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갱유 焚書坑儒
중국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시행한 학술·사상의 통일방안.
'분서갱유'란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땅에 묻어 죽인다는 뜻이다.
BC 221년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는 법가(法家)인 이사(李斯)를 발탁하여, 종래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시행하는 등 철저하게 법가사상에 기반을 둔 각종 통일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같은 법가 일색의 정치에 대해 유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들은 이에 반대하고
공공연하게 자기 학파의 학설을 주장했다.
이에 시황제는 이사의 진언을 받아들여 진(秦)의 기록, 박사관(博士官)의 장서,
의약·복서(卜筮)·농업 서적 이외의 책은 모두 몰수하여 불태워버렸다.
또 이것을 위반하는 자, 유교경전을 읽고 의논하는 자, 정치를 비난하는 자 등은 모두
극형에 처한다고 정했다.
이것이 바로 '분서'사건이다.
'갱유'는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들의 신선사상에 열중한 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약을 구하던 시황제가 그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서를 시행한 다음해에 방사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잡아들여, 금령(禁令)을 범하고
요언(妖言)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웅덩이를 파고 460여 명을 생매장시켜버린 사건이다.
분서가 철저하게 법가주의에 근거하여 학문의 자유를 탄압한 것과는 달리,
갱유는 방사들의 터무니없는 언동에 대한 시황제의 분노가 직접적인 동기였다.
그러나 이때문에 유가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살해되어 결과적으로 분서와 동일한 학문·
사상의 압제 효과를 가져왔다.
이 분서갱유에 의해서 춘추전국시대 이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문은 별로 발전하지
못했고, 많은 고서·고기록이 없어져 중국문화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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