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개방이후 경제
서론
* 중국은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로 일찍부터 동양 문화권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으나, 근대화가 늦어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중국은 자원과 노동력은 풍부하나, 자본이 부족하고 기술 수준이 낮아 공업의 발달이 뒤졌다. 그러나 1949년 혁명이후,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개혁개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경제개혁개방정책은 동구유럽이나 구소련과는 달리 점진적이며 실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체제 및 사회의 급격한 혼란 없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경제개혁개방정책을 통한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에 따라 우리는 12억 인구를 거느린 세계 최대소비시장의 형성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공산품을 중심으로 국제시장세서 첨예한 경쟁관계를 보이고 있는 강력한 경쟁자의 부상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효율적으로 극복해야 할 국가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 중국의 개혁조치들은 동유럽과 구소련에서 취해진 조치들과 대비되어 점진적이고 조금씩 개선되는 것으로 종종 간주되어 왔다. 그래서 본론을 들어가기에 앞서 중국의 개혁과 동유럽, 구소련간의 개혁의 특징을 비교 하고자 한다.
1. 중국의 개혁은 공산당의 강력한 리더십의 기초 위에서 진행된 것이었고 동유럽의 개혁은 대부분 공산당 정권이 붕괴되면서 촉발되거나 가속화되었다
2. 중국의 개혁은 점진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동유럽의 개혁은 급진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3. 중국의 개혁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안정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동유럽의 개혁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루어졌다
4. 중국의 개혁은 주변 국가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주거나 받는 일이 없이 이루어졌지만 동유럽의 개혁은 동유럽 여러 나라들이 서로 강력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도미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5. 중국의 개혁은 뚜렷한 주변 시장이 없이 미국과 유럽의 시장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졌지만 동유럽의 경우에는 유럽이라는 뚜렷한 배후시장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이루어졌다
6. 중국의 개혁은 중국의 다양한 민족이 중화주의로 통합되는 형태로 발전했지만 동유럽의 개혁은 각국의 민족주의가 격화되어 국가가 분열되기도 하고(체코와 유고) 민족주의 성향으로 인한 주변의 경계를 받기도 했다
7. 중국의 개혁은 확고한 경제우선주의의 입장에서 이루어졌지만 동유럽의 개혁은 대부분 선 정치개혁 후 경제개혁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본론
1. 개혁개방이전의 경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하의 사회주의 발전 방식
2. 1978년 개혁개방이후 중국의 경제변화
1) 개혁의 제 단계
제 1단계(1978년 12월 ~ 1983년)
처음에 취해진 정책들은 대약진의 영향이 가시지 않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하여 취해진 1960년대 초기의 정책들과 유사하였다. 이 정책들은 재료의 생산에 크나큰 비중을 두었으며 시장에 보다 많은 역할을 허용 하였다. 특히 농산물의 구입 가격이 인상되었으며, 농작물의 다양화와 특화가 촉진되었고, 시골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조치가 완화되었으며, 집단농장수준에서부터 개인가정수준에 이르기까지 농장조직 분권화되었다. 산업분야에 있어서 보너스제도가 다시 도입되었고, 감가상작제도가 허용되었다. 외국과의 경제관계에 있어서 외국투자와 기술을 유입하고 수출을 촉진하며 과감한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을 위한 실험장의 역할로서 경제특구에 대한 우대조치들이 취해졌다.
제 2단계(1984년 ~ 1987년)
초기의 농촌개혁이 성공하자 당국은 1984년에 도시공업지역을 개혁하기 위한 광범위한 조치들을 구체화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이중가격체제의 수립, 법인세제도의 도입, 성과급보상을 위한 임금체제의 개혁, 중앙은행의 설립을 위한 독점은행제도의 파기 등을 포함한다.
투자체제도 기업들이 사업수행에 자금이 필요할 경우 과거처럼 국가에 의존하기 보다는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도록 개혁되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세입할당체제도 지방정부에 더 많은 세입이 할당되도록 개선되었다.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을 유인하기 위하여 해안에 위치한 14개 주요도시가 외국무역과 투자를 위해 개방되었다. 1986년에는 이러한 조치들이 개선되었고 확대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외환시장의 설립을 비롯하여 지방무역상사의 설립을 통한 무역의 분권화와 기업을 위한 계약책임제의 도입 등이다.
제 3단계(1988년 ~ 1991년)
1988년 중반부터 1991년까지의 기간은 긴축의 기간이었다. 개혁조치들은 수요와 생산이 급증함에 따라 성공적이었지만 이는 인플레를 유발하였고, 1988년 초기에 이르러서는 연간 인플레 인상률이 무려 두 자리 숫자에 달하였다. 새로운 가격제제의 개혁을 위한 계획이 연기되었고, 정부당국이 과열된 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이 주춤하였다. 긴축조치들이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경제의 급격한 하강을 초래하였고, 특히 공업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였다. 결과적으로 국영기업의 적자는 증가하였고, 기업부패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재고품은 누적되었고, 거시경제체제의 불안정이 심화되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1990년 후반기에 정부당국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혁신적인 금융과 투자정책을 취하였다. 정책의 변화에 힘입어 경제는 1991년에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정부당국은 물가안정을 기반으로 하여 일부가격을 자유화하고 상대가격을 실질화 하였다.
