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삼국(위 魏 )/위(魏)왕조 계보

지식창고지기 2009. 7. 2. 12:09

 

후한(後漢) 말 당고(黨錮)의 옥, 황건의 난으로 후한의 위세는 땅에 떨어지고, 동탁(董卓)·원소(袁紹)·원술(袁術)·공손 찬(公孫讚) 등 군웅이 각지에 할거하였다.

조조(曹操)도 한 부장(部將)으로서 황건적을 토벌하여 복속시키는 등 점차 세력을 확대하더니, 196년 헌제를 허(許:河南省 許昌縣)에 받들어, 승상(丞相)이 되고 위국공(魏國公)에 봉하여 화북(華北)을 통일하였다.


당시 강남(江南)에는 손권(孫權), 쓰촨[四川]에는 유비(劉備)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으나, 208년 조조가 적벽(赤壁:湖北省 嘉魚縣 西)에서 유·손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자 천하 3분의 형세가 정하여졌다. 216년 조조는 위국왕(魏國王)으로 봉하여졌으나, 220년 조조가 죽자 아들 조비[文帝]는 헌제에게 강요하여 제위를 선양받아, 연호를 황초(黃初)라 하고 뤄양[洛陽]에 도읍하여, 위나라를 세웠다.


조조는 전란과 황폐 속의 중원을 지배하면서,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하여 대규모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고, 징병제(徵兵制)를 대신한 병호제(兵戶制)를 실시하였다.

또한 징세의 단위를 호(戶)로 하는 호조(戶調)를 시작하였고, 인재를 발탁하기 위하여 9품관인법(九品官人法)을 제정하였으나, 실제로는 명문 출신자가 관계(官界)를 독점하였다.

그 중에서도 사마씨(司馬氏)의 세력은 강대하여서, 황제를 폐립(廢立)하기도 하였다.

265년 사마염(司馬炎:武帝)은 위의 선례에 따라 원제(元帝)에게 양위를 강요하여 제위에 올랐으며, 위는 멸망하였다.

 

 

위(魏)왕조 계보


문제(文帝) 조비(曹丕) 220~226

명제(明帝) 226~239

폐제(廢帝:齊王) 239~254

폐제(廢帝:高貴鄕公) 254~260

원제(元帝:陳留王) 260~265/266