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근대, 현대 음악
역사적배경 :
과학의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는 인류의 역사에 일대 변혁을 야기시켰다. 특히 그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수많은 발명과 고안이 이루어졌다. 교통과 전파 매체의 발달로 세계는 더욱 작게 만들어져서 오늘의 새로운 창조를 그 이튿날에는 이미 옛 것이 되게 함으로서, 인류사에 끊임없는 창조의 불길을 질렀던 것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보급은 이것을 더 빠르게 진행시켰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미(美)에 대한 인간의 감각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표준적인 심미관(審美觀)이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20세기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들의 공존을 보여 준다. 또한 20세기 초반의 음악에 있어서 민속음악은 음악적인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존재하여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민요와 춤곡을 인용하는 등 민속음악을 전통예술음악에 흡수시키는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였고 그리하여 음악에서의 민족적 차이가 여전히 유지되었다. 녹음장치의 발달로 민속음악을 손쉽고 정확하게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종족음악 이론에 따라 객관적으로 분석되었다
음악적특징 :
20세기 음악은 민속음악이 한 부류를 이루었는데 과학적으로 연구한 초기의 인물은 레오 야나체크(Leos Janacek ,1854 - 1928))였고, 뒤이어 헝가리의 코다이(헝가리어: Zoltán Kodály, 영어 Zoltán Kodály,1882∼1967)와 바르토크(Bela Viktor Janos Bartok 1881~1945)가 중부 유럽의 민속음악을 광범위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들의 민속어법에 대한 연구로 말미암아 민요에 나타나는 선법, 5음음계, 색다른 음계들을 이용한 확대된 조성 등 새로운 음악양식이 발생하였다.
야나첵(Leos Janacek)
코다이
바르톡
또한 20세기는 새 음악 (독. Neue Musik, 라. Musica nova, 동시대음악 Contemporary Music, 현대음악 Modern Music, 전위음악 Anant-grade)의 시대이다.
새로운 음악이란 말은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거와의 단절이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는데, 이는 조성의 포기(쇤베르크)와 모든 전통적인 '음악' '작품'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일(존케이지)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의 음악, 다른 민족들의 음악, 이런 모든 음악들의 자료가 음반과 녹음기의 발명으로 쉽게 들을 수 있어 모든 음악과 예술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거기에다 전제정치와 제 1,2차 세계대전에 의한 공포와 재난, 인류전멸의 위험, 경제 대공황, 빈부격차, 빈국과 부국의 대립, 동서대립에 의한 긴장상태, 말세론적 위기감,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 공상과학세계 등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학문명과 사회의 갖가지 불안감 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가치 기준과 의식 상태가 변화하게 되고 또한 이와 함께 미(美)의 개념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현대음악의 특징인 다원주의와 불협화음은 통일된 세계상의 결핍, 인간과 자연의 조화상실, 인간의 내적 부조화를 증거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의 하나가 음악이라는 과거의 미적 작고고 원칙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이제 음악이 무조건적으로 '아름답다'든지 조화스러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진실'해야 하기 때문에 추(醜)할 수도 있다. '음악'과 '음악예술작품'의 개념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20세기의 음악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현상들을 관철시켜, 이것이 옛 음악관과 함께 병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새로운 현상들에는 신고전주의와 같은 보편적 양식도 있고, 수많은 개성적 해결 방안의 것들도 있다. 다양성은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악파, 지향성, 유행성, 모델은 점차 빠르게 변화하여 지속성을 띠지 못한다. 보편적인 구분, 즉 기악과 성악, 오페라, 교향곡, 소나타 등의 구분이 20세기에는 더욱 명확한 것이 못된다. 예외와 혼합, 그리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서양음악이 이국적 요소를 도입하는데 그쳤으나, 20세기는 이국의 문화와 음악으로부터 서양음악의 존립과 표현을 위한 내적 자극을 찾으려고 한다. 특히 인도를 비롯한 동양음악은 높은 정신성과 섬세한 음악 전통으로 매력적 자극제가 되고 있다. 작곡가들은 새로운 것을 연주 기술면에서도 찾았다. 이제까지의 악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기본사고에 따라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서 해당 악기의 원래 목적을 크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악기를 구입하거나 제작하여 사용하거나 새로운 악기를 발명하기도 하여 새로운 음향을 찾는다.
