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파(낭만주의) 음악
역사적배경 :
낭만주의(Romanticism)는 일반적으로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낭만 예술이란 어떠한 시기의 현상이 아니고 여러 형태로 여러 시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아르스 노바(Ars nova, 신예술)는 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 골동품 예술/구예술)와 비교하자면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비교하자면 낭만적이 되고, 19세기는 18세기의 고전주의와 비교하자면 낭만주의적인 것이다.
이렇게 낭만예술은 현실의 시간과 기회를 초월하여 영원한 것을 잡으려 하고 세계의 폭을 넓히고 우주를 통해서 밖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낭만주의는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한 기본적인 지도 이념으로써, 특히 문예분야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중요한 본질은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욕구, 개성의 존중, 자유에의 태도, 또한 새로운 시대 정신에의 동경 등이다.
따라서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존중하던 보편적인 형식과 이상화된 내용을 버리고 신기한 것을 쫓고 통제적인 룰을 벗어나 개성적인 색조를 강화한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로 자기의 음악을 가지고 노래하려는 정신경향, 또한 시나 회화 등 음악 외적인 분야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을 희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은 프랑스대혁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듯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대두된 시기였다. 프랑스대혁명은 특권계급에 대한 일반 시민계급의 반발이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은 18세기의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이른바 계몽주의 사상과 그 문예사조 등에 의해서 양성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계몽주의는 이성에 지나치게 편중하고 전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세기에 들어오자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냉철한 이성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정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것보다는 공상적, 목가적인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먼저 개개인의 인간성을 존중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이 바로 낭만주의인데 예술가들도 자유에 대한 이상과 개인주의 사상에 심취하기에 이르렀고, 음악에 있어서도 역시 낭만적 요소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은 형식성을 중심으로 하여 객관적인 아름다운을 추구한데 대하여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무엇보다도 자기표출이라는 주관성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의 감정을 유일한 실마리로 삼고 있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결과 부유한 자본주위 중산층이 형성되어 청중의 범위가 크게 확산되었고, 이러한 부유 중류계층들은 곧 작곡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곡을 써 나갔다. 청중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연주를 하였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여러 형태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폭넓게 독서했고 음악 이외의 다른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다루는 소재는 다양했다. 그리이스 신화에서부터 전설과 동화, 자연의 경관, 연인의 사랑 등 모든 것이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소재는 다양하고 풍부하게 음악으로 표현되어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음악적 특징 :
음악의 기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혁을 갖게 되어 고전음악시대의 최고의 이상형식이던 소나타를 대담하게 변형시키거나 포기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유동적인 형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단일악장의 환상적인 소품 형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 선율은 고전음악 시대처럼 마디 수가 배수로 구성되는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것이 많아지고 당김 음이라든가 잇단음표 등을 자주 사용해서 다채로운 변화와 표현의 폭을 넓히고 그 음역도 확대하고 때로는 비성가적인 음정도 서슴치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리듬도 자유롭게 되어 복잡한 겹리듬을 자주 쓰게 되었고, 화성도 3화음을 원칙으로 하기는 했으나 보다 자유롭고 변화를 가져와 불협화음을 자주 사용하고 대담한 조바꿈을 하게 되었다. 또한 관현악 편성도 다양하게 확대되어 새로운 음색을 모색하게 되었고, 편성도 대대적인 편성으로 압도적인 음향을 요구하게 되었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 이상의 질서, 균형, 조절등에 대립하여 자유, 열정, 그리고 얻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즐겨하였다. 그리고 고전적인 분명성은 의도적인 애매성과 대치되고 암시에 의한 언급,은유,혹은 상징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 또한 시나 회화 등 음악 외적인 분야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을 희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초기낭만파 :
19세기에 이르자 유럽에는 근대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또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상과 감정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보편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 이지와 사고보다는 상상에 의한 것,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과 사상 등에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경향은 음악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가곡에서는 슈베르트에 의해 시와 음악이 밀접하게 결부된 '리트(lied)라는 새로운 표현 형식이 확립되었고, 고전적 형식에 벗어나 즉흥곡 · 랩소디 · 무언가 등의 자유로운 형식에 의한 기악 소곡이 작곡되었다.
