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주周 ( BC770~BC221 ) 춘추시대 - 부차, 구천, 관중

지식창고지기 2009. 5. 31. 21:20

부차 夫差


?~BC 473.


<부차의 검>

중국 춘추시대 말기 오(吳)나라의 왕(BC 496~473 재위).


합려(闔閭)의 아들이다.

합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싸우다 패하여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태자인 부차에게 복수할 것을 유언했다.


부차는 왕이 된 뒤 밤낮으로 전법(戰法)과 무예를 익혀 BC 494년 정예군을 이끌고 월과                               

부초(夫椒 : 지금의 장쑤 성[江蘇省] 타이후 호[太湖] 근처에 있는 산)에서 싸워 이겼다.

구천이 회계산(會稽山 : 지금의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 현[紹興縣])으로 물러나 강화를

요청하자 부차는 구천을 죽이라는 오자서(伍子胥)의 간언을 듣지 않고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BC 482년 부차는 황지(黃池 :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펑추 현[封邱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여 패자가 되었다.

 

그 사이 와신상담 설욕의 기회만 기다리던 구천은 국력을 충실히 하여 부차가 황지에서

진(晉) 정공(定公)과 패자의 자리를 다투고 있는 사이에 오나라를 쳤다.

부차는 곧 회맹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오나라는 이미 궁핍해지고 군대가 피폐하여

2~3차례 월의 침공을 받고 결국 멸망했다.

부차는 오자서의 간언을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자살했다.

 

 

구천 句踐


?~BC 465.


<구천의 검>

 

중국 춘추시대 월(越)의 왕(BC 497~465 재위).


월은 구천의 부친 윤상(允常) 때부터 인접국 오(吳)와 숙적관계에 있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구천은 쳐들어온 오왕 합려(閤閭)를 격퇴, 전사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BC 494년 합려의 유언을 받고 침략해온 아들 부차(夫差)에게 패하고

회계산(會稽山)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어야만 했다.       


그뒤 명신(名臣) 범려(范)와 함께 군비를 증강하고 힘을 키우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기를

20년, BC 473년 구천은 드디어 부차를 물리쳐 자살하게 함으로써 복수에 성공했다.

그뒤 월의 국력은 더욱 막강해져 구천은 패왕(覇王)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관중 管仲


?~BC 645.


중국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사상가.


이름은 이오(荑吾).

영상(潁上:지금의 안후이 성[安徽省] 서북부) 사람으로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에

경(卿)의 벼슬에 올랐던 그는 환공의 개혁 추진을 도왔다.

토지등급에 따라 세금을 걷고 농업을 발전시켰다.

동시에 염전·제철업을 일으켜 제나라를 춘추시대 가장 막강한 맹주(盟主)로 만들었다.

〈관자 管子〉의 목민(牧民)에선 "창고가 가득 찬 뒤에야 예절을 알게 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써서 도덕교화(道德敎化)가 물질생활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설파했다.


또한 "4유(四維:禮·義·廉·恥)가 널리 퍼지지 않으면 나라가 곧 망한다"라고 강조하여

도덕교화의 역할을 중시했다.

관중의 이름을 딴 〈관자 管子〉는 86편 가운데 현재 76편만 전한다.

그중 목민(牧民)·권수(權修)·형세(形勢)·칠법(七法) 등은 관중의 언론사상을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