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와 가지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르치실때에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그 비유들은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었고, 일어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로서 쉽게 가르치셨기 때문에 "백성들이 즐겁게 들었다"고 했습니다(마가복음12:37).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시려고 주신 비유가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51:1-8).
예수님의 이 아름다운 비유는 아주 깊은 의미를 지닌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제자들과의 밀접하고도 진정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시고자 하신 뜻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I. 포도나무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포도나무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생명의 근원으로 이 땅에 심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그들의 생명들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한 줄기를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세주(메시야, 그리스도)오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시므로 인류의 구속을 위한 단 하나의 "참 포도나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부"되시는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의 "살아있는 참 포도나무"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농부"는 소유자이시고, 경작하시고, 불필요한 을 정리하시고, 포도나무를 돌보시므로 가지들이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애를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쓸데없는 가지들을 잘라 내시고, 열매맺는 가지들을 깨끗케 해 주시므로 더 많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이며, 가지를 깨끗케 하는 것은 곧 "말씀"입니다(요15:3).
II.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관계.
두번째로,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는 곧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관계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자연계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영계에서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관계와 같은 관계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에 영양을 공급하며,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제자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 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숙명적으로 하나입니다.,
가지는 나무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고 나무는 가지 없이는 열매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으며(갈2:20),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열매는 가지에서 맺는 것이지 나무에서 맺는 것이 아니지만 가지는 나무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관계이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이는 이 땅에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없이는 살수가 없는 그런 관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III. 그 가지들은 교파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나무에는 가지가 많으니 모든 교파는 모두 다른 가지 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가지가 교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1. 예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라고 말씀하실 당시에
"너희는"이라는 의미는 제자들을 가리키셨고,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교파가 존재하지 않았고, 교파는 그후 수백년 동안은 교파가 존재하지 않았었음을 감안해 볼 때, 절대로 가지는 교파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교파가 가지라면 교회는 수백년 동안 가지 없이 지냈으며, 열매도 생명도 없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데, 교파가 가지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2. 한 포도나무에 수백 가지의 다른 가지를 갖고 수백 가지의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에 적어도 600여 교파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포도나무에서 600여 종류의 다른 과일이 열릴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연계의 법칙은 한 포도나무에서는 한 종류의 열매만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열매가 열렸다면 그것은 다른 나무일 것이고, 비슷한 열매가 열렸다면
그것은 누군가에 의하여 유전자가 조작된 나무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파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분리가 잘못"임은 분명히 언급되어 있으며,
초대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17:20-23,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고린도전서1:10-1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나는 아볼로에게,나는 게바에게,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린도전서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에베소서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사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의 교파와 같은 것에 속하지 않았었으며
오직 주님의 교회의 일원이었을 뿐이었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뿐 제각기 입맛대로 당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요17:20-26, 고전1:13, 엡4:3-6).
예수께서는"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등....의 제자들)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요15:6) 라고 하셨음으로 각 제자들이 가지 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제자들이 한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들은 각자가 그리스도께 연결 된 가지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다른 가지인 교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한사람 한사람.... 각자가 그리스도께 연결된 가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파가 없이 순수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일 수 있었다면
왜 오늘날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말씀을 믿고 복종할 때에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의 그리스도인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신약성서만이 유일한 방패이며, 비교파적인 안내자이며, 완전한 안내자 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어떤 교파에도 속하지 말고,
오직 말씀만을 믿으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십시다.
우리가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아야 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천국백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V. 열매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맺을 수 있습니다.
모든 포도 열매를 맺는 가지들은 포도나무와 일체 될 때만 살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말씀 하셨고,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15:1-8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라는 표현을 여섯 번이나 사용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는 말씀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와 합하여서만 영적인 삶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덕성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으며,
결국 자신의 선한 도덕성은 구원과는 무관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가능한 것입니다.
