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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교육사상 - 禮와 樂과 詩의 敎育

지식창고지기 2010. 3. 27. 19:52

공자의 교육사상 - 禮와 樂과 詩의 敎育



공자의 시대에 교과목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다면 육예(六藝)를 들 수가 있다. 서(書), 수(數), 어(御), 사(射), 예(禮), 악(樂) 등이 그것이다. 공자도 군자는 모름지기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며 육예(六藝)를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다.(술이 6) 글씨쓰고(書) 수리공부(數)를 하는 것은 당시의 귀족의 자녀들이 배워야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활쏘기(射)와 말타기(御)는 제외하였다. 본래 이 두 가지는 전쟁시에 필요한 것이었기는 하지만 단순히 그런 목적으로만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오늘의 체육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예의와 절도를 배운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공자 자신도 활쏘기를 언급하면서 예의를 말한 바 있고(팔일 7) 제자들도 말타기를 했다. 공자가 그 두 가지를 배격했다기보다는 단지 자신이 제자를 교육할 때의 실질적 내용으로 삼지는 않았을 뿐이다. 대신에 공자는 시의 교육적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관심의 상대적 전환은 종래의 세습적 혹은 군사적 귀족주의의 사고에서 문사적 혹은 도덕적 귀족주의의 사고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예(禮)와 악(樂)과 시(詩)는 다소 심오한 것으로 고급 수준에서 가르쳐졌다. 이 교과들은 절제와 조화의 도야를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성정(性情)을 균형있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서 공자가 교육에서 가장 중시한 부분이다.

"예(禮)"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를 물으면, 우리는 "예의" 혹은 "예절"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공자 시대에 사용된 "예"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넓다는 뜻은 예가 종교적 의식과 사회적 관습의 일체, 그리고 도덕적 규범을 총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좁다는 뜻은 인간의 행실과 태도 등에 적용되는 행동적 규범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예"(禮)라는 글자의 상형적 구조는 제사(祭祀)의 기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그 본래의 의미는 종교적 의식과 절차인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후에 그 의미는 점차로 확대되었다.

예컨대, 여섯 가지의 의례(儀禮), 즉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향례(鄕禮), 상견례(相見禮) 등의 관습에서 "예"라는 말이 쓰인다. 본래 고대 중국에서는 부모에 대한 제사를 비롯하여 의식이 반드시 성직자에 의해서 집행되지 않았고 가정의 가장도 의식을 주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식과 세속적 의식은 확연히 구분되지 않았다. 예의 의미가 반드시 종교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예는 점차로 사회일반의 관습과 풍속으로 지켜지는 의식이나 절차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예의 넓은 의미는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도덕적 규범의 모두를 포괄한다.

공자의 예는 법률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의 기율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예는 미연(未然)에 금하는 것이며 법은 기연(旣然)에 금하는 것이다."(大戴禮記 경해편) 도리에 합치고 행위의 표준이 되고 도덕적 습관을 양성하고 사회의 치안을 증진시킬 수 있는 규범의 모두가 예에 속한다. (호적 151) 공자의 예는 인이 실천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를 행함이 곧 예이다. 단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 예를 행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 올 것이므로 인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안연1) 인이란 마음의 자세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하고, 그것이 실천된다는 것은 세련된 품행을 통하여 나타내어지는 예의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은 인격의 내면적 바탕이요 근원이라면 예는 그것이 밖으로 나타내어진 모습이며 군자의 품위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예는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균형을 이룬 교양인의 세련된 품행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두렵기만 하며, 용감하되 예가 없으면 난폭하기만 하고, 솔직하되 예가 없으면 경직되기만 할 뿐이다." (태백 2)

그러나 공자의 예는 외양적 갖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지키면서 공경스럽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팔일 26) 본래 당시의 귀족들이 지켜야 하는 행동의 형식적 규범이 얼마나 엄격하였던가는 우리가 [예기(禮記)]에 쓰인 행실의 도리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 한 가지만을 보면 이런 것이 있다.

무릇 손님을 인도해 들어가는 이는 문마다에서 손님에게 먼저 드시라고 하면서 사양한다. 손님이 침실의 문에 이르면 주인이 손님에게 말하고 들어가 자리를 편 뒤에 나와서 손님을 맞아들인다. 손님이 주인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굳이 사양한다면 주인이 앞에서 손님을 인도하여 들어간다.

