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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corset)은 배와 허리를 조여 체형을 보정하거나 교정하는 여성용 속옷이다. 허리를 가늘게 보이기 위해 착용하는 코르셋은 오랫동안 서양 여성의 필수품이었다.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조여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16~18세기 서양 여성들은 꽉 죈 코르셋 아래로 고래 뼈와 강철 심에 넣고 뻣뻣한 천을 대 넓게 편 스커트를 연결한 속옷을 입었다.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편안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코르셋을 벗어 던지게 했을까?
패션은 변한다
전통 사회에서 옷은 신분을 상징했다. 19세기부터 유럽에 경제적 계급이 등장했고 옷은 계급을 나타냈다.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옷은 너무 비싼 물건이었으며 중요한 재산 목록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 당시 마련한 옷을 평생 간직하며 예배, 결혼식, 장례식 같은 행사 때만 입었다. 옷은 사회적 계급과 성별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직물 산업이 발전하면서 옷은 점차 저렴해졌다. 상류계급의 전유물이었던 패션은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에게 점차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계급이 비슷한 종류의 옷을 입게 되었다. 이러한 19세기 말의 변화를 미국 사회학자 다이애나 크레인은 ‘패션의 민주화’라고 정의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하층계급이 상층계급의 옷을 모방함으로써 신분상승의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업에 따른 제복이 새로이 등장해 패션은 사회적 통제수단으로 기능했다.
20세기에 들어서 패션은 계급 문화에서 소비자 문화로 바뀌었다. 19세기 산업사회에서는 계급이 옷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나, 성별ㆍ연령별ㆍ인종별로 세분화된 20세기 사회에서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여성과 남성 옷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가부장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여성에게 일정한 옷을 입도록 요구했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 가부장주의 이데올로기에 무언의 저항을 했다.
1850년대 미국의 여성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는 터키풍의 헐렁하고 풍성한 바지와 그 위에 입는 짧은 스커트로 구성된 ‘블루머 스타일’을 제안했다. 여성을 속박했던 거추장스러운 드레스와 달리 블루머 스타일은 편리하고 실용적이었지만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남성들은 여성이 바지를 입게 되면 남성과 차이가 없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후 바지가 여성의 일상복이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무려 100여 년의 투쟁이 더 필요했다.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성별 경계에 도전하는 것은 여성의 독립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띠었다. 20세기 초까지 서양 여성들은 말을 탈 때도 풍성하고 기다란 치마를 입어야 했다. 이런 불편한 관습을 사라지게 한 것은 혁명가나 정치가가 아니었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고 승마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것은 깡마른 몸매에 짧은 머리를 한 여성 디자이너 코코샤넬(1883~1971)이었다.
샤넬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20세기 패션의 상징인 코코 샤넬은 매우 극적인 삶을 살았다. 본명은 가브리엘 샤넬. 샤넬은 1883년 8월 19일 프랑스의 오르베뉴 지방의 시골 소뮈르에서 떠돌이 청년과 시골 처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그녀를 고아원에 보냈고, 샤넬은 이곳에서 훗날 그녀를 디자이너로 만든 계기가 되는 봉제 기술을 배웠다. 그녀는 가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불행을 보면서 그녀는 평범한 가정보다 독립적인 삶을 원했다. 샤넬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나는 내게 감옥 문을 열어줄 돈만 생각했다”고 회상하곤 했다.
1907년 어느 저녁, 샤넬은 가방 하나만 손에 들고 파리에 도착했다. 시골 출신의 말라깽이 처녀 샤넬이 앞으로 전 세계의 패션을 송두리째 바꿀 사람이라고 짐작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샤넬은 낮에는 의상실 견습공으로, 밤에는 클럽의 가수로 일했다. 그녀는 가수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대부호 에티엔 발장의 정부가 되었다.
노래 연습을 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바느질을 계속했던 그녀는 27세가 된 1910년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에테엔 발장의 도움을 받아 파리에 조그만 모자 가게를 연다. 그리고 자신이 밤무대에서 불렀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에서 착안해 ‘COCO’라는 로고를 만들었다. 이것이 세계적인 명품 ‘샤넬’의 시작이다. 이는 나중에 C가 서로 등을 대고 겹쳐있는 로고로 바뀌었고, 영원히 변치 않을 샤넬의 상징이 되었다. 샤넬은 가브리엘이란 이름 대신 코코라는 별칭으로 유명해졌다.
