠으로써 오히려 도가와 불가사상을 배척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주희는 동아시아 중세의 보편적 사유체계를 이룩하였다. 성리학은 원나라로부터 관학의 지위를 얻었지만 명나라 중기 이후 교조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양명학이 나온다. 왕수인의 사상은 왕기―왕간―하심은―이지로 이어지면서 명대 서민문화에 상응하는 사상으로 나아갔다.

 

명말청초에는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학문 경향이 등장한다. 황종희는 계몽사상가적 정치 이론을 전개하였고, 고염무는 고증학의 틀을 만들었으며, 왕부지는 기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을 마련하였다.

 

19세기 후반 들어 서구의 과학기술만을 받아들이려는 양무파(洋務派)와 정치․경제의 개혁까지를 주장한 변법파(變法派)가 대립하였고, 그 뒤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특히 5.4 신문화 운동 이후 대다수 지식인들이 전통사상을 철저히 부정하였으며, 서구사상과 전통사상이 격렬하게 맞서면서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이 같은 흐름은 문화대혁명을 거쳐 1980년대 전개된 ‘문화열 논쟁’과 대만과 해외 학자들이 중심이 된 현대신유가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