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교육사상 - 君子敎育論
공자는 중국에서 공부자(孔夫子)라고 불려져 왔고 서양에서 공자를 일컬어 Confucius라고 하는 것도 바로 거기에서 온 표현이다. 그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라고 한다. 그는 기원전 551년에 노(魯)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었으나 관직에 투신하여 50세 때에는 높은 관직에 등용되었다고 한다. 정치적 모략으로 그 직책에서 물러난 후에 13년 동안 그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국을 순방하였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치 못하고 노년에 노 나라에 돌아와 기원전 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의 사상에서 중심되는 개념은 "인"(仁)의 개념이다. 우리는 그 말을 "어질 인"이라고 하듯이 "어질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번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우리말의 "어질다"라는 말은 마음이 너그럽고 인정이 두터우며 덕행이 높은 인격의 특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칼날 같이 분명하고 사물을 보는 눈이 명석하고 지혜로우며 엄격하기만 한 인격의 소유자를 우리는 "어진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감싸주고 매사를 따지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 것이나 용서해 주는 심성의 소유자도 때때로 "어진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질다"는 우리말은 일상적인 용어로서 사용되는 것일 뿐,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밝힐 수 있는 이론적 용어는 아니다. 국어 사전에 그 뜻을 진술하고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儒學)에서, 공자가 말한 "인"의 개념을 "어질다"의 말이 지니는 의미만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물론, 공자가 사용한 인의 개념에는 우리 말의 "어질다"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반드시 표현하도록 강요한다면 "어질다"의 말 이외에 또 다른 무슨 표현이 있겠는가?
대부분의 이론적 용어들이 그렇지만 인의 개념도 공자가 그 말을 사용할 당시에는 그 자체로서 일상적 용어에 불과하였고 체계적인 의미를 지닌 이론적 용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자가 그 말을 자신의 사상과 교육을 가르칠 때 기본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인간의 행위와 사회의 제도를 설명하는 이론적 용어로서의 힘을 지니게 되었고, 또한 후대의 사람들이 그 개념을 다른 개념들과 관련시켜 해설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의미의 함축성이 매우 크게 된 것이다."인"이라는 말의 상형적(象形的) 구조로 보아 그것은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을 나타내고, 확대해서 해석하면 인류의 공통된 속성이며 인간을 다른 모든 동물로부터 구별짓는 특징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서양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인간의 핵심적 본질로 규정하고 그것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다하는 것으로 본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성의 핵심적 본질이라고 하였다. 완전히 그것을 꽃피우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삶의 과업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은 지식과 지혜라는 가치를 획득하는 기관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특징을 기능적 능력으로 한정한 데 비하여 공자의 인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기능적 특징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삶을 통하여 실현시켜야 할 원리(혹은 도)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성이 작용한다"는 말은 옳으나 이성을 실현한다는 말은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이 작용한다"는 말도 가능하고 "인을 실현한다"는 말도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는 다소 암시된다.
그러므로 공자의 경우에 인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생활은 어떤 다른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며, 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쾌락, 재산, 명성, 권력 따위의 모든 다른 가치들은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 때로는 버려야 한다. 그러나 공자는 인을 추상적 능력이나 이념으로 이해하거나 논리적-개념적 분석을 통하여 그 뜻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이 관념적인 이해나 관조적 대상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체득될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제자에 따라서 인을 실천하는 과제를 달리 말하였다.