그 후 샤넬은 새로운 애인인 영국 부호 보이 카펠의 도움으로 의류업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샤넬이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라고 한다. 패션 사업에 진출한 샤넬은 1차 세계대전의 두려움에 떠는 상류층 여성들에게 자신의 부티크를 열린 공간으로 제공했다. 그녀의 의상은 개성 있고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감각,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바느질로 상류층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티크 종업원들도 귀족이나 상류층 출신 아가씨들을 채용했다. 샤넬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움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허영심을 이용하는 비즈니스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밑바닥 인생에서 출발해 상류층 패션을 통째로 뒤바꿔버린 샤넬의 발상은 매우 특이하다. 어쩌면 ‘마음껏 복수하자’는 역발상이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류사회를 동경하면서도 경멸했던 그녀는 마치 복수하듯 기존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상류계급 의상을 철저히 파괴하고 심플하면서도 기능적인 의상을 만들었다. 레이스나 털 장식은 일절 쓰지 않았다. 과거의 것은 모두 버렸다. 덕분에 샤넬은 ‘모든 것을 죽이는 천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샤넬은 단지 옷만 만드는 디자이너였다기보다 당대의 예술운동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넓은 의미에서 샤넬 패션은 1930년대 이후 확산된 건축과 예술의 모더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나친 장식을 없애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기능성과 효용성을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추세였으며, 시대의 대세였다.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모더니즘 건축의 슬로건은 샤넬의 패션에서도 그대로 구현되었다.
샤넬은 당대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과 친분을 나누었다. 그녀는 예술가를 알아보는 안목과 예술가들을 위해 거액을 쓸 줄 아는 배포, 그리고 새로운 사랑에 인생을 내던지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장 콕토,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디아길레프,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이반 스트라빈스키,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등 그녀의 친구들은 당대의 일류 명사들이었다. 샤넬은 당대의 예술가들과 사귀면서 자신만의 패션왕국을 만들어 20세기 패션을 뒤바꾸는 혁명을 시도했다.
샤넬 패션은 무엇이 다른가
패션의 역사에서 코코 샤넬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여성 패션의 역사를 샤넬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샤넬은 꽉 조이는 코르셋과 장식적인 옷에서 여성들을 해방시킨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그녀가 만든 여성용 승마 바지와 값싼 저지(Jersey)로 만든 저지룩은 패션계의 혁명을 일으켰다. 프릴이 달린 화려한 드레스 대신 저지로 만든 스커트와 남성복에서 착안한 활동적인 투피스 혹은 바지를 입은 샤넬은 디자이너이자 걸어 다니는 모델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원래 샤넬이 처음 열었던 것은 모자 가게였다.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쓰던 모자는 화려한 꽃 장식이 달려 매우 아름다웠지만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모자를 쓰고서는 도저히 활동적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모자만이 여성의 모자라고 여겨지던 시절에 샤넬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활동성이 높은 모자를 선보였다. 샤넬의 모자는 아주 독특하고 편해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또한 샤넬은 최초로 핸드백에 줄을 달아 숄더백을 만들었다. 당시 여성용 핸드백에는 끈이 없었다. 외출할 때면 여성의 한 쪽 손은 늘 핸드백에 얽매여야 했으므로 활동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핸드백에 끈을 달자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의 두 손은 자유로워졌다. 이렇게 작지만 매우 독창적인 샤넬의 아이디어는 많은 여성들의 환호를 받았다.
샤넬 패션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샤넬 라인’이다. 샤넬 라인은 무릎을 살짝 덮는 정도의 스커트 길이를 말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여성들의 외출이 더욱 잦아지면서, 치마 길이는 더 이상 길 필요가 없었다. 바닥에 끌리는 긴 치마를 과감하게 무릎까지 끌어올린 사람은 바로 샤넬이었다. 이 파격적인 샤넬의 치마 선은 지금까지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몸에 착 달라붙는 수영복도 샤넬에 의해 처음 개발됐다. 이는 여가시간에 바닷가에 가는 중산층 여성들의 새로운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김윤태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책과함께
출처 : 한 숨 돌리고픈 휴게소...
글쓴이 : 리어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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