고넬료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사도 베드로를 만나, 복음에 순종하기 전까지는 구원되지 못하였었으며(행10:1-3, 11:14),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영적 생활이 없으니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는 까닭입니다(디모데후서2:10).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사도행전4:12)라고 하였고,
요한은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요한일서5:11-12)고 했으며,
예수님 자신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도 그리스도와 합함이 없이는 영원한 축복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량하고 좋은 시민일 수는 있으나 아직 포도나무의 가지는 아닌 것입니다. 나무에 붙지 아니한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여러 교파들은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교파들과 거기에 속한 교회들은 구원론에 일치가 되지 않고 있으며,
그저 교회 집회에 잘 참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물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으나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자기네들의 그룹에 동참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거나
예수 믿고 좋은 사람이 되면 구원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심어 주는 일로 복음을 전한다 혹은 주의 일을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싶다"고 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 곧,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정해 놓으신 방법이며 사도들이 사용한 방법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 혹은 신학자들은 바울의 구원론과 야고보의 구원론을 오해하여
크게 혼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믿음에 의한 구원(롬4:13-25, 갈라디아서2:15-21)을 전했고,
야고보는 행함에 의한 구원(약2:14-26)을 전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야고보는 다른 구원론을 펼친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구원론을 서로 보충설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주장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론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될 수 없고 구약의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지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갈5:6말씀을 볼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은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 뿐"이라고 일하는 믿음, 움직이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야고보 역시 믿음이 없어도 어떤 행함만 있으면 구원받는 다는 뜻이 아니었고 믿음을 전제로 한 행함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약2:22).
결국 믿음 하나 만으로는 구원 될 가능성은 있겠으나 믿음의 어떤 행위가 없이는 구원 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약2:19, 약2:26).
즉 생각뿐인 믿음과 행동하는 믿음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뿐인 믿음은 귀신의 믿음이고(약2:19, 마8:29, 막1:24, 눅4:34)
행동하는 믿음은 구원되는 믿음인 것입니다 (갈5:6, 약2:24).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를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사도 베드로는 엄숙히 선포하였습니다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행2:38).
우리가 잘 사용하는 사도행전 6:31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절도 오해되고 남용되고 있으니 그 믿은 빌립보 간수의 가족들은 오직 믿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믿고 즉시에 세례를 받은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행16:33).
사도 바을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합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3-4),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3:27)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믿고도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 간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면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아직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례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교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세례 의식도 물을 뿌리거나, 물을 찍어 바르는 것으로 물 속에 잠기는 것을 대신하면서
세례란 받으면 좋은 것이고, 안 받아도 그만 이라는 위험한 구원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정직한 가르침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물 속에 잠김)를 받으므로 그리스도 인이 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6:16, 사도행전2:36-41, 로마서10:10, 사도행전8:35-39, 로마서6:3-4).
또한 성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곧 그의 몸된 "교회 안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골로새서1:18, 에베소서1:23, 골로새서1:2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교회 안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세례 받으므로 지난 죄를 용서받고 주님의 의하여 그 교회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행2:47).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교파에 속해 있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교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며, 모든 교파를 합쳐 놓은 것도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란?
단순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왕국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적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V. 계속 적인 생명의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서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계속 맺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 안에 거하고 나는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관련이 없는 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듯이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이 필요함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한때 붙어 있었다고 해서 그 가지가 떨어져 나가도 계속 열매를 맺을 수는 없는 것이니, 가지는 나무에 계속해서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한복음15:5)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요한복음15:2) 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때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중지 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중에서 "무릇 내게 있어(in me)" 즉 "그리스도 안에 있어(in the Christ)" 라는 표현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일요일 신자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겸손한 신앙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라고 믿습니다만 그런 분은 신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지니신 분이시지만, 아직 신자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나무에 닿아있는 가지와는 다른 것이며,
나무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가지도 다른 것입니다.
가지의 존재의 의미는 열매를 맺음에 있는 것이므로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6)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감이 있으리라"(마태복음13:41-42) 하신 말씀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가지가 나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계신다는 것이니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딤후2:19)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은혜에 들어가면 영원히 은혜 가운데 있게 된다 라든지 혹은 한번 구원받으면 절대로 안전하다는 이론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모순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로 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그 가지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다른 가지들은 열매를 잘 맺고 있는데, 어떤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그 가지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에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강제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붙잡아 두시지는 않으십니다.
마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마른 가지를 나무가 어찌할 수도 없고,
농부도 다시 그 마른 가지를 나무에 붙이려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농부는 다만 그 떨어져 나온 마른 가지를 모아 불사르는 일에만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여 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경우를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쳤습니다 ;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로마서11:21-22).
그 밖에도 여러 말씀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잘못하면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훈계하고 있는데,
갈라디아서5:4 말씀과 고린도전서9:27 말씀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정신이 그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정신이 그 육체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고(마태복음15:18-20, 로마서6:13-19),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천사보다도 더 안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벧후2:4)라고 쓴 사도 베드로의 경고를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한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요한계시록3:16)
하셨습니다.
사데교회를 향해서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요한계시록3:5) 하셨는데,
생명책에 기록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지울 수가 있겠으며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겠습니까?
