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 건축
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는 독일인 안드레아스는 어느 날 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들을 가리키며 저 ‘사무실 건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곁에 있던 한국인 직원은 그건 사무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먼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안드레아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곳에 사람이 산다고요?” 한국인 직원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한국 사람들 중 절반이 저런 집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먼트는 우리 나라의 발명품이 아니라 서양에서 건너온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 건축가들이 시작한 모더니즘 건축운동이 제시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그러나 아파트먼트는 서양에서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좁은 공간에 싼값으로 효율적 건축을 한다는 장접이 있지만, 정원도 없고 답답해 사람 사는 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서민용 임대주택을 아파트먼트로 짓는 경우는 있었어도, 중간계급은 교외에 정원이 딸린 집을 갖고 싶어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천대받는 아파트먼트가 한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아파트먼트를 처음 만들었을까?
모더니즘 건축은 무엇이 다른가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는 건축에도 새로운 영향을 주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 어업, 임업에 종사하면서 도시바깥에 살았다. 그런데 대규모 공장이 도시에 들어서고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노동자가 되면서 새로운 집이 필요해졌다. 공장, 사무실, 창고, 철도시설 등의 건축물이 잇달아 세워졌다. 공업의 발달은 건축 재료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돌이나 벽돌을 사용했지만 철, 유리, 콘크리트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 비용이 절감되고 품질 수준이 높아져 이전과 전혀 다른 건축이 탄생하게 되었다.
건축은 시대의 반영이자 사회적 결과이다. 때문에 건축물은 인간의 의식과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건축양식은 크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구분되는데, 고전주의의 대표적 건축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고전주의는 인간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적이고 이성적 방법을 선호하고, 기하학적 공식을 이용해 건물을 설계하며, 건물은 대칭 구조로 지어진다.
18세기 이후 유럽에 설립된 수많은 교회 건물이 그렇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는 인간이 자연과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기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을 선호하며, 자연적 형태를 가진 건물을 설계하며, 건물은 대칭 구조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뾰족탑과 화려한 장식을 가진 고딕 건축을 재현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의 국회의사당과 독일의 퀼른 성당은 꼽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순수한 고전주의 또는 순수한 낭만주의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두 가지 방식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고전주의 건물이 자연적 형태를 모방하기도 하고, 고딕 성당이 수학 원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현대 건축은 고전주의 양식과 낭만주의 양식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아트 앤드 크래프트(Arts and Cratfs),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된 아르누보(Art Nouveau), 독일에서 시작된 표현주의 등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국의 리버티(Liberty) 상점이나 파리의 메트로(지하철)입구를 보라. 덩굴이나 담쟁이 등 자연에서 모티프를 따온 우아한 장식을 이용한 아르누보 스타일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유럽과 미국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19세기 공학, 바우하우스(Bauhaus), 기능주의 같은 고전주의도 현대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후 낭만주의가 점점 사라졌다. 합리적ㆍ수학적ㆍ기계적 요소가 강해지면서 사각형 건물이 많아지고 아름다운 꽃을 장식한 건물은 사라졌다. 건물의 표면은 기계처럼 단순하게 처리되었다. 건축은 예술가의 손에서 기술자의 손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이러한 건축은 산업사회에 적합한 건축 양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새로운 건축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르코르뷔지에(1887~1965)이다.
르코르뷔지에는 무엇을 바꾸었나
르코르뷔지에는 193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이다. 건축가들은 그를 사제나 예언자, 심지어는 신으로 생각했다. 건축가들은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그가 설계한 프로젝트를 존경하고, 그가 만든 건물을 성지순례하듯 방문했다. 르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신화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안경을 쓰고 옷과 예의범절에 까다로웠던 르코르뷔지에는 1887년 스위스의 라쇼드퐁에서 시계 제작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Édouard Jeanneret). 그러나 그는 20대에 직업상의 가명으로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사용했다가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어쩌면 과거의 전통과 단절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르코르뷔지에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기보다 무술에 관심이 많아 지방의 미술학교에 진학했다. 1908년 열여덟의 나이로 이탈리아에 가서 중세 미술의 아름다움에 빠진 그는 그 후 빈, 파리, 베를린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파리에서는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의 견습공으로 일했고, 베를린에서는 산업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 밑에서 일했다. 그런 다음 파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20년대의 파리는 예술릐 중심지였다. 아방가르드 예술, 큐비즘, 초현실주의가 탄생하고 새로운 예술이 꿈틀거렸다. 파리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순수주의’라는 건축 양식을 창안했다. 이것은 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지속적인 세련미와 산업사회가 대량 생산해낸 자재를 결합시켜 순수하고도 전형적인 형태를 강조하는 양식이었다. 르코르뷔지에는 단지 고전주의를 모방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성, 질서, 세련미라는 보편적인 원칙을 가진 거축을 만들고자 했다.