또한 후기 낭만의 1850년 이후 리스트와 바그너의 작품에서 조성(調性, Tonality)은 더욱 애매해져 무조적인 경향으로 점차 나아갔다. 1890년경을 낭만주의 음악의 해체로 보고 있는데 그 후 그 유산을 풍부하게 받으면서 또는 그 반동으로 새 양식이 대두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문학과 회화 등 자매예술과의 영향도 많이 나타난다.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음악
프랑스의 드뷔시(Achille-Claude Debussy,1862 ~ 1918)가 창안한 인상주의 음악은 낭만주의에서 현대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악파이다. 이 음악은 프랑스의 인상파의 회화와 상징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인상파 회화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중시하는 야외 회화를 주장하였고, 형태를 그리는 선보다는 색채와 분위기적 인상을 중시하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와 흡사하여 선율이나 형식의 명확성 대신에 감정을 강조하는 색채적 음악을 썼다. 자연계의 여러 가지 현상,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예술가가 받은 순간적인 감응이며 응답이다. 그러므로 인상이란 외계의 묘사가 아니라 한번 마음에 자극된 내적인 인상을 결국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의 다이내믹한 감동보다는 음빛깔, 뉘앙스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한다. 기법상으로는 화음진행이 색채적이고, 연속적인 불협화음과 선법, 5음음계등 예외적인 음계 등을 사용하였다.
드뷔시는 1892년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e, 1842∼1898)의 상징시에 작곡한 《목신의 오후에서의 전주곡》으로 인상주의 수법을 확립시켰다. 그 외에도 관현악 작품《녹턴집, Nocturnes》《영상 Imagine》《바다 La Mer》가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품들이고, 팔랴(M, Falla)의 《스페인 정원에서의 밤들》과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의 《로마의 소나무》등이 있다.
드뷔시
말라르메
레스피기
원시주의(Primitivism)
19세기말 극도의 문화적인 성숙에 따른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동경에서 온 것이다. 이국적인 제재를 음악에 도입하여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 하였다. 원시음악은 당시 음악의 지나치게 세련된 연약한 음악에 대해서 원시 예술의 힘찬 원기를 되찾아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음악이라 하겠다. 기법상으로는 일정한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거나 홀수박자 또는 폴리리듬(Polyrhythm)등을 사용하였고 강하고 자극적인 색채 감각 등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1882∼1971)로서 그의 3대 발레인《불새,L'
스트라빈스키
표현주의(expression!ism)
20세기 초반에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9.13 – 1951.7.13)를 중심으로 주로 비엔나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외적인 형태의 표현으로서의 인상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내면적인, 특히 잠재의식적인 일면을 표현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치정세는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어 유럽사회는 불안에 차고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웠으며 정신은 안정을 잃고 있었다. 쇤베르크 등의 작곡가들은 고착된 표피성, 이중윤리, 순응주의, 허구적 달콤함으로 특징이 지워진 시민사회를 거부하고 도전적인 진실, 깨어 있는 감수성, 불편함까지도 감수하는 철저함을 추구한다.
표현주의는 극단성, 대조성, 거의 광란에 가까운 격정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후 이러한 극단적인 것은 새로운 음악의 본질이 되어 고전적 균형을 철저히 기피하게 된다. 표현주의 기법의 특징은 철저히 주관적이고, 멜로디는 무조(無調, Atonality)이고 화성은 극단적인 불협화음, 거칠게 연주되는 악기들의 음색대조 등을 들 수 있다. 표현주의 작품으로는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Op. 21)》와 교향시곡《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et Melisande》등을 들 수 있다.