확실히 구원받아 생명책에 기록되었던 사람들도 믿음의 승리를 얻지 못하면 그 이름이 생명책 에서 흐려진다 하였는데,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의 결국은 어떠하겠습니까?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요한계시록10:15)
이것이 성서의 대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짓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32:32. 참조; 빌립보서4:3, 누가복음10:20, 요한계시록20:12, 21:27, 22:19). 그리스도인의 안전에 대한 두 가지의 대책이 있을 수 있는데,
한가지 대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다른 한 가지는 인간의 행위에 달려있습니다.
영생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실 부분이 있고 인간이 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그 사람은 절대로 안전하겠습니다만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은 인간의 행위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부입니다.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근거가 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시편31:23) 라고 하였습니다 (참조; 요한복음 8:51, 누가복음11:28, 디모데전서4:16, 히브리서10:38, 골로새서1:21-23).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믿음을 중단할 경우도 있음을 시사하셨습니다 ;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누가복음8:13).
사도 바울의 경고를 들으십시오;
"믿음에서 떠나"(디모데전서4:1),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1:19),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디모데후서2:18),
그리고,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역대상18:9)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 5:2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고전 6:9-1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갈 5:19-2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계21: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하신 격려의 말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마 24:1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막 10:3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롬 6:2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일 2:2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딛 1: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딛 3: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롬 8:24-2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영생의 약속"을 받고 있는 것이지 아직 "영생을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8)하셨으므로
우리는 영생을 거두기 위하여 영생을 심고 그 영생 나무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 안에 거하며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영원히 버림을 당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5:19-20,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에스겔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VI. 순종.
그리스도인이 계속해서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15:7)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곧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고,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그 말씀을 따르는 "순종"을 말하며,
오직 성실한 순종으로 사람은 그리스도안에 남아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15:10).
요일 2:2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일 3:2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골3:1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즉 말씀안에 거하면 그사람의 기도가 확실히 응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기도 응답의 여부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틀림없이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서5:16).
요일 3:2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잠 28: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 9:3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벧전 3:1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VII.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요15:8)을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맺는 가지가 농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영광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좋은 포도열매를 기대하고, 그 열매를 보면 기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있는 것입니다(요15:8).
그 성령의 열매를 사도 바울은 설명했습니다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 성령의 열매는 육체의 열매(갈라디아서5:19-21)와는 정 반대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덕으로
(1) 하나님께 대한 관계로서 - 사랑, 희락, 화평이며,
(2) 이웃에 대한 관계로서 -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이고,
(3) 자신에 대한 관계로서 - 충성, 온유, 절제인 것입니다.
바울은 또 교훈하기를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디도서3:14)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실하고, 열심하며, 겸손하고, 헌신하며, 순종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사도 바울은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사도 베드로는;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벧후1:5-11)
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썼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아름다운 특징은;
(1)믿음(faith), (2)덕(goodness), (3)지식(knowledge), (4)절제(self-control, (5)인내(perseverance), (6)경건(godliness), (7)형제우애(brotherly), (8)사랑(love)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서 풍성하게 찾아 볼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름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에 부지런히 이상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특징들을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맺어야 하는 열매 곧,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하신 적이 있습니다(마11:13-14,20-21).
예수께서는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고자 하셨으나 잎사귀만 무성하고 예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한 개도 맺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열매가 없는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저주받은 그 나무는 곧 말라버렸던 것입니다. 나무는 나무이지만 열매 맺기에 실패한 나무는 이미 나무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나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비유인 "달란트의 비유"(마태복음25:15-30)를 볼 것 같으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취급되는 요인이 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는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 정도가 아닌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좋은 열매(착한 행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참으로 구원받은 영혼인 것입니다(롬1:13).
그러나 가끔 잎사귀만 무성한 가지도 발견되는데,
종교를 단지 직업으로 삼는 제자들은 나무의 영양분만 축내는 무익한 가지로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불에 던지우리라"(마3:10)는 말씀에 해당되는 비극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고,
사도 베드로는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거창한 그 무엇을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기 한 구석 잎사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탐스럽게 익어 향기 나는 한 송이의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충실한 열매는 그 나무를 영광스럽게 하며 그 나무의 주인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15:1-8의 요약.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 하나님은 포도나무의 주인이십니다.
2.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제자의 관계입니다.
3. 교파는 교회의 가지가 아닙니다.
4. 그리스도와 합해야만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5.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으려면 그리스도안에 계속 거해야 합니다.
6. 계속적인 순종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가 있습니다.
7. 그리스도인은 좋은 열매(선한 행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흡족하며 유익한 삶은 없습니다.
신앙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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