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가(道家)
먼저 도가란 무엇인가?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제 머리 속에서는 어떻다 라고 말씀 드릴게 없어서 제가 읽었던 책에서의 내용을 빌리겠습니다. 책의 필자가 말하길 도가란 이름은 그 대상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물론 개중에는 무심코 지은 이름이나. 상상하기 힘든 사유에 기초한 이름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름은 그 대상을 파악하는 중요 포인트다. 이 점에서 도가라는 이름은 '도가 사'라는 도가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에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틀이 된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도가를 평하고 정의했지만 무엇이 도가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아직도 힘들다, 이것은 도가 자체의 성립과 발전에도 원인이 있을뿐더러, 도가 자체의 성격과 '도가'라는 이름의 사용에도 그 원인이 있다. '도가'는 선진시대에 그 기원을 두지만, 현재 그 명칭은 한초의 <사기>에서 제일 먼저 발견됐다. '도가'라는 명칭은 '도덕가'라는 이름으로, <사기>태사공자서 가운데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 슨 '논육가지요지'에서 제일 먼저 발견됐다. '논육가지요지'는 중국선진시대의 학술사상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기록으로, 처음으로 '~가'라는 개념을 가지고 선진의 제자들을 여섯 그룹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위의 특징과 같이 도가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처음 설명한 사마담의 말에 의하면, 도가는 일부에서 생각하듯이 소극적이고 도피적이며 은둔적인 사상이 아니라, 현실 생활 속에서 시대와 사물의 변화에 발맞추어 행하는 나름대로 유동적이고 실천적인 사상이었다.
오늘의 기독교를 보면 무수히 많은 계파 속에 그 중심의 핵을 이루는 것은 역시 그들의 중심경전인 <성경>이다. 비록 해석이 서로 다르고 어긋나는 점이 있어 서로가 서로를 이단이라고 손짓하여도 결국 그 근거와 해결은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도가는 <노자>가 그 핵을 이룬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신약>이 핵을 이루지만 <구약>과 기타 다른 문헌을 무시할 수 없듯이 가에서도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의 다른 경전들 예를 들어 <시경><서경>같은 글들을 간과 할 는 없다. 이에 근거한다면 <노자>를 중심으로 하여 그 뒤를 이은 노장학의 <장자>와 홍로학 계열의 <황제사경>등의 책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또한 도교는 종교의 발흥에서 그 종교의 정신적 배후로 도가의 일부가 변형되어 자신들의 명맥을 유지했고, 민간과 기타 다른 신앙 속에서도 끈끈한 영향력을 가지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왔다. 하지만 유가의 체계적인 틀과 계통에 비해 도가는 그런 것이 부실하다. 아니 그런 틀은 시대가 허락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그들 자신도 애써 원하지 않다. 있기는 하지만. 없는 것 같이 있고 있는 것 같이 없는 것 그것이 도가의 계통이자 도가의 모습이다. 또 도가는 사라졌다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중국사상사에서 음으로든 양으로든 존재하여 왔고, 그 규모가 작게든 크게든. 혹은 그 영향이 많게든 적게든 존재해 왔습니다. 여기서 저는 바로 그 존재하여 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여 시대적으로 구분하려고 했다.
도가사상을 구성하고 이루는데 영향을 준 간접적 요소들은 도가사상의 맹아기를 구성하는 중요 요서이다. 예를 들어 문화 배경적인 측면에서 도가철학은 중국 북방의 사관문화의 자양분을 먹고. 동시에 남방 무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 외에도 선진도가의 사상은 당시의 역사적 환경과 각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신분 등에 따라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아래의 것들은 몇 가지 대표적인 영향들을 중심으로 도가에 대해 알아보자.
1. 도가와 모계사회: 선진도가철학은 모계사회의 특징과 비슷한 면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노자>가 더 심하다. 도가철학에서는 모계사회의 특징이 양을 숭상하기보다 음을 숭상하고 강함을 따르기보다 약함을 찬미하며 폭력보다는 평화를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데 도가는 부계사회에 활약했던 시절에 모계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견강부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진시기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상고시기와 비교적 가까운 시기부터 구전되어 오던 것들을 살펴보면 모계사회를 그리는 것들이 많은데 아마다 도가는 이것을 전적으로 그들의 사상에 융합시겼을 것이라고 본다.