쇤베르크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신고전주의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주관적인 정서의 과잉, 방대한 관현악의 편성, 표제음악적인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등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신고전주의는 객관성과 형식성을 보이는 낭만주의 이전의 음악관념으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18세기 고전주의 양식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고전주의의 기본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이전의 간결한 형식미를 추구하지만 예기치 않은 전조, 선율의 혼합, 그리고 강렬한 화성, 불협화음 등의 20세기 성향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풀치넬라,Pulcinella》, 《피아노와 목관악기를 위한 협주곡》, 《시편 교향곡, Symphonie de psaumes 》,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4개의 협주곡 op.36》, 그리고 프로코피에프(Sergei Sergeyevich Prokofiev (러시아 : Сергей Сергевич Прокофьев,1891-1953)의 오페라《3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 The Love for Three Oranges》,《피아노 협주곡》,《고전 교향곡》등이 있다.
바르토크(Bela Viktor Janos Bartok 1881~1945)는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 어법으로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그는 민족적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간주할 수 있는데, 대표적 작품으로는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현악기,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등이 있다.
힌데미트 Paul Hindemith
프로코피에프
Bela Bartok
12음 주의(Dodacaphonism)
12음기법으로 작곡한 음악을 12음음악이라 하는데 이는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가 종래의 조성 음악에서 벗어나 철저한 무조성의 체계화를 시도하여 창조한 것이다. 이 기법은 한 옥타브 안에 있는 반음을 포함한 12개의 서로 다른 음을 1회식 일정한 순서에 따라 사용하는 것인데 먼저 세리(Serie)라고 하는 음렬(音列, Tonreihe)을 만들어 이 세리를 역행, 전위, 역행전위 등으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전통음악의 음조직을 해체하고 12개의 음을 모두 평등한 가치로서 독립시켜 새로운 음의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장대한 곡에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음악은 쇤베르크의 제자 베베른(Anton von Webern, 1883-1945)과 베르크(Alban Maria Johannes Berg, 1885 - 1935)에 의해서 계승되었고 제2차 대전 후에는 여러나라에 보급되어 더욱 새로운 발전을 보였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쇤베르크의《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op.31》, 오페라《모세와 아론》, 베르크의《바이올린, 피아노, 13개의 관악기를 위한 실내합주곡》, 베베른 작품《칸타타 No.I, op.29)등이 있다.
베베른
베르크
신 즉물주의(Neue Suchlichkiet, 新卽物主義)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을 철저히 하려는 것으로 표현주의에의 반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표현주의가 강한 주관성에 기초하고 있는데 대하여, 신 즉물주의는 대상물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정확하나 묘사를 의도하는 예술운동으로서, 다분히 실용성이 인정되는 운동이었다. 특별한 경우와 목적을 위해 작곡되어 청중과 연주가의 거리감을 좁혀서 음악적인 이해를 보다 쉽게 하려는데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전위적 기법보다는 단순한 자료를 사용한다. 힌데미트(P. Hindemith) 의 《플린의 음악제》, 《우리는 도시를 세운다》, 영국왕 조지5세가 서거하였을 때 작곡한 《장송곡》이 있다.
1945년 이후의 음악 :
1945년에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지금까지 폐쇄되었던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길은 다시 열리게 되었다. 그런 제대로 궤도에 올라 새로운 양식의 예술 활동이 나타나기는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에는 반낭만적인 사조가 강한데 비해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메시앙과 같이 르네상스와 주세기의 기교의 부활을 꾀하는 작곡 활동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는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양식과 기법에 의한 1950년대부터의 새로운 음악을 좁은 의미에서 아방가르드(Avant-grade,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具體音樂)
1948년에 프랑스의 파리 방송국에서 쉐퍼(Pierre Shaeffer, 1910∼1984)가 처음 시도한 이후 1950년 파리에서 최초의 음악회를 가졌던 새로운 표현 방법이다. 이것은 악보에 음을 적는 대신에 음악이나 말을 직접 녹음시켜서 연주한다. 문닫는 소리, 자동차 소음, 병따는 소리 등 현실에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음향을 녹음하여 테이프에 담고 편집한다. 녹음한 것들을 서로 겹치게 하거나 테이프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테이프 레코더 음악(Tape Recorder Music)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체음악은 착상부재가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은 후 전자음악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c, 電子音樂)
최초의 전자음악 스튜디오는 1951년 쾰른의 북서 독일 방송국에 설치되었는데 그 책임자는 아이메르트(Herbert Eimert, 1897∼1972)였고, 이어 밀라노, 파리, 미국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전자 기술적으로 확성시키기만 하는 음악은 여기에 속하지 않고 전자로 만들어낸 음향이나 작품만을 전자음악이라 한다. 이 음악은 구체음악처런 전자음향 발전기를 통하여 만들어진 소리를 녹음 테이프에 집어넣고, 그 테이프를 편집하여 얻어진 소재로 구성된다. 발음기로 나온 순음을 겹치게 하고, 뛰게 하고, 메아리지게 동시적으로 울리게 하는 등의 여러 방법으로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저자음악과 일반적 소음을 결합시키기도 하고 준비된 녹음 테이프와 연주자가 같이 연주하기도 한다. 이것은 1960년대의 신디사이저(Electronic Music Synthesizer)의 등장으로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전자음악을 행하고, 후에 재결합하고, 혼합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발전하여 새로운 전자 음악의 시대로 가고 있다.