제 4단계(1992년 ~ 현재까지)
1992년 초에 정부당국은 개혁과 개방을 가속화할 것을 천명하였다. 개혁과 개방의 과정은 시장경제체제가 사회주의의 이념과 조화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역살한 등소평의 견해를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추인한 1992년 10월에 최고조에 달하였다. 새로운 이론의 틀은 중요한 이념적 전환을 의미하며 정부당국으로부터 완전한 시장경제체제의 수립을 용이하게 하였다. 1992년 3월에는 헌법을 정하여 계획경제조항을 삭제하고 시장경제체제의 수립을 새로운 목표로 정하였다. 다른 중요한 조치들을 살펴보면 시장경제체제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행정적 제도의 마련과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정립, 기업과 제정적, 사회적 개혁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한 계획들이다.
2) 중국의 개혁접근방식에 있어서 현저한 특징
① 점진적 접근방식
② 두개의 다른 체제로의 전환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온건한 방법을 사용
③ 지도층에 의하여 경제의 사회주의 특징을 보존하는 시도가 있었음
3) 중국 개혁 초기단계의 여건
① 거시 경제적, 구조적 여건 :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에 이어 소련식의 명령형 경제 방식이 발전전략의 지침으로 채택되어 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지도층에서는 점차 이 방식의 여러 분야 특히 고도의 중앙집권화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57년에는 중앙계획 방식에 수정을 가하여 중앙 정부는 중요한 대규모 및 중간규모의 산업분야에 대한 통제권을 지방정부에 이관하였다.
1978년 이전에 중앙의 통제권이 강화되고 완화되는 기간이 있었지만 중국은 다시 구소련이나 다른 중앙집권방식의 동유럽 같은 정도의 중앙계획 체제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② 국내 저축: 경제의 성공적인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비인플레적 자금 공급을 위한 자원의 사용가능성이다. 개혁이 시작된 이래 중국은 약 30%내지 35%로 추정되는 높은 국내 저축률을 시현하였다. 이와 같은 저축률은 대부분 발전도상국이나 공업국가 보다 훨씬 높으나 일본이나 싱가포르 보다는 약간 낮은 수치이다.
이와 같은 높은 저축률은 개혁기간 동안에 거시 경제적 균형을 유지한 중국의 성공에 기인 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③ 경제 개방: 개혁 이전의 기간에 자급자족에 대한 집착은 국내 석유생산의 발전을 초래하였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1970년대에 발생한 두 번의 석유 파동으로부터 중국 경제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또한 개혁 이전의 대부분과 개혁의 초기단계에서 중국은 수출입 비율이 GNP 대비 1978년에는 10% 미만 이었으며 1984년 까지는 29% 미만에 머무는 등 상대적인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하였다. 결과적으로 중국 경제는 세계 경재 불황과 환율의 변동과 같은 외적 불안 요인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4) 국내 경제개혁
① 농업: 가계책임제가 주요한 제도로 나타나게 됨
② 국영기업: 개혁의 목표가 기업의 자립과 채산성 확보였음.
③ 고용, 사회보장, 주택:
* 고용-근로계약제도가 1986년에 도입
* 사회보장- 사회적으로 부작용 없이 기업에 대한 예산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회보장 제도가 개발되어야만 했다.
* 주택- 과거에는 주택시장의 결여가 도시로의 잠재적 이주민에게 주요한 방해물 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최근 시 외곽에 거주하는 농민들의 농촌으로부터의 이주민을 위한 주택을 건설하게 됨에 따라서 개선되었다.
④ 재정: 재정분야에서 가장 진전된 개혁은 1980년대 중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세 부문에서 진행되었다.
5) 개방 및 대외 정책
중국개혁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경제를 외부세계에 점차적으로 개방하였다는 점과 외국무역 및 투자에 대한 공식적인 태도에서도 동시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접근방법으로 외국으로부터 차용를 최소화 하는 한편 중국으로의 기술이전과 산업에 필수적인 수입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출을 통한 벌이를 장려하는 것과 같은 비교적 온건한 목표를 초기에 착상해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일정범위의 지역들이 대외 지향적 활동이 장려되는 개방경제지대로 지정되었다. 개방경제지대는 시장지향적인 개혁을 실험하는 연구실로서도 이용되었는데 여기에는 개방경제지대가 기타 경제부문과 분리될 수 있다는 최초의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개방경제지대의 강력한 성과와 증대하는 지방 자치권은 국내경제와 보다 강화된 통합을 요구하게 되었고 경제부문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 중추부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 대외개방 정책의 발전과정
1단계: 실험적 ":경제특구"정책(1980-1984)
->동남연해 지역 일부 도시에 대한 "경제특구"정책 (1980년 광둥성, 선쩐, 주하이, 션토우, 그리고 푸�성의 샤먼 4개 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1984년에 추가로 하이난다오를 추가로 지정. 하이난다오는 1988년 성을 경상됨. 경제특구에서는 외자에 대한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경제 운용도 시장경제 요소를 실험적으로 도입함.)
