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종교와 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 민족은 오랜 옛날 중앙아시아로부터 지금의 지역으로 들어 와 산서성에서 황하 유역에 걸친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고대 한족(漢族)은 대륙․집약형 농업민족이었으며 이러한 형태는 춘추전국(春秋戰國 기원전 770년~기원전 222년)시대에 형성되었다. 특히 황하 유역은 기후가 건조하고 비도 고르게 내리지 않아 가뭄과 장마의 재해를 입기 쉬웠지만 양자강은 관개(灌漑)작업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정경세작적(精耕細作的)’인 경작제도가 형성되었고, ‘일가일호(一家一戶)’ 방식의 분산적이며 개체적인 특색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소생산농업(小生産農業)은 천재지변과 인재에 대항할 조직과 권위 내지는 폭력이 필요하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 봉건사회 특유의 종법(宗法)제도와 강대한 전제주의 중앙집권제를 형성하게 한 중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지리 환경 위에 형성된 중국 전통문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현세성(現世性)이다.
개체소생산 농업은 적절한 기후와 ‘국가 사회의 안정(國泰民安)’을 필요로 했다. 주요 관심사는 현세였으며 내세나 천국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중국사상의 주류인 유가(儒家)는 현세만을 중시한 사상이었고, 외래사상인 불교(佛敎)도 중국화된 이후 현세성이 강화되었으며, 토착사상인 도교(道敎)는 불교보다 더욱 현세적이었다.
둘째는 실용성(實用性)이다.
사람들은 실제 문제의 해결에 열중하였으며, 우주의 본질이나 죽은 뒤의 저 세상에 대한 고도로 추상적인 사고에는 관심이 적었다. 자연과학 방면에서 가장 발달한 것도 농업, 의학, 수리, 역법 같은 실용적인 과학기술이었다.
셋째는 경험성(經驗性)이다.
고대 한족의 사유방식은 경험적이며 실증적이었다. 수학의 발전도 세금 징수 등에 활용하기 위한 실제 계산 방법에 치중하였기 때문에 대수는 발달했으나, 기하학처럼 공리공론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논증을 하는 작업은 거의 보기 힘들다.
넷째는 인간사의 중시이다.
사람과 자연(天人)의 관계를 탐구할 때 양자의 대립이 아닌 일치․화해․협조를 중시하였고, 사람의 역할인 정치․도덕․윤리 관계를 특별히 중시했다.
다음으로 중국 봉건사회의 경제구조를 보면 물질생산은 ‘일가일호(一家一戶)’를 기본 단위로 하고 있고, 자발적이면서 간단한 도구에 의존하는 생산구조이다. 따라서 단순한 교환관계만 있을 뿐 세밀한 분업관계는 없다. 또한 인구 재생산 과정은 종법(宗法)제도와 노동력에 기댄 자연경제의 제약 때문에 자손을 늘려 노동력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효(孝)’의 으뜸이었다. 그리고 정신적 재산의 재생산 과정은 물질생산과 인구증가의 제약을 받았다. 그래서 물질생산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필요한 지식의 범위가 좁고 간단하며 중복되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이런 점이 낮은 수준에서 만족하는 ‘안분자족(安分自足)’의 태도를 낳았다.
중국 봉건사회의 기본 경제구조는 개체농업과 가내수공업의 결합이며, 전통적인 ‘남자는 밭 갈고 여자는 베 짜는(男耕女織)’ 방식이 이어졌다. 또한 소유제는 지주경제와 소농경제의 결합이었다. 지주는 토지를 소규모로 나누어 소작농에게 빌려주므로 ‘일가일호’가 생산 단위가 되며, 소작농은 농산물의 생산뿐만 아니라 그 밖의 수공업품도 만들어 낸다.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는 단순한 소작관계가 아니라 종법적 주종(主從)관계 또는 장유(長幼)관계였다. 또한 소농 중심의 지주경제는 상품경제의 발전을 막았다. 평등한 교환과 왕래는 가치문제에서 평등 관념을 유포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중농억상(重農抑商)’과 ‘농본상말(農本商末)’의 관념이 나오게 되었다.
다음으로 중국 봉건사회 정치구조의 특징은 가족과 국가가 같은 구조로 연결되는 ‘가국동구(家國同構)’이다. 가정은 ‘가부장(家父長)’을 핵심으로 하면서 가족 질서인 ‘효(孝)’를 체계화시켰고, 국가도 군주부터 신하로 이어지는 ‘충(忠)’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특히 주나라의 봉건제는 천자부터 대부까지 모두 친인척이었으며, 그들 사이의 질서가 사적으로는 효(孝)와 친(親)이고 공적으로는 충이었다. 그러므로 ‘효’와 ‘충’은 제각기 윤리범주와 정치범주를 대표하며, 이 두 개념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다. 정치구조의 또 다른 특징은 관료제이며 그 핵심에 ‘종법제(宗法制)’가 있다. 관료제는 군주가 모든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며, 방대한 사대부가 항상 관료예비군으로 존재하였다.
이 책에서는 사상사에 나타난 중요한 관념을 기준으로 5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1단계인 중국문화 잉태기는 은주(殷周)시대를 가리키며, 중국문화의 기본 틀이 되는 하늘에 대한 관념과 음양오행설들이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2단계인 중국문화 정초기는 춘추전국시대를 가리키며, 제자백가의 다양하고 풍부한 사상 전개를 통해 이후 중국문화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원천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3단계인 중국문화 발전기는 한당시대이며, 중국문화의 색깔이 분명해지고, 외부로부터 들어온 불교사상을 융합한 시기이다. 4단계인 중국문화 강화기는 송, 명, 청 시대이며, 성리학을 꽃피운 시기로서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져 여러 나라로 전파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5단계인 중국문화 전환기는 근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이며, 근대화를 모색한 시기로서 모택동사상을 비롯하여 현대신유가 같은 다양한 사상적 모색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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