1923년 르코르뷔지에는 저서《건축을 향하여》에서 “집은 거주를 위한 기계”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 말은 인간의 집은 순수하게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인간에게 집은 자동차 같은 순수한 소비재라고 그는 생각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처럼 대량으로 생산된 집이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사실 르코르뷔지에는 기계의 이미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전통적인 건축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가 설계한 주택은 기계처럼 보였으며 주택의 구성 요소는 기계의 부품처럼 보였다. 그는 전통적인 창틀인 새시와 미닫이문을 하나로 통합하여 단순하고 경제적인 벽문을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발코니를 보라. 우리는 더 이상 문 따로 창문 따로 설계된 집에 살지 않는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사상은 건축뿐 아니라 도시계획으로 확대되었다. 그는 자신만의 이미지로 사회를 디자인하고자 했다. 그의 이상 사회는 개인이 중앙집권적 국가에 순종하는 단정하고 깔끔한 사회이다. 그는 파리처럼 ‘비합리적’인 도시를 싫어했으며, 모든 구역을 ‘합리적’선에 따라 다시 만들고자 했다. 각 구역은 주거ㆍ노동ㆍ휴식ㆍ교육 등 서로 다른 기능을 갖고 있고, 중심부에는 교회와 시청 대신에 주거와 산업을 위한 시설이 자리 잡는 그의 도시는 현대 도시의 대표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르코르뷔지에가 꿈꾸던 대량 생산된 주택은 프랑스에서 구현되지는 못했다. 프랑스 정부는 주택 건설을 통제했으며, 파리는 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이었다. 르코르뷔지에는 할 수 없이 파리의 외곽에 부자들을 위한 집을 설계했다. 하지만 이 집들은 그가 생각한 ‘기계와 같은 집’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르코르뷔지에는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는 모든 서비스 기능을 갖추고 있는 거대한 슬라브 또는 유니테(Unites)라는 주택을 고안했다. 이 새로운 실험은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사회당이 지방 정부를 장악하고 있었던 마르세유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사회당이 지방 정부를 장악하고 있었던 마르세유는 노동자들을 위한 거대한 주택단지를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일자리를 찾아 밀려드는 사람들이 거주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값싼 재료로 주택을 대량 생산하려는 건설업체의 요구와 값싼 가격으로 실용적인 집을 가지려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서로 맞아 떨어졌다.
드디어 1952년 르코르뷔지에는 마르세유에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이라는 거대한 고층 아파트먼트를 완성했다. 단일 건물 속에 337세대의 주거 공간과 시장ㆍ호텔ㆍ유치원ㆍ옥상정원 등의 공동 공간을 담았다. 1,800여 명의 거주자들이 하나의 건물에서 생활하는 이 아파트먼트는 거대한 다리 위에 철근 콘크리트로 세워졌으며, 한 층에 두 가구 이상이 사는 메조네트(maisonette) 형태로 끝부분은 텅 비어 있고 지붕은 공동 휴식장소였다.
유니테 다비시타옹은 르코르뷔지에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거 형태의 대표 작품이었으며, 오늘날 건축가들은 이를 기념비적 건축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거주 비용이 많이 들었으며, 생활하기에 불편하고, 그곳에 살기로 했던 노동자들의 요구와도 거리가 있었다. 설계자의 요구에는 맞았지만, 저렴한 비용에 편리하게 살고 싶어하는 거주자의 요구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김윤태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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