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馬子)"의 유래
글: 유계흥(劉繼興)
홍콩범죄영화가 대륙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마자(馬子)"라는 단어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홍콩범죄극에서 조폭세계에서 노는 각종 인물들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마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화중에 "그녀는 나의 마자이다" "감히 나의 마자를 건드리다니, 죽고 싶구나" 같은 류의 말이다. 더욱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일은 이러한 극에서 일부 여자들도 "너는 마자가 있느냐?" "나는 너희 큰형님의 마자이다"라는 등등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다.
이처름 여성을 모욕하는 것은 부끄럼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욱 강하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마자"라는 단어는 원래 당나라초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요강(夜壺)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요강을 부르는 최초의 단어는 "호자(虎子)"였다. "호자"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劉邦)때부터이다. 유방의 시대에 아직 '호자'와 같은 작고 편리한 요강은 없었고, 소변을 보는 것도 큰 일이었따. 한번은 유방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오줌이 급해졌다. 안전상의 이유도 있고, 회의시간도 절약하기 위하여, 한 문관에게 관모(官帽)를 벗어달라고 한 다음 몸을 돌려서 관모를 뒤집어 볼 일을 보았다. 금방 관모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소변이 반쯤 차게 된다. 황제의 뜻에 영합하기 위하여, 그리고 한고조 유방이 유생의 모자를 오줌싸는 도구로 삼았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호자"라는 것을 발명하게 된다. 이것은 후세인들이 변기, 요강으로 발전시켜 쓰게 된다. 한나라이후 "호자"는 민간에서 아주 유행한다. 구리, 쇠, 기와, 도자기, 진흙등 각종 재료로 만들었다.
"서한잡사"라는 칭호를 받는 <<서경잡기>>를 보면, 한나라때 궁중에는 옥으로 만든 "호자"를 썼는데, 황제의 시종이 들고 따라다니면서 황제가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도록 했따고 한다. 왜 요강을 "호자"라고 불렀는가? 이에 대하여 <<서경잡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광(李廣)이 형제들과 명산(冥山)의 북쪽에서 사냥을 했는데, 누워있는 호랑이를 보고서, 호랑이에 화살을 쏘았다. 화살 한방으로 죽였다. 그 머리뼈를 베게로 삼아서 맹수를 제압했다는 것을 보이고, 구리로 모양을 만들어서 배설도구로 사용하면서 호랑이를 제압하고 모욕준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것이 바로 요강을 "호자"로 부르게된 최초의 연유이다. 이광은 호랑이의 아가리에 오줌을 누었다. 더 이상 무서운 게 없다는 뜻이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호랑이 모양의 요강이 성행하게 된다.
당나라초기에, 당고조 이연의 부친의 이름이 이호(李虎)이다보니, 피휘를 위하여 요강의 이름을 "마자"로 바꾼다. 송나라때 조언위(趙彦衛)가 쓴 <<운록만초>>를 보면, "마자는 오줌을 누는 도구이다. 당나라사람들이 '호'자를 피휘하여 '마'로 고친 것이다"
북송시대에 일부 성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가사를 읊지 않는 기녀를 "마자"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그저 남성의 배설도구라는 뜻이었다.
남송때의 오자목(吳自牧)이 쓴 <<몽량록>>에는 "가생동사유마자(家生動事有馬子)"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 의미는 항주의 집집마다 모두 요강을 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목(袁牧)의 <<속자불어>> 제9권을 보면, 이런 요강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서쪽 사람 장모가 여고령을 지냈다. 막우인 왕공남은 항주 사람인데, 하루는 함께 배를 타고 외출을 나갔다. 왕공남은 야간에 장모의 요강을 빌려서 썼다. 그러자 장모가 아주 화를 냈다. 우리 서쪽 사람들은 요강을 처첩과 같이 생각한다. 이 물건이 받아들이는게 어떤 물건인가? 함부로 아무나 쓸 수 있게 허락할 수 있겠는가? 선생의 무례가 극에 달했다" 그리고는 바로 하인들에게 요강에게 곤장 30대를 때리게 한 다음에 물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왕공남은 짐과 함께 언덕에 내려놓고는 가버렸다.
고대에 여자를 "마자"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민간에서는 또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마자"는 바로 "몰래 성매매를 하거나 부정당한 일을 하는 여자"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런 여자는 '말(馬)'과 같기 때문에 아무나 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탄다(騎)'는 것은 성관계를 거칠게 비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성의 여성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마자"의 이 두 가지 유래를 보면, 모두 봉건시대에 여성을 멸시하고 모욕했다는 점이 드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여인을 마자 즉 요강과 같이 남성의 배설도구로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대륙의 문예작품에서는 일찌감치 "마자"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그러나, 홍콩 드라마가 들어온 후에 "마자"는 다시 항간에서 유행하고 있다. 홍콩의 드라마작가들이 왜 이처럼 여성을 모욕하는 좋지 않은 단어를 새로 주워서 쓰는지 모르겠다. 역사지식이 모자란 젊은 여자들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마자'라고 칭하는 것은 스스로를 모욕하고 짓밟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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