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림(園林)
중국의 4대 명원(名園)인 북경(北京)의 이화원, 승덕(承德)의 피서산장(避署山莊), 그리고 소주의 유원(留園)과 졸정원(拙政園)을 소개 하려고 한다.
① 이화원(頤和園), 이허위안)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공원으로 주위 8km. 인공호(湖)인 쿤밍호[昆明湖]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흙을 쌓아올려 만든 완서우산[萬壽山]이 북부에 있고 모든 건축물은 산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통칭 천간낭하(千間廊下)라고 불리는 장랑(長廊)이 눈길을 끈다. 12세기 금나라 때 지은 작은 궁전을 시초로 명조(明朝) 중엽에 만들어졌으며, 청조(淸朝)의 건륭제(乾隆帝)가 많은 전각(殿閣)을 세우고 정원을 꾸몄다. 서태후(西太后)가 살았던 별궁으로서 유명하다.
1860년 톈진[天津] 조약의 비준을 강요하는 영국·프랑스 연합군 8만이 베이징 서쪽 교외의
서태후 -
이름 : 서태후 (본명 : 西太后)
출생 :
사망 :
서태후는 만주 귀족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전란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황궁에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릴 것을 고대하였다. 그러다가 17살에 수녀(궁녀)로 뽑히어 황궁에 들어갔고 후에는 제7대 함풍황제의 황귀비로 되었고 제8대 동치황제의 생모로 되었고 제9대 광서황제의 이모로 되었던 것이다.
제7대 함풍황제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서태후와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함풍황제가 죽은후 서태후가 낳은 6살난 아들이 황제로 되면서 서태후는 황비에서 황태후로 되었다. (그리하여 28세부터 수렴청정하기 시작하였는데 중국을 통치한 시간이 거의 48년이나 된다. 서태후의 이름은 나라씨였는데 황제의 황후가 동쪽채에 살았기에 동태후, 황비로 있던 나라씨가 서쪽채에 살았기에 서태후라고 부르게 되었다.)
② 피서산장 承德避暑山莊(승덕피서산장, 청더피서산장)
사전-
롼허강 유역 청더[承德]에 있는 청나라 때의 이궁인 러허싱궁[熱河行宮] 유적으로서 면적 564㎡에 이른다.
유적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나머지가 평야와 호수인데, 총길이 약 10km에 이르는 궁궐 담장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궁전구(宮殿區)에는 단보징청뎬[澹泊敬誠殿]을 정전(政殿)으로 하는 정궁과 쑹허자이[
호수 가운데에는 동해의
위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은 하북성에 있는 청대 황제의 여름 휴양지로 1703-1792년 사이에 세워졌다, 산장은 방대한 궁전들과 행정기구 및 의전용 건축물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건축 스타일의 사원과 황궁 정원들이 삼림과 목초지에 둘러싸여 호수의 경관과 혼합되어 아름다운 자연미를 자아내고 있다, 이곳은 미학적 관심뿐 아니라 중국 봉건사회의 마지막 발달의 한 단면을 나타내주는 역사적 유이기도 하다.
중국 승덕(承德)의 피서산장(避署山莊)은 강희·옹정·건륭의 3대 황제를 거쳐 무려 90년 가까운 시간 만에 완공된 중국의 명원이다, 피서산장은 원래 북쪽 변방으로 사냥을 떠나면서 잠시 머무르는 행궁(行宮)으로 건설되었다. 소박하고 단아하면서도 자연의 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강남의 건축 양식을 도입하여,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고대 제왕의 궁원(宮苑)으로 탄생하였다. 중국 산수원림 예술을 집대성한 피서산장은 전체 면적 564㏊, 담장 길이 1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정원이다.
청나라 최고의 전성기인 ‘강건성세(康乾盛世)’에 완공된 피서산장은 3대 황제의 위용을 드러내듯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가경제와 함풍제가 이곳 피서산장의 침소인 서난각(西暖閣)에서 붕어했으며, 황위를 둘러싼 암투극이 아주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피서산장에 들어서면 성벽의 일부인 정문에「麗正門(
피서산장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영향을 받아 겉모양은 한나라 풍이지만 그 내면은 티베트 풍으로 건설되었으며 산장안의 절은 거의모두 티베트(라마교)풍의 사원 처럼 구성 되어 있다.
③ 유원 (留園, 리우위엔)
소주 4대 정원 중 하나 시내에서 4km 떨어진, 소주 서북 유원거리에 위치해 있는 정원으로 명대의 대표적인 정원이자, 중국 4대 정원중의 하나이다. 졸정원과 비슷한 시기인 1525년 명(明)대 가정(嘉靖)년간에 조성되었는데, 원래는 명대 한 관리의 사원(私園)이었다 청(淸)대 관리 유소(劉恕)의 소유로 넘어가면서 한벽산장으로 개명하였다가 점차 유원(劉園)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서(光緖)초년에 관원이었던 성강이 이 정원을 산후 다시 개보수 하연서 유원(留園)이라 개명되었다. 이후 1953년 정부에 의해 다시 손봐지고, 이어 1961년에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유원의 총 면적은 3핵타아르로 동, 서, 중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 산수, 회랑, 자연경관, 전원풍경이라는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데, 그 중 서원은 주로 토산으로 되어 있고 산위에 단풍나무가 있으며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회랑이 약 700m 에 걸쳐 있다. 또 소주 원림 건축특색의 하나인 화창(花窓)이 유원내의 회랑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창문은 일종의 장식품일 뿐 아니라, 창문에 비치는 정원의 풍경들을 걸을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그림으로 연출하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동원에 있는 관운봉(冠云峰)은 한덩어리의
④ 졸정원(拙政園, 쭈오쩡위엔)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인 졸정원은 소주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명 정덕(鄭德) 4년(1509년)에 지어졌다. '졸자(拙者)가 정치를 한 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졸정원은 명나라의 왕헌신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데, 화원은 동, 중, 서 세 부분으로 나뉘며, 명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총 면적은 5만㎡이며, 그 중 3/5정도는 연못이 차지한다.
연못을 중심으로한 작은 정자나 복도, 산을 본떠 돌로 만든 석가산이 만들어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색적인 건물인 견산루, 파산랑과 경치를 보기위해 지어진 원향당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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