또한, 음악이 문학과 회화 등의 다른 예술과 결합하게 됨으로써, 이를 소재로 한 서정적이고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교향시가 많이 작곡되는 등 표제 음악이 발전하였다.
초기 낭만파음악은 베토벤의 중기에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18∼1826)가 1821년에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발표하고 모차르트, 베토벤에서 바그너에 이르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는데,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악기에 의한 상징법, 혁신적인 악기사용, 독일의 전설을 소재로 사용하는 등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확고한 지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베버는 오페라 이외의 작품에서도 강한 극적 효과와 다양한 색채적 효과를 거두어 낭만적인 경향을 추구하였다.
Karl Maria Friedrich Ernst von Weber Der Freischütz(마탄의 사수)
Weber - Ouverture "Der Freischütz" - Karajan
예술가곡과 즉흥곡으로써 시정이 흐르는 낭만 정신을 이끌어 들인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600여곡의 가곡 작품에서 그의 끊임없이 샘솟는 선율을 서정시에 붙여, 다양하고 오묘한 화성을 창출하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낭만적인 정감 속에 융합하였다.
교향곡, 실내악곡 그리고 피아노곡 등 그의 모든 작품들은 낭만적 풍취가 넘치는 낭만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Franz Schubert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노래하는 마왕Erlkönig (D328)
중기낭만파 :
낭만의 꽃이 피기 시작한 시기로서 서정적인 작은 형식을 자유롭게 다루며, 자매예술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표현법으로 주관적인 사고로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멘델스존(Felix Jakob Ludwing Mendelssohn-Batholdy, 1809. 2. 3 ~ 1847. 11. 4)은 시의 세계를 피아노에 도입시킨 '무언가의 창시자'로서, 그의 작품은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은 고전적인 전통에 뿌리박고 있으나 《한 여름밤의꿈》,서곡《핑갈의동굴》,교향곡《이탈리아》,《스코틀랜드》등의 표제음악에서 볼 수 있는 회화성은 분명히 낭만적인 꿈과 시(詩)가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멘델스존
Mendelssohn :Symphony No.4 in A, 'Italian', 1st movement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1810∼1856)은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기악곡 등으로 독일 낭만주의를 절정에 끌어올렸다. 특히 그는 피아노 음악에서 서정시와 관계되는 서정성을 밑바탕으로 하여 피아노 페달의 효과적인 사용, 대담한 반음계적 화성, 음형의 다양한 변화 등의 개성적인 표현이 뛰어났다. 그의 가곡은 문학과 음악이 가장 접근된 것으로서 아름다운 선율과 다양한 피아노 반주로 시의 이미지에 의한 내적 융합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슈만
Schumann symphony no.3 Rheinische
피아노의 시인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피아노의 온갖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피아노곡들이 대부분이며, 모두 아름답고 향기가 높다. 그의 작품은 거의 모두가 즉흥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꾸밈음과 템포의 변화, 독특한 장식음의 전개 등을 특색으로 하여 시적으로 표현된다.
쇼팽
Frederic Chopin - Nocturne In E Flat Major, Op.9 No.2
이 시기에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 1868),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 1797∼18480,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68)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프랑스에서도 오페라가 성행했는데, 낭만주의 사조에 의한 낭만적인 정서가 그들의 작품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후기낭만파 :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범위는 넓게는 시기적으로 낭만주의 전반부에 활동한 슈베르트나 베버 이후의 음악에 국한시킬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은 리스트나 바그너의 급진적 음악 양식이 도래한 시기를 기점으로, 좁은 의미에서는 바그너의 음악극이 출현한 1860년대 이후의 독일 음악을 지칭한다.