2. 도가와 사관: 도가와 사관의 관계는 이미 이천여 년 전 <한서>예문지에서부터 언급하고 있다. 반고는 도가의 기원을 사관에서 찾았다. 사관은 대부분의 책이 조정에 잘 보관되어 있던 당시 사회적 특성상 누구보다 쉽게 책을 열람할 수 있었고. 이러한 지위를 이용하여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기초 위에 그들은 나라의 여러 가지 일을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세상의 여러 일을 깊이 통찰 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도가는 다른 어떤 사상보다 사회와 세상을 가장 깊게 통찰했다.
3. 도가와 은자: 도가를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은자와 관련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은자의 특징은 세상을 피하고 세속을 벗어나 살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 삶의 태도를 유지하며, 능동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응하는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는 섣부른 판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은자들을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다. 당시의 전쟁에 패하거나 집안이 몰락하여 은둔의 수단으로 도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물러나 도가라는 사상을 통하여 밖에서 더욱 통찰적으로 비판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은자 속의 도가는 좋게 볼 수도 있
4. 도가와 신성사상: 신선사상은 도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과거부터 본능적으로 무병장수하길 혹은 더 욕심을 부려 장생불사하실 기원했다. 이것은 단순히 도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증적인 염원으로 인류의 의식 속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 결과 이러한 꿈을 이룬 인물들로서, 그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도가 곳곳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는 노자사상과 신선사상의 공통점을 비추어 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무병식재와 인과응보 민생위주 등으로 닮은 점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도가와 역: <역경>과<역전>사이에서 도가는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노자와 <역경>은 많은 학자들이 공인하는 것처럼 상호 많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중국철학에서 '도'는 중요한 의미범주 가운데 하나이며, 도가에서 는 도가를 규정하고 특징짓는 핵심개념입니다. 원시 도가는 중국 고대사회의 사상체제 속에서 도를 핵심으로 하는 천도와 인도의 앵대법칙을 제시할 정도로 도를 중히 여겼다. 도가는 이처럼 도 자체의 철학적 의미를 깊이 발전시켰다. 위에서 도가 철학적 의미로 발전되었지만 무위는 가정 먼저 도가에서 철학적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이 개념을 제일 먼저 사용한 이는 노자로 알려져 있고, 이후 노자의 후세들에 의해 사상적으로 보다 체계화되었다. 무위란 사물이 본성에 따라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바로 천지자연이 자기 본성에 따라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일체의 사물에 간섭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도가 본받는 자연이란 바로 '본성' 그래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람이 간섭할 때 따르는 부작용을 피살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주요 개념으로 '자연을 들 수 있다. 그때의 자연이란 말은 우리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자연과는 다르다. 그때는 자연물의 성질 혹은 본성을 가리키는 뜻을 가리켰다. 즉 이것은 자연물이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 없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 의연한 태도를 말했다. 결국 만물이 자기의 본성에 다라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그것이 장차 어떻게 되든 모두 자연스러운 결과다라고 보고 있었다.
도가∩도교: 첫째로 도가와 도교는 각자의 근본적인 취지가 달랐다. 도가의 종지는 정신을 모아 생명의 깊이를 단련하여 정신적 경지의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서, 그 최종목적은 정신이 현실을 초월하여 심오한 미를 즐기며 이성적인 만족과 심리적인 안정을 회득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도교는 연양과 형신. 내단과 외단 및 그외 각종 도술은 최종적인 목표가 모두 개체 생명들을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도가와 도교는 귀신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도가는 소리 높여 천도와 무위자연을 말하면서 인간을 주재하는 신령한 존재를 부인했다. 도교는 도가의 이와 같은 경향을 자기의 독특한 방식으로 변형시켜. 종교를 이루면서 신령과 선인을 숭배했다. 도교는 세계를 이중화하고 신선을 숭배하여 진정한 종교성을 구비하면서 종교적인 체계를 이루었다. 셋째로 도가와 도교는 그 존재방식이 서로 달랐다. 도가는 학술문화의 하나로 사상 의식의 영역에서 존재하며, 그 지혜와 미학의 역량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보는 반면에 도교는 사상과 신앙에만 그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종교고직과 활동이 있으며, 나아가 신도들과 궁관과의 제도 등을 갖추었다.
도가U도교: 첫째 도가는 도교의 중요한 사상적 근거다. 도교에서 받드는 '도'는 노학에서 말하는 우주본원의 도에서 취한 것이다. 도교는 <노자>를 도경 가운데 첫 번째로 삼아 그 속에서 연단과 양생 이론을 펼쳐 나갔다. 그리고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체계적인 이론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둘째 도교는 도가의 중요한 한 갈다. 도교는 형식상. 명의상 도가에서 많은 것을 빌려 왔을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많은 것을 계승했다. 그러므로 도가에서 도교로 변해 가는 그 내재적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셋째로 도가와 도교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요소가 있다. 이 부분은 바로 우주론과 양생론이다. 이는 너무 복잡해서 그냥 공통부분만을 비추었다. 넷째로 도가사상은 도교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나갔다. 도가의 정신은 도교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영향을 미치거나 예술에 잠입하여 그 명맥을 유지했다. 결론적으로 도교는 도가의 특수한 계파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바로 역사적으로 도가와 도교를 멀거나 혹은 가깝게 만들었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서로 공존하게 하면서. 서로의 발전을 담보로 한 복잡한 형태를 만들었다.
