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중국사상과 문화

지식창고지기 2010. 5. 4. 18:15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중국사상과 문화

 

 

‘휴가’ 같은 삶 
 

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조용히 비파를 타고 있던 점(點)은 자기 차례가 되자 줄의 울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대답을 했다.
“늦은 봄에 봄옷이 마련되면 동료 대여섯 명,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쐰 후 함께 노래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점과 함께 하겠다.” 
 

어떤 발언보다, 어떤 이론적 논증보다도 천천히 잦아드는 소리는 앞에서 표명된 다른 이들의 포부들과 절연하게 한다. 그는 그런 소원들이 비록 간절할지라도 어쩌면 하찮은 것임을,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언사를 쓰지 않고도 돌이켜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각자가 사로잡혀있는 함정에서 개인적 역할을 떨쳐버리고 삶의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족하다. 더 이상 개인적 야심의 저편에 투영된 삶이 아니라, 세계와의 즉각적인 조화 가운데 발견되는, 자연의 물과 바람뿐 아니라 사람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그야말로 ‘휴가’ 같은 삶 말이다. 공자도 그런 삶을 꿈꾸었음직하다.
-무미예찬 p72~74- 
 

희미하게 잦아드는 소리 
 

희미하게 잦아드는 소리는 자연과 섞이며 공간을 펼친다. 박사(薄紗) 옷을 입고 춤추며 노래하는 미녀에 대해 당의 위대한 시인 이백은 이렇게 썼다. 
 

미풍이 노래를 허공으로 실어가고
음률은 지나는 구름에 감겨 날아가네. 
 

음률이 구름을 저절로 ‘휘감는다’는 표현은 도가 고전의 유명한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 옛날에 한 처녀가 제나라에 갔다가 양식이 떨어지게 되자, 한 객사에서 노래를 불러 먹을 것을 구했다. 그녀가 그곳을 떠난 후에도 “여운이 집의 들보에 맴돌면서 사흘 동안이나 끊이지 않아, 사람들은 그녀가 아직 떠나자 않은 줄로만 알았다.” 이백은 또 다른 시에서도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이번에는 모든 덧없는 관능을 지워버린 채, 무한의 느낌만을 강조하고 있다. 
 

여운이 강을 건너 멀어져가네
하늘 가장자리에 이르니 어찌 다시 찾을까. 
 

시는 그렇게 물음으로 끝난다. 강을 건너 하늘 가장자리까지 여운은 풍경을 최대한 확장시키며, 마지막 질문은 측량할 수 없는 어떤 것에로 열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로 나아간다.
-무미예찬 p81~82-

부족함은 바로 그 완벽함에 있다 
 

소동파(蘇東坡)가 중국 서예의 두 시기, 4세기 대가들과 당나라 대가들을 비교한다. 
 

“서예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중유(仲由)와 왕희지(王羲之)가 남긴 글씨들은 거칠고 성글고 소박하고 희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놀라운 성공은 붓놀림 너머에 있는 것이다. 당 시대에는 안진경(顔眞卿)과 유공권(柳公權)이 고래의 모든 기발한 필법들을 종합하고 서예의 다양한 가능성을 천착했다. 누구나 그들을 대가로 여긴다. 그러나 중유와 왕희지의 글씨가 훨씬 더 미묘하다.”


  왕희지의 상란첩(喪亂帖) 
 

가장 완벽한 예술이란 가장 성공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술이 아니니, 그 부족함은 바로 그 완벽함에 있다. 당의 대가들의 서예가 가장 완벽한 것이라 해도 어떤 관점에서는 이전 시대의 서예에 못 미치는 바, 완벽한 서예가 집중의 결실인 것과는 달리 이전시대의 서예는 근본적으로 ‘소박’하며 종이 위에 쓴 글씨가 ‘성글고’ 마치 붓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글씨는 우리에게 그 기백을 과시하는 대신, 밀도를 상실한 듯이 더 이상 완전히 존재하지 않으며 반쯤 떠나가는 듯이 보인다. 마치 이 세상과 얽히기를, 현실과 부대끼기를, 완전히 뿌리내리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다. 어딘가 ‘멀리’ 다른 곳에서 온 영감의 스쳐간 흔적들이니, 그런 글씨는 그저 흔적으로만 여겨지며, 그 막연하고 쓸쓸한 필적에는 체념의 느낌이 감돈다.
-무미예찬 p120~124-

프랑수아 줄리앙은 서구 최고의 중국학 연구자란다. 베이징대학과 상하이대학(1975~1977)에서 중국학을 연구했고 홍콩주재 프랑스 중국학연구소 소장(1978~1981), 도쿄소재 프랑스-일본협회 재외연구원(1985~1987), 프랑스 중국학연구회 회장(1988~1990)을 지냈다. 현재는 파리7대학 교수 및 현대사상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서양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학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중국학 연구를 ‘귀환을 위한 끊임없는 우회’라 말한다. 저자는 서양인이면서 ‘중국적 사고로 서양 들여다보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적 사고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에서 경험한 중국사상과 문화에 대한 일종의 소감문(essay)이다. 
 

저자가 중국적 사고로 서양을 들여다보기를 원한 반면에 나는, 서양인의 관점으로 들여다본 중국사상과 문화가 궁금했다. 유럽 최고의 중국학 학자는 논어(論語)를 어떻게 해석할까? 이백의 시(詩)는? 왕희지의 글씨는? 이 책에 그 답이 담겨있다. 몇 대목 옮겨 보았다. 프랑스인다운 감성이 넘치는 유려한 문체가 인상적이다. 다만 서양인들이 동양을 보는 일반적 시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