제자들이 인에 관해서 질문했을 때, 공자는 인의 개념을 정의한다든가, 아니면 한 마디로 인을 밝힌 일이 없다. 어떤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을 언급하면서 거기에 인이 담겨 있다고 말할 뿐이었다. 번지(樊遲)가 인을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평소에 일이 없이 한가로히 있을 때도 공손한 태도를 가지고, 일에 임하였을 때도 경건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충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비록 오랑캐의 나라로 갈지언정 이 세 가지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논어, 자로 19) 그러나, 사마우(司馬牛)가 인을 물었을 때 "인자는 말함을 어려워 한다"고 하고 "행함이 어렵거늘 어찌 말함이 어렵지 않겠느냐?"(논어, 안연 3)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장(子張)에게는 또 이렇게 대답하였다. "다섯 가지를 실행하면 그것이 곧 인이다. 공손하고 너그러우며 믿음성있고 민첩하며 은혜를 베푸는 것이 그것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며, 너그러우면 인심을 얻게 되고, 믿음성이 있으면 사람들이 무엇이든 맡길 수 있으며, 민첩하면 공을 이루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의 도움을 저절로 받을 수 있다."(양화 6) 그런가 하면, 중궁(仲弓)에게는 또한 달리 대답하였다. "문을 나서면 몸가짐을 바르게 하되 귀한 손님을 맞는 듯이 하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시킬 때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아니한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리하면 온 나라 백성의 원한이 없고 온 집안 가족의 원망이 없다." (안연 2)
공자가 이와 같이 인을 달리 가르친 것은 제자마다 인에 이르는 실천의 과제가 다르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실천을 통하여 인을 체득하고, 인을 실천하는 생활에서 가장 초보적인 "효"(孝)를 가르쳤다. 효의 실천은 모든 사람들이 인을 체득하여 인격의 완성적 경지에 이르는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공자가 효도를 가르칠 때도 인을 가르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을 언급하면서 가르쳤다. "부친의 생존시는 그 뜻을 다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그 행적을 살펴 3년 동안 부친의 유습을 고치지 않으면 좋은 효자라고 할 수 있다"(학이 11)고 한 것, "요즈음은 봉양함을 일러 효도라고 하나 개와 말도 사람이 기르는 데 공경치 아니하면 무엇이 다르겠느냐?"(위정 6)라고 한 것, 그리고 "어버이 살아 계시거든 멀리 떠나지 말며 부득이 나다녀야 할 경우는 방향을 정해 두어야 한다"든가가 그러하다.
공자는 인을 인간의 핵심적 본질이라고 가르쳤으나 그 개념만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덕"이라든가 "의"라든가의 다른 규범적 개념들도 사용하였다. 그것은 인의 실천적 내용이나 요소, 그리고 인을 실천하는 사람의 특성을 밝히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의 개발은 "대인", 즉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이인 11)고 하였다. 그리고 "군자는 무엇이 의로운가를 이해하지만 소인은 무엇이 유익한가를 안다"(이인 16)고 하였다.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군자"(君子)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군자"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임금의 아들"이지만 본래 그 말은 보통 당시의 봉건제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라는 말을 도덕이나 학문 혹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군자는 "가르치는 데 있어서 구별이 없다"(유교무류)고 하여 교육의 평등을 주장한 사람으로 기술되기도 하나 그것은 신분상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뜻으로 이해될 수는 있으나, "하나를 가르쳐 열을 깨우치지 못하면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능력적 차등주의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선천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양화 3) 중인 이상은 심오한 학리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중인 이하는 그럴 수 없다(계씨 9)고 하였다. "저절로 도리를 아는 자는 상급에 속하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며, 곤난을 당한 뒤에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고, 모르면서 배우지 아니하면 우민으로서 그 아래에 속한다."(계씨 9) 그러나, 공자가 학리를 익히고 배움을 통하여 안다는 것은 사물의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원리, 즉 인의 도리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인의 도를 실천하여 성인이 되어야 하지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범용한 인간이 수양과 공부를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을 "군자"라고 한 것이다. 공자는 "성인은 만나 볼 수 없고, 군자라도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술이 25)고 말하기도 하였다. 군자의 기본적인 자질은 인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는 "군자가 인을 버리면 어찌 군자라고 하겠는가?"(이인 5)고 하였다.