주인은 문안에 들어가서 오른 쪽으로 가고, 손님은 문안에 들어가서 왼쪽으로 간다.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손님은 서쪽 계단으로 향한다. 손님이 만약 주인보다 지위가 낮으면 주인이 오르내리는 계단의 동쪽을 향하여 간다. 주인이 굳이 사양하면 손님이 다시 서쪽 계단으로 간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먼저 올라가기를 사양하다가 주인이 먼저 올라가면 손님이 뒤따라 올라가는 데 한 계단마다 두 발을 모아가면서 걸음을 이어 올라간다. 동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에는 오른쪽 발을 먼저 내고 서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에는 왼쪽 발을 먼저 낸다.

장막과 주렴 밖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마루 위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옥(玉)을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마루 위에서는 발자취를 서로 붙이고, 마루 아래서는 서로 떨어지게 걷는다. 방 안에서는 팔을 벌리고 빨리 걷지 않는다.

남과 나란히 앉을 때에는 팔을 옆으로 벌리지 않으며, 서 있는 이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꿇어 앉으며, 앉은 이에게 줄 때에는 서서 주지 않는다. ([예기] 상, 곡예 상 44)

물론 이러한 세련된 행동은 마음 속의 인을 예의 형식으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공자에게서 인과 예는 군자의 양면적 자질이다. 그러나 형식적 규범의 세련성은 겉보기에만 좋을 뿐 실제로 마음은 공허한 것일 수가 있다. 유교의 관습은 후일에 그러한 특징을 보이기도 하였다.

공자의 예는 세련된 균형과 절도를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균형과 절도는 성정의 개념이 요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자가 음악의 교육적 중요성을 든 이유가 있다. 음악이 여러 가지의 의식에서 연주된다는 것은 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이 균형과 절도와 조화의 질서를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의 음악은 예악으로서 예(의식)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음악을 직접 가르쳤다는 기록은 없으나, 남과 함께 노래 부를 때 그가 잘하면 반드시 다시 시킨 후에 이와 함께 불렀고,(술이 31) 예악은 도덕적 정서를 함양하고 군자가 배워야 할 중요한 것으로 언급한 것은 여러 군데 있다. 공자가 노(魯) 나라의 악관에게 한 말이 있다. "음악은 저절로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 연주를 시작하면 음률은 모여서 화음을 이루고, 음률은 각기 맑고 밝게 이어지며, 점차 가경에 이르러 완성된다."

(팔일 23) 당시에 여러 가지의 악기로써 연주되는 음악이 있었던 것 같다.공자는 음악이 예와 도덕에 관련이 있음을 말하였다. "무릇 음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며, 악은 윤리에 통한다. 음을 상세히 살피면 악을 알게 되고 악을 잘 살피면 정치를 알게 된다." 표문태(表文台)는 이 귀절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음은 마음의 표현이고 리듬이다. 악은 인간의 도의심과 통한다. 인생의 도가 여기에 표시되어 있으므로 악을 잘 터득하면 정치의 이치를 알게 된다. 그것은 정치도 천리(天理), 즉 인간의 보편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표문태 주해, [논어], 서울: 현암사, 1966, 258)

시(詩)는 육예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공자는 그 교육적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는 감흥을 일으키며,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하며, 그릇됨을 원망할 줄 알게 하고, 가까히는 어버이 섬김을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임금 섬기는 바탕이 되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하기도 한다."(양화 9) 그는 "시로써 일어나서 예로써 서며 악으로써 완성한다"(태백 8)고 하였다. 이 말은 시에 의해서 정서를 북돋우고 예에 의해서 품위를 세우며 악을 통하여 군자의 에서 도덕을 완성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시와 예의 관계는 인의 도리에 따른 정조를 일으켜 예로 표현되게 하는 데 있어서 시가 정서를 순화하고 성정을 가다듬고, 희노애락의 감정이 중(中)을 유지하면서 화(和)를 이루는 것, 즉 중용의 덕을 성취하는 마음을 형성시킨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음악과 예의 관계는 예가 그 의미와 질서를 따라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실천된 극치의 상황에 있게 한다.

시는 고대의 문학이며 문학은 오직 시 뿐이었다. 공자는 시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다고 믿었다. 그는 시경 3백편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에 간사한 생각을 없게 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위정 2) 그리고 시경의 "관저"(關雎)에 실린 시는 즐겁되 결코 음탕함에 흐르지 않으며, 슬프되 감상(感傷)에 흐르지 않는다고 하였다.(팔일 20) 이렇듯 시는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인의 정조가 순수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정서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