19세기의 마지막 25년간 유럽 음악가들에게 미친 바그너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이 시기의 말기 낭만주의 음악 어법은 보불전쟁(프러시아와 프랑스간의 전쟁) 이후 통일제국을 이룬 독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언어로 전환되면서 바그너를 추종한 부르크너, 볼프, 말러, R. 슈트라우스에 의해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주도하게 되었다.
또한 낭만파 음악은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면서 더욱 다채로워져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시대의 전반적인 특징은 대규모의 악곡이 많이 작곡되었고, 가극 · 화성법 · 관현악법 등이 급속하게 발달하는 한편, 자유로운 표현에 의한 악곡이 작곡되었다.
이탈리아의 베르디(1813∼1901)와 푸치니(1858∼1924), 프랑스의 비제(1838∼1875)등은 사실주의와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품을 작곡하여 낭만파 오페라는 절정을 이루었고, 독일의 바그너 (1813∼ 1883) 에 의해 음악에 극 · 미술 등이 종합된 악극이 창시되었다.
또 말러(1860∼1911)·브루크너(1824∼1896)·R .슈트라우스(18641∼1949) 등에 의해 교향시와 교향곡은 더욱 새로운 경지로 발달하였다. 브람스(1833∼1897)는 지나친 표제적 경향을 피하여 고전적 형식을 계승함으로써 신고전파의 음악을 낳았으며, 생상스(1835∼1921)는 프랑스의 독자적인 음악 문화를 쌓으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차이코프스키는 국민악파 음악의 특징인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음악을 작곡하면서도 보편적이고 세계성을 띤 음악을 작곡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색채의 음향을 창출하였다.
이 시기 음악에서는 보다 풍부한 음향과 색채가 추구되어, 각 악기의 음색을 살린 다양한 악기 편성이 시도되었고, 반음계 진행과 안어울림 화음이 많이 쓰이는 등의 새로운 작곡 기법이 사용되었다. 즉 무조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금관 악기가 현대식으로 개량되어 플루트 · 트럼펫 · 코넷 등의 악기에 밸브가 부착되었으며, 연주 기술은 고도의 기교를 요하게 되었다.
후기 낭만파 또는 신 낭만파라고도 하는데 이 시기는 낭만주의 음악이 결실을 맺는 시대이며 또는 새로운 음악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기운이 있는 시대라 하겠다.
이 시대에는 표제음악의 발달과 함께 교향시, 악극(Music Drama)이 창시되었고, 관현악이 발달하였으며 오페라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또한 말기에는 무조(撫棗, Atona)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최초의 작곡자는 이탈리아의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이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 새로운 기교를 연주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으며 그의 신기에 가까운다채로운 표현을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파가니니
프랑스의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환상교향곡》을 발표하여 관현악에 새로운 효과를 시도하여 표제음악을 완성하였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고정관념(Idee Fixe)이란 것을 창안하여 음악의 줄거리 진행에 있어서 특정한 모티브로서 주인공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베를리오즈는 관현악의 규모를 확대시켰고 악기의 그 표현 능력을 극도로 발휘시켰다.
베를리오즈
또 이와 같은 새로움을 헝가리의 대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에 의해 교향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냈다. 리스트는 12곡의 교향시를 작곡하였는데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또 악장을 나누지도 않는 음악으로 시적인 묘사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표제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리스트
당시 오페라도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탈리아의 가극왕 베르디(Giusepe Verdi, 1813∼1901)는 민족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오페라를 작곡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그는 초기의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을 중시하여 작곡하였으나 당시 낭만주의 문예의 영향을 받은 중기 이후의 작품에서는 극적 진실을 추구하여 극과 음악이 함께 중요시되었고 관현악법도 충실한 명락들을 이루면서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리골레토 Rigoletto》《춘희 La Traviata》《아이다 Aida》등의 많은 걸작들이 있다.
