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무왕 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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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BC 1111~255)의 창건자이며 제1대 황제(BC 1111~04 재위)이다.
서백이 죽은후 그의 아들 발(發)이 뒤를 이으니 그가 곧 주 무왕(周 武王)이다.
당시 은 주왕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마침내 무왕은 은나라를 치기로 결심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은의 충신 백이(伯夷) 와 숙제(叔齊)가 무왕을 찾아와서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서
“당신은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아직 3년상을 치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전쟁을 벌이시다니
어찌 효도라 할 수 있으며, 또 신하된 몸으로 왕을 죽이려 하다니 어찌 인(仁)이라
하겠소?“ 라며 말렸다.
그러고는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 들어가 주나라의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고 오직 고사리만
먹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한편 무왕의 군대는 목야 지방에서 은의 군대를 패퇴시킴으로서 은왕조를 멸망시키고,
그 뒤를 이어 주왕조가 천자의 나라로 추대되었다.
제2대 성왕 成王
무왕이 죽고 태자종이 즉위하였으니, 이가 바로 성왕이다.
성왕은 어린나이에 즉위하였기에, 무왕의 아우였던 주공(周公)이 섭정을 하면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이때 무왕의 아우인 관숙과 채숙이 주공은 성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뺏으려
한다는 풍문을 퍼뜨리고는, 은 주왕의 아들인 녹보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주공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진압에 나서 3년만에 관숙과 복보를 죽이고 채숙을 추방
하였다.
그 뒤 7년이 지나 성왕이 장성하자 주공은 섭정을 그만두고, 모든 정사의 권한을 되돌려
주었다.
주공은 섭정기간동안 관제를 새로이 정비하였으며, 예악을 제정하는 등 주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제후를 분봉하고 이들로 하여금 주 왕실의 천자에게 충성케 하는 봉건제와 적자(嫡子),
장자(長子)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을 정한 종법제 가 그것이다. (성강지치)
주공과 그의 동생인 소공은 이후에도 성왕을 도와 좌우의 보좌역이 되어 천하를 둘로
나누어 서쪽은 소공이, 동쪽은 주공이 각각 관리하였다.
그뒤 주공은 자신으 영지인 노나라에 아들 백금을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이로써 자신이 창안한 봉건제도를 정착시켰다.
제3대 강왕 康王
성왕이 죽고 그 뒤를 아들 강왕이 이었다.
성왕과 강왕의 두시대. 약 40년간은 천하가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형법이 있어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강왕이 죽은후 아들 소왕이 뒤를 이었으나 소왕은 남쪽지방을 시찰하던중, 초나라에
이르러 아교를 칠한 배를 탔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후 목왕(穆王)의 시대를 거쳐 공왕(共王) 이 즉위하였다.
공왕은 여행을 매우 즐겼는데, 어느날 위수부근에서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당시 위수 부근에는 밀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는데, 밀국의 영주 강공은 공왕을 정중히
맞아들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때 강공의 곁에는 아름다운 미녀가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공왕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이를 눈치챈 강공의 어머니가 미녀를 공왕에게 바치라고 강공에게 눈짓을하였는데,
강공은 따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왕은 강공에게 그 미녀를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공은 너무나 아까운 나머지 미녀를 주지 않았다.
일개 소국에서 여자하나에 창피를 당한 공왕은 돌아오자마자 군사를 일으켜 밀국을 토벌
하였다.
이 소문이 퍼지자 멀리있던 나라에서는 조공이 끊겼고, 제후들의 불만도 커졌다.
이때부터 주나라의 권위는 떨어져 갔고, 얼마후에 초나라가 최초로 스스로 왕을 칭하는등
주왕실의 국력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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