2단계 : "연해개방도시"로의 확대(1984)
->1단계 경제특구 정책이 기대이상의 효과를 달성하자 연해지역 14개 도시로 개방지역을 확대하여 외자도입을 적극 추진키로 함. (14개 도시 : 천진, 상해, 대련, 진황도, 연대, 청도, 영파, 온주, 복주, 광주 등 연해지역의 거점도시들로서 이들 지역은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임, 이들 연해도시에는 "경제기술개발구“를 설치하여 외자에 대한 각종 우대정책 실시.
3단계 : "연해경제개방구"(1985-1989)
(1985년 창장삼각주, 주장삼각주, 민난삼각주 지역을 개방키로 함.
1989년 랴오둥 반도와 산둥반도를 개방키로 함.)
4단계 : 전방위 개방(사연 : 연해, 연강, 연변, 연로)개방
->내륙지역으로 개방지역 확대. 사실상 전면 개방 실시.
(연해도시 및 일부지역 개방정책의 성과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자심감을 바탕으로 1992년부터 내륙지역으로 개방지역 확대. 이 시기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전면적 개혁을 선언한 등소평의 "남순강화" 와 14차 당 대회에서의 "사회주의시장경제론"이 정립되는 시기임. 이때부터 중국은 사실상 전면개방 실시.
6) 개혁의 경제적 영향
중국의 개혁은 큰 폭의 생산량 증대를 가져왔으며 특히 농업, 비국영기업, 대외무역 등에서 그러하였다. 하지만 국영기업의 개혁속도는 더디었다.
점진적인 개혁과 거시경제적 통제장치의 부정합은 반복되는 경제 불안을 가져왔다.
개혁의 경제적인 영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①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
② 세계 경제로의 통합
3. 중국 개혁 개방의 문제점과 한계점
국유기업에 대한 과보호
국유기업이 갖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국유기업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보호해왔다.
기업은 경영이 부실해지면 점차 회사가 기울다가 무너지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지키는 버팀목이라는 비시장적인 생각과 대규모 국유기업이 무너지면 실업문제가 복잡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국유기업을 과보호해왔다. 그래서 회사가 부실해지더라도 국가에서 계속 도와주면서 부실 규모를 점점 더 키워왔다. 현재는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심각해진 상태이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유기업도 점차 시장원리에 의해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개혁이 빨리 진전되고 있지는 않다.
심각한 부정부패
중국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후 중국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왔다. 이러한 부정부패는 사회의 공정한 경쟁을 좀먹고 발전 잠재력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전임 주룽치 총리를 비롯하여 중국 지도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강력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부실한 금융시스템
중국이 튼튼한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것의 사활적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실관계, 뇌물수수, 정치논리 등에 의해 금융시스템이 점차 파괴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충분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현재 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까지 와 있다. 특히 국영기업에 대해 갖고 있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엄청난 수준에 이른다. 금융시스템 개혁을 중국정부가 외치고 있지만 충격이 클 것이기 때문에 쉽게 손을 대고 있지는 못하다.
실업문제
생산합리화와 자동화, 정보화, 노동의 질 개선 등으로 중국의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이에 따라 노동자 1명이 생산할 수 있는 양이 몇 배로 늘어나면서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데도 실업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은 사회적 안전망도 충분히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 심각한 사회적 분쟁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정부는 이 문제 해결에 힘을 집중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실정이다.
민주화 문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 수준을 조금씩 개선해왔다. 그러나 이는 한국, 대만 등 이웃들과 비교해봤을 때 지나치게 느린 것이다. 중국의 소득수준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수적으로 늘어난 중산층의 민주화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면 중국정부가 극히 어려운 처지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
* 중국은 장쩌민 국가주석부터 일기 시작한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 수출, 내수 모두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나, 미국, 유럽 쪽에 선진국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수많은 화교들을 통해, 많은 인적자원과, 물질적인 자금 매년 자국으로 들여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타 국가에 의해서 극단적인 "전쟁" 의 위협이나. 불안이 국민들이나,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세계유수의 기업들이 투자가치가 떨어졌다는 판단이 일지 않는 한, 중국은 "선진국"대열에 반드시 포함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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