베르디
베르디 이후에 이탈리아 작곡가는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5∼1945)와 레온카발로(Ruggiero Leoncavallo, 1858∼1919)인데 이들은 신낭만주의 수법을 써서 현실생활의 잔인한 사건을 묘사적으로 다루는 베리스모(Verismo), 즉 사실주의 오페라를 시도했다.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이것은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토스카 Tosca》에 이어진다.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인 풍부한 서정적 선율에 탁월한 관현악법으로 《라보엠 La Boheme》《나비부인 Mudame Butterfly》등의 명작을 작곡하였다.
푸치니
프랑스에서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비제(Georges Bizet, Alexandre-César-Léopold Bizet(법적인 이름), 1838∼1875)가 오페라《카르멘 Carmen》을 발표하였다.
비제
독일에서는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악극(樂劇, Music Drama)을 창시하였다. 기존의 전통적인 오페라의 불합리한 점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형식의 음악극을 만들어낸 그는 유도동기(誘導動機, Leit motiv)를 사용하여 극중 인물이나, 특정 장면을 나타냈고, 극의 단절을 방지하기 위하여 '무한선율(無限旋律, Unendliche Melodie)'를 창안하였다. 이런 수법의 악극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데 반음계의 빈번한 사용과 불협화음의 사용 등으로 재래의 기능 화성법의 한계를 넘어 조성의 붕괴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바그너
바그너파인 오스트리아의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는 오르간의 명수이면서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는 등의 창작활동으로 조용하고 종교적 달관을 느끼게하는 음악경지를 이루었다.
브루크너
볼프(Hugo Wolf, 1860∼1903)는 주로 가곡을통하여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였는데 슈베르트 이후의 독일 가곡의 문학적, 예술적 발전을 정상으로까지 끌어 올렸다.
볼프
이와같은 진보적인 신낭만주의는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음악계 전체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는데, 그 반면에 고전파 음악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의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인데 그의 화성이나 선율은 중기 낭만파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그는 바흐와 베토벤의 정신을 이어받아 독일 고전의 정수를 순수하게 지켰다. 4개의 교향곡 이외에 관현악곡, 피아노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신고전악파'라 불리울 만큼 절대음악에 온갖 힘을 경주한 작곡가였다.
젊은시절의 브람스
그리고 그밖의 후기 낭만파 음악의 작곡가는 프랑스의 프랑크(César Auguste Frank, 1822∼1890)와 생상스(Charles Camille Saint-Saëns, 1835∼1921), 러시아적인 성격으로 독일 낭만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향곡 《비창》의 차이코프스키(Pyotr (Pete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등이 있다.
프랑크
생상스
차이코프스키
오스트리아의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가곡과 교향곡 분야에 두루 뛰어나고 특히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작곡하였고, 교향시에 표제적인 내용과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근대적인 작곡 수법을 가미하였다. 교향곡과 연가곡의 합성이랄 수 있는 "대지의 노래"가 특히 유명하다.
말러
R.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79∼1936)는 교향시와 오페라 작곡가로, 독일 리트의 전통을 이어받은 150여곡의 예술가곡 작곡자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오페라 이외에 기악곡을 중시하여 능란한 관현악법으로 색채감 있게 창작 활동을 한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등이 있다.
레스피기
한편, 이 시대에 파리와 빈, 그리고 런던을 중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경음악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오페레타(Operetta)의 세계였다. 파리에서는 오페라부프(opera bouffe), 빈에서는 오페레타, 런던에서는 라이트 오페라(Light Opera)등으로 명칭이 달랐지만, 그 내용은 모두 친숙한 제재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특색으로 삼고 있다. 파리에서는《천국과 지옥》을 작곡한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빈에서는 오페레타와 많은 왈츠의 명곡을 남긴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Jr, 1804∼1849, 1825∼1899), 서곡《경기병 "Light Cavalry (Leichte Kavallerie)" Overture 》으로 유명한 주페( Franz von Suppe, 1819∼1895), 런던에서는 설리번(Sir Arthur Seymour Sullivan, 1842∼1900)등이 유명하다
오펜바흐
요한 슈트라우스 주니어
주페
설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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