전자음악은 아이메르트와 베이어(Robert Beyer)등이 시작했으나 전자음악의 권위자는 스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으로는 《전자음악》,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콘카테(Konkate)》, 《소년의 노래》등이 있다.
Herbert Eimert
Karlheinz Stockhausen
Moog electronic sound synthesizer
우연성의 음악(Music of Chance Operation, 偶然性)
불정확성 음악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통적 음악 개념으로는 음악이라고 보기 어려운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아방가르드이다. 이 음악은 일정한 법칙이나 제한이 없다. 작곡가는 기존하는 음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련의 기호 같은 음표를 대신하기도 한다. 연주자는 작곡자의 의도를 자유롭게 이해하고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물론 연주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고 작품은 녹음을 해야만 보존될 수 있다.
미국의 존 케이지(John Cage, 1912∼)와 스토크하우젠은 우연성 음악을 많이 실행하였다. 존 케이지의 《상상적인 풍경화, op.4)는 12개의 라디오를 각각 다른 주파수에 맞춰 놓고 두 사람의 연주자가 나와 주파수와 음량을 조절한다. 1954년에 발표한 그의 작품 피아노곡《4분 33초》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악기 앞에 앉은 채로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피아노 뚜껑을 닫고 퇴장한다. 말하자면 그 시간이 들려오는 잡음이라든가 듣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 고동소리 그 모두가 다 음악이라는 것이다. 스토크하우젠의 작품 《피아노곡 11번》은 19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6가지의 다른 빠르기와 강약, 여러 가지 스타카토와 레가토 등으로 순서 없이 연주한다.
존 케이지
타악기를 위한 작품《싸이클》에서는 악보가 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자는 어느 방향에서 시작해도 결국 시작 지점으로 오게 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12음기법 음악과 같이 너무나 치밀한 작곡법에 대한 반발과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세계 정세의 불안과 긴장의 연속 등에 기인하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관현악의 어떤 파트에 대하여 대략 지시만 해주고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작곡법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재료, 테크닉, 합리주의가 매력을 상실하고 예술과 음악에 새로운 것에 대한 추진력이 쇠퇴한다. 1950∼1960년대의 고립적 성향 대신에 청중과 공동체에의 접근이 시도된다. 주관적 감정은 나르시즘적 성향까지 띠는 일이 많고, 사회와도 긍정적으로 연결된다. 교향곡, 현악4중주, 오페라 등과 같은 옛 장르들과 기존 장르들의 복합형태가 선호된다. 이 음악들은 1950∼1960년대의 혼란하고 다양성을 보이던 아방가르드 음악처럼 많은 말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음악의 모델은 고전 음악이 아니고 낭만주의 음악에 가깝다. 하지만 다양한 개성은 그대로 존속된다. 항상 좋은 질의 음악은 오늘날도 어떤 프로그램이나 악파를 통해 나오지 않고 작곡가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심 사 > 잡다한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파(낭만주의) 음악 (0) | 2010.04.23 |
---|---|
국민악파(국민주의) (0) | 2010.04.23 |
세계 3대 오케스트라 (0) | 2010.04.23 |
클래식음악의 작품번호 (0) | 2010.04.23 |
베토벤 9번 교향곡에 숨은 일본제국의 야욕 (0) | 2010.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