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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궁녀 15~20

지식창고지기 2010. 12. 14. 12:57

15)향내 가득한 침실에서 이슬이 울음 터뜨린다. 

“나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렇지만 대궐이라는 울안에 갇힌 몸이라 신세한탄만 하였어요. 당신은 나 때문에 억울하게 옥에 갇혀 고생하시지만, 나도 당신을 본 그 순간부터 옥에 갇힌 고통이었어요. 당신이 봉황새 모양으로 날아왔던 것처럼, 이젠 우리 둘 다 봉황새로 변신해요. 둘이 같이 자유로운 천지로 날아가게 해주세요.

대관절 무슨 수로서 봉황새 되어 오셨나요?”


16)“봉황새를 그렸다오. 궁녀님 보려고

언감생심, 꿈에서라도 만나려고 나의 혼 봉황새에 불어넣었다오.” 풀잎이 바람에 떨 듯, 이슬이 화르르 떨었다가 화가의 품에 무너졌다. “봉황새, 봉황새로 그려요. 당신과 나를 한 쌍의 봉황새로 그려요. 우리 둘이 쌍으로 날아올라 머나먼 자유세계로 도망쳐요. 거기서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요.”

안될 말, 안될 말이지만, 꿈에서라도 아니 될 말.


  17)“정말로 진짜로 황제가 노하시리다.”

  죄책감이 화가를 어지럽혔다, 그냥저냥 봉황새 되어 와서 꿈에서나마 보면 되는 걸, 둘이 같이 도망치다니 진짜로 목이 떨어질 일이다, 감옥으로 모자라 목을 내놓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지만, 괴롭게 머리 흔드는 화가의 얼굴을 똑 바로 보고 이슬이 강력하게 말한다. “마음 약한 말씀 하지 마세요. 이대로 있다간 당신은 기어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아아 나는…… 늙은 황제의 노리개 감인 걸요. 아무런 기쁨도 없이 날이 날마다 노리개 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격으로 희롱만 당하고 사는 산송장인걸요. 남들은 나라에서 최고의 호강을 한다고 부러워하지만…… 안 그래요, 나는 황제의 장난감, 장난감에 불과해요. 내가 늙어지면 나를 대신하여 초상화를 보려는 거 보아요. 이제부터는 초상화만 사랑할 황제여요. 화가님, 화가님, 나를 구해주세요. 이제는 그 노리개신세조차 그림에게 빼앗기게 된 나를 구해주세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만난 뒤로는 시시때때 그리워 잠을 설쳤어요. 그래서 이토록 말랐어요.”

 

  18)“당신과 내가 봉황새 되어 도망친다하여도

  황제의 손에 있는 나라들 중에서는 그 어디에도 자유롭게 살 곳이 없는 것을 어찌하오. 궁녀님 사랑하는 궁녀님, 부디 진정하시오. 우리 서로 마음으로 사랑하다가 깨끗이 죽는다면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것이오. 나는 감옥에서 죽고, 당신은 초상화에 혼을 빼앗긴 황제에게서 버림받아 죽고…… 아니면 지금 죽을까요?

  우리 둘, 꿈속에서나마 함께 죽어 피안의 세계로 갈까요?”

  

  19)“그건 인생을 그려보는 아름다운 꿈일 뿐이에요.

  나는요, 나는요, 당신 품에 안기어 사는 실제생활 하고파요. 사람 살 나라가   이 당나라 천지뿐이던가요. 바다를 건너 멀리 멀리 가면 신라라는 좋은 나라도 있다는데요. 거기서 거기에 가서 우리 둘이 알콩달콩 살아요 화가님.”

 

  20)“궁녀님, 궁녀님, 당신 소원 그렇다면

  당신을 대궐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다. 나도 감옥에서 벗어나겠소. 우리 같이 갑시다. 신라나라로 봉황새 되어 날아갑시다. 어서 어서 그림 그릴 지필묵을 내놓으시오.”

화가는 결심하였다, 한 쌍의 봉황새를 그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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