공자는 군자의 도로서 인을 가르칠 때 비록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을 언급하였지만, 거기에는 회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암시한 바가 있다. 그것은 공자가 증자(曾子)와의 대화에서 암시된 것이다. 공자는 "삼(參: 증자)아, 나의 도는 하나의 원리로 회통하고 있다"(一以貫之)고 하자, 증자는 "예"라고 답하였다. 공자가 나간 후에 제자들이 증자에게 묻자,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따름이다"(이인 15)라고 하였다. 충서에 대하여 주자(朱子)는 해석하기를 자기가 바라는 것을 미루어 타인이 바라는 것을 아는 것을 "충"이라고 하고, 자기가 원치않은 것을 미루어 타인이 원치않는 것을 아는 것을 "서"라고 하였다. 충(忠)은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인을 실천할 때 남을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것"(옹야)을 것이 충이다. 이에 비하여 서(恕)는 소극적인 개념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충서의 적극적인 면을 [중용](中庸)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 자기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며, 자기가 신하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며, 자기의 아우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형을 섬기며, 벗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먼저 벗들에게 베풀어 주어라.(중용)
그리고 충서의 소극적인 면을 후대 유가의 학자들이 "혈구(潔矩)의 도"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귀절이 [대학](大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윗사람으로서 싫어하는 것을 아랫사람이라고 하여 시키지 말 것이며 아랫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여 위사람을 섬길 때 하는 법이 아니다. 그리고 앞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앞서 있다고 해서 뒷사람에게 그것을 쓰지 말 것이며 뒷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앞사람을 쫓는 위치에 있다고 하여 그것을 쓰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왼쪽 사람에게 주고 받지 말 것이며 왼쪽 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오른 쪽 사람에게 주고 받지 않는 법이다.
이것을 혈구의 도라고 한다. ([대학] 10)
공자의 교육목표는 실천적인 것이었다. "실천적"이라는 말은 좁게 이해될 수도 있고 넓게 이해될 수도 있다. 좁게 이해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결과 직접적으로 실제의 생활에 반영되어 어떤 유용성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식을 배워 관직을 얻는다든가 기술을 익혀 직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관리나 기술자를 양성하여 충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게 이해하면 고도로 이념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요구와는 무관하게 고답적인 이론이나 사상을 배우고 거기에 전념함으로써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 구체적인 현실에 초연함을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삶을 영위하고나 사회적 제도를 운영하는 원리에 관심을 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경우에 이론이나 사상은 그 자체에 가치 혹은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 보다 나은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 수단이나 방법이 된다는 것으로 수용될 뿐이다. 공자의 교육이 "실천적"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의 것이다.
공자가 교육의 사회적 목적을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같이 기술적으로 유능한 관료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교육받은 인간"의 모습, 즉 군자로서의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은 물론 인을 소유한 인간이지만 더욱 완전하게 표현하면 지혜(知)와 인의(仁)와 용기(勇)의 덕을 균형있게 갖춘 사람이다.(헌문 30)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과업, 즉 학문(文)을 닦고 실천(行)을 중시하며 충의(忠)를 다하고 신의(信)를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술이 24) 그러나 공자가 그러한 덕목과 과업을 교육적으로 중시한 것은 그것들이 개인으로서 성공적인 정치적 생애를 살 수 있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교육을 받은 군자들이 통치에 종사할 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학자를 양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교양인으로서 정치에 종사할 지도자를 기르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가 일차적으로 가르치고자 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들면 효도하고(入則孝),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공손의 정의(情誼)를 다하며(出則弟), 근신하여 신의를 지키고, 넓게 여러 사람을 사랑하며, 어진이를 가까히 하라.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학이 6)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전적으로 비형식적인 것이었다. 물론, 수업이나 시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을 상대로 하여 대화하였고 때로는 질문을 하고 생각할 문제를 던져 주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가 가르치는 방법은 대상에 따라서 달랐다.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대상에 따라서 다르다.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옳은 것을 배웠으면 곧 행하여야 합니까?"고 물은 즉, 공자는 "부모와 형제가 계신데 왜 여쭈어 보지 않고 행할 것인가?"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염유(苒有)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공자는 "들은 대로 어서 행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염유가 무엇을 행하고자 할 때 언제나 주저함이 있고 자로는 오히려 행함에 지나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잘못에 벌하거나 무엇을 강제하기보다는 옳게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권유하는 방법르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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