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한국)

'취중 실언'으로 왜군에게 화형…진실일까 음모일까?

지식창고지기 2010. 11. 10. 09:59

'취중'취중  실언'으로 왜군에게 화형…진실일까 음모일까?
 석우로의 어이없는 죽음
초기 신라의 대표적 명장 석우로(昔于老)는 내해왕의 아들이자, 흘해왕의 아버지이다.

내해왕 2년(209년) 가락국에 침입한 포상팔국(浦上八國)의 군대를 격파했고, 조분왕 2년(231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감문국(甘文國)을 정벌했다. 233년 해군을 이끄는 사령관으로 왜구를 화공(火攻·불을 이용한 공격)으로 섬멸하기도 했다. 사량벌국(沙梁伐國)이 반란을 일으켜 백제에 투항하자, 이를 정벌했다.

당시 왕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석우로지만 취중 말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열전'에 자세히 남아 있다.

첨해왕 7년(253년) 석우로는 왜국(일본)에서 온 사신을 접대했다. 왜국 사신들과 술자리에서 웃는 얼굴로 석우로는 농담을 했다. "언젠가 내가 너희 나라를 침공해 임금을 붙잡아다 데려와서 소금 굽는 노비로 삼고, 왕비도 붙잡아다 궁중 부엌데기로 삼겠다"고 했다. 취중이었다고 하나,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그 말에 놀란 왜국 사신단은 양국 회담을 취소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 왜왕에게 석우로의 언행을 고해바쳤다. 이에 분노한 왜 왕은 우도주군(于道朱君)이란
장수와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침공했다. 왜군의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 첨해이사금은 도성을 떠나 피란할 정도였다고 한다.

석우로는 자신의 말 실수로 양국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이에 책임을 지고 수행원 두어명만 거느리고 적진으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왜군들은 석우로를 꽁꽁 묶어 높이 쌓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화형(火刑)을 시켰다.

훗날 석우로의 아내이자, 흘해이사금의 어머니인 명원부인은 왜국 사신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뒤 술에 취하게 해 불구덩이에 던져 죽이는 복수극을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일부 학계는 이 같은 기록을 토대로 단순히 석우로가 말 실수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석우로의 위세와 명성에 위협을 느낀 첨해왕 일파가 왕권 을 지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결과라는 것. 또 왕실의 어른이요, 조정 신하의 우두머리 재상인 석우로가 왜군에 피살당한 치욕을 겪었음에도 첨해이사금이나 신라 조정이 취한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라는 것이다. 석우로 장군의 이야기가 진실이냐를 떠나 말 실수는 예나 지금이나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2010-09-01 07:59:2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