이상 도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럼 이런 도교가 대체 중국의 시대에서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진한시대의 도교: 진한시대 동안 도교사사의 발전은 주로 황실이라는 유리한 장소에서 발전했다. 권력의 공고화와 확대를 열망했던 황재들은 자연히 비법가를 우대했다. 동부 해안지역으로부터 이련의 비법가들이 진과 전한의 조정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신선들이 사는 섬들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섬은 장자가 말한바 는 점이다. 그들 동부인들은 황제의 건강과 장수를 보장해주는 신선에 대한 제사의식 등을 제국의 수도에 끌어들였습니다. 여기에서 최로로 불로장생의 신성방술이 복잡하게 발전했다.
-진한이후 도가사상의 발전: 3~4세기에는 곽상과 왕필을 들수 있다. 두사람 모두는 성인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는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완성된 생활을 하는 이간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최대의 성인은 노자가 아니라 공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열자가 출현하여 숙명론적 자연주의를 말했다. 셋째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는 청담사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 사조는 2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당송 이후의 도교: 중국을 재통일한 당이 들어서자 도교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 고조 이연은 노자와 성이 같다고 하여 자신을 노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당의 거대한 영토 전역에 걸쳐 도교가 널리 전파된 사실은 둔황의 석굴에서 발견된 수많은 도교 서적에서도 증명되었다. 도홍경의 맥을 이은 왕원지가 남북의 도교를 종합하여 당대 도교의 기초를 다시는 시절이기도 했다.
-송원시대의 도교: 송에서 도교는 종교적으로 크게 활기를 띤다. 이것은 송대에는 부분적으로 이민족 침입에 자극 받은 것이고, 원대에는 몽골 지배층에서 당시 유행하던 금강승으로부터 자극 받은 것이다. 남송시대가 되면서 이민족에세 점령된 북부 중국에서 많은 수의 새로운 도교 종파가 생겨나고 이들은 급속히 세력을 확대시켰다. 그리고 이때는 도교서적의 발전이 이루어져 특히 <운급칠첨>으로 송 이전의 도교를 총괄했다.
이러한 도가의 중국과학에도 영향을 미침다. 도가의 생리학 기술 그 자체에는 신앙적 성격이 없다. 의학자와 똑같이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이들의 최대관심사였다. 의학은 1세기경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많은 도가 치료자와 위생학자들이 의학지식을 더해주었다. 전설적인 선사가 황제에게 말한 가르침을 기록한 <황제내경>은 현존하는 최초의 의학서다. 도가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전통의 권위에 의존하는 유교와는 반대로 도가들이 물의 성질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을 중시했던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자와 도덕경 : 도교의 모든 이론은 노자에 의해 마련되었다. 노자에 대해서는 <장자>에서 처음 나온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당시까지의 전설을 모아 그에 대한 체계적인 최초의 전기를 썼다. 이들에 따르면 노자의 성은 이, 이름은 이, 주 조정에서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을 지냈다. 공자가 그에게 예를 질문했다고 하며 뒤에 은퇴하여 <노자>를 지었다. 그러나 <도덕경>은 노자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 의해 BC3세기경에 편찬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책에서 성인의 개념은 중국의 다른 경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장자의 해석: <사기>는 장자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그 학문은 엿보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근본에서는 노자의 사상으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장자는 노자와 도가사상을 계승했고 더 나아가 노자와 구분되는 사상적 특색을 가지고 자신의 독특한 철학사상 체계와 학풍. 그리고 문풍을 형성시켰다. <장자>는 개인의 생활 본성을 보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노자가 그의 책과 삶에서 도가의 기본원리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면 몇 세대 위의 장자는 사회 참여를 일절 거부하고 궁극적인 관심을 소요유에 두었다. <장자>에서는 또한 모든 가치의 상대성이 강조된다. 만물일제의 사상. 즉 "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이 세상에서 귀하고 천한 것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삶과 죽음은 같으며 따라서 죽음 자체는 도에 합치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국립 안동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중국문화의